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

난임전문의 조정현 2023. 5.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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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어머니와 자식은 동일한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어 텔레파시가 잘 통한다. [Gettyimage]
명심보감 '효행' 편에 있는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父兮生我 母兮鞠我)'라는 문맥을 읽으며 초등학교 시절에 '남자(父)가 아이를 낳는다고?' 하고 의아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 의문은 중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생물을 제대로 배우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남성 없이는 여성 혼자 아기를 잉태할 수 없음을 알게 됐고, 의대에 들어가서는 모든 생명의 이벤트가 난자에 의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그토록 위대한 난자, 그리고 어머니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과거 어머니들은 자나깨나 자식의 입신양명(立身揚名), 자수성가(自手成家),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학수고대하고 소망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라면 인지상정의 마음일 것이다.

또 의문이 들었다. 달빛 아래에서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자식이 잘되기를 간절히 빌던 조선시대 어머니들의 기도가 과연 효험이 있었을까. 짐작하건대 자식에게 조금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부모가 마음먹은 방향대로 자식이 자라 주지 않을 땐 걱정이 앞서겠지만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먼 길을 돌더라도 결과적으로 자식은 어머니의 기대 이상을 살아내는 법이다. 왜냐면 어머니와 자식은 한 몸이기에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결코 헛수고가 될 리 없기 때문이다.

모계로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DNA

생명을 잉태할 때 아버지(정자)의 역할은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부계(父系) 유전자를 난자에 전달하는 것이요, 둘째 수정할 때 난자를 크게 울림으로써 세포분열을 일으키게 한다. 셋째 염색체가 방추사에 의해 세포의 양극으로 끌려갈 때 방추사를 잡아당기는 중심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정자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수정 이후 모든 뒤치다꺼리는 난자로부터 시작된 수정란(배아)의 몫이다. 수정란은 자궁에 착상돼 열 달간 자란 후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어머니의 역할은 출산으로 끝나지 않고, 자식이 유아기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어머니 처지에서 자식은 자신의 분신이며 자신의 세포(난자)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는 바로 난자의 세포질로부터 100% 비롯된다. 배아 속 핵(염색체, DNA)은 건축으로 치면 설계도면이다. 세포질(난자)에서 단백질 합성을 어떻게 하라는 지령을 내리는 세포 설계도 역할을 한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배아(수정란)가 1개에서 2개, 4개, 8개로 단순히 나눠지는 게 아니라 자기복제를 통해 온몸의 세포를 모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mRNA(전령 RNA)가 DNA 암호를 받아 리보솜에서 단백질합성을 하기 때문이다.

배아가 세포분열 과업을 성공적으로 치르도록 하는 일꾼은 미토콘드리아(에너지발전소/소세포기관)로, 이 또한 난자에게서 100% 전해진 것이다. 그러니 내 세포(미토콘드리아)는 어머니의 세포(미토콘드리아)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모자 혹은 모녀가 서로 떨어져 있어도 미토콘드리아가 동일하기에 세포 간 공명(共鳴)작용으로 에너지가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와 어머니, 이모, 외할머니, 이종사촌 간은 핵(염색체, DNA)만 다를 뿐, 세포질(세포의 재료)과 미토콘드리아는 동일하다. 특별한 가족사와 사연이 있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친할머니보다는 외할머니가, 고모보다는 이모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같은 미토콘드리아라서 그렇다. 인류가 조상을 추적하면서 부계가 아니라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아들만 있는 엄마의 미토콘드리아DNA는 안타깝게도 유전(遺傳)을 하지 못한 채 가뭇없이 사라지게 된다.

이스라엘은 자국민과 결혼한 외국인(비유대인)에게 국적을 무조건 부여하지 않는다. 여성이 이스라엘 국민이라야 남편과 자식이 이스라엘 국민이 될 수 있다. 유대민족은 국가를 잃고 수천 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유대인만의 자부심과 혈통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었던 공(功)을 오롯이 여성의 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대민족의 정신세계와 자부심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 어머니의 힘이었다. 난자에 의해 미토콘드리아DNA가 계승된다는 과학적 근거로 볼 때 유대인의 혜안(慧眼)은 실로 놀랍다.

"자식에게 하는 말은 곧 내게 하는 말"

흔히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텔레파시(telepathy)가 잘 통한다고 한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텔레파시가 잘 통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미토콘드리아가 같아서 언제든 원한다면 '주파수공용통신체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어머니의 분신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자식의 신변에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누구보다 어머니가 빨리 직감하거나 예지 몽을 꾸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이처럼 느껴져 무의식(자식 걱정)이 꿈으로 나타난 것일 수 있지만, 세포학자들은 자식이 자신의 분신이기에 어머니가 자식의 고충을 같이 느끼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니 자식 잘되라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바람이 자식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멀리 있는 자식에게까지 어머니의 사고, 말, 행동 따위가 충분히 전이될 수 있다. 일종의 텔레파시(telepathy) 효과로 보면 된다.

필자의 어머니는 작고(作故)한 지 10년이 넘었다. 나 또한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오늘의 내가 됐다. 어머니의 교육은 밥상머리에서 시작됐다. 어머니는 늘 1·4후퇴 엄동설한에 평양에서 걸어서 서울로 피난 오던 이야기를 하며 "병(病)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더라"고 말씀했다. 모르긴 해도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신앙심이 두터웠던 어머니의 기도와 염원, 적은 돈이라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헌금하던 모습이 지금까지 웅장한 코러스로 나의 귀와 눈과 가슴에 남아있다. 말씀을 아끼던 어머니의 신중한 한마디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교육학자들은 자식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삼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식의학자 입장에서 단 한마디 일침을 쏜다면 "자식에게 하는 말은 곧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나(어머니)와 동일한 세포(미토콘드리아)이므로 어머니로서 말과 행동도 중요하지만 사고(思考)까지도 자식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따라서 자식이 엇나가더라도 '결국에는 잘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청춘남녀가 손잡고 데이트하는 모습도 예쁘지만 3대(조부모, 부모, 손자손녀)가 함께 나들이 나온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10년, 20년, 30년 후에도 계속돼야 할 텐데,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땅에 사는 어머니들이 혼기가 꽉 찬 자식을 향해 텔레파시를 무한으로 보내야 한다. 또한 진심으로 자식에게 고마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내 세포(자식)가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며, 그들 역시 자식 낳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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