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 처음엔 무조건 베를린으로 오세요"…왜? [긱스]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라고 하면 주로 미국이나 유럽, 혹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떠올릴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독일 베를린이 '스타트업 메트로폴리스'로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도시에서 매년 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성준 렌딧 대표가 독일 베를린에서 회사를 창업한 이은서 대표를 만나 한경 긱스(Geeks)에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한국 스타트업들, 처음 시작하실 때 무조건 베를린으로 오세요. 왜냐고요? 여기는 디지털화의 불모지예요. 여기만큼 한국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곳도 없을걸요?”
독일 베를린에서 123팩토리를 창업한 이은서 대표(사진)는 ‘독일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스타트업에 조언해 달라’는 이야기에 주저 없이 ‘어서 오라는’ 말을 던졌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연극을 공부하러 베를린에 처음 발을 디뎠다. 하지만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곳을 잊지 못하고 향수병에 걸렸다고! 결국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간 그는 현재 5년째 한국과 독일 양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대표가 제일 먼저 꼽은 베를린의 매력은 독일을 넘어 전 유럽에서도 가장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 스타트업 메트로폴리스라는 점이다.
스타트업 전문 조사 기관인 스타트업 디텍터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된 독일 전체 스타트업 3348개 중 약 22%에 해당하는 741개가 베를린에서 설립됐다. 2020년에는 711개, 그 전 해에는 616개의 스타트업이 베를린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감소세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난해에도 베를린에서의 스타트업 붐은 크게 사그라지 않았다.
2022년 6월 독일의 정부 기관인 베를린시 경제, 에너지 공공기업부(Senate Department for Economics, Energy and Public Enterprises)에서 발간한 ‘베를린 스타트업 리포트(Berlin:Startup Report - A 2022 overview of the state of the Berlin startup ecosystem)’에 따르면, 매년 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여전히 베를린에서 탄생하고 있다. 또한 베를린의 스타트업들이 고용하는 인원만 해도 7만여 명에 이른다.
업종별로는 기업 고객(B2B)을 대상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핀테크, 헬스케어 부문의 스타트업이 베를린의 대세다. 전통적인 산업군인 이커머스, 미디어, 마케팅, 식품 등을 훌쩍 뛰어넘었다. 향후 몇 년 동안 가장 주목 받을 부문으로는 기후 중립으로의 전환 등 소셜임팩트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이 꼽히고 있다.
전 세계 스타트업의 투자 규모가 최고조에 달했던 2021년, 베를린의 스타트업에 모여든 VC 자금은 100억유로(약 14조50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베를린시 경제, 에너지 공공기업부가 지난 3월 발간한 ‘베를린 고용 리포트(Berlin Employment Report)’에 따르면, 2022년에는 49억유로(약 7조1200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져 전년 대비 약 55%가 감소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2020년 대비 여전히 50% 이상 높은 수치이며, 시리즈C 이상의 후기 투자가 크게 감소한 반면 초기 단계 투자는 10% 이상 증가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매년 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탄생 중인 스타트업의 중심 베를린이 여실히 느껴지는 데이터들이다. 123팩토리의 이은서 대표에게 데이터로만으로도 충분히 열기가 느껴지는 베를린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질문해 봤다. 다음은 줌 화상 미팅으로 만나 나눈 이은서 대표와의 대화 내용이다.
스타트업이여, 베를린으로 오라
김성준(필자, SJ) : 최근 베를린시에서 내놓은 보고서들을 몇 가지 읽었다. 한 도시에서 1년에 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탄생한다니 정말 놀랍다. 정부 차원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나 정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은서 대표(이하 이) : 독일 정부 차원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지원 체계로 ‘독일 디지털 허브(de:hub)’를 꼽을 수 있다. 2017년에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가 스타트업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전국 12개 지역에 산업 분야별로 특화된 디지털 허브를 설립한 것이다. 독일은 실리콘밸리처럼 특정한 지역 한 곳에 혁신 기업이 집중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지역별로 특화된 산업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허브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독일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던 중소기업들이 인공지능과 디지털화 관련 기술을 효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이끄 것이다.
이를 통해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유기적인 파트너십이 형성되도록 지원한다. 이 같은 전국 디지털 허브를 총괄하고 조정하는 국가 허브 에이전시(National Hub Agency)가 바로 베를린에 있다. 디지털 허브를 구성하는 도시로서의 베를린은 핀테크와 IoT 허브로 지정되어 있다.
SJ : 베를린 외의 주요 허브 도시들과 업종들은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나?
이 :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도시 면적당 가장 큰 생태계는 베를린시이지만, 주 단위로 보면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주(NRW주)가 가장 크다. 뒤셀도르프, 퀼른 등 대도시가 위치한 서독 지역으로, 독일의 전통적인 대기업들이 가장 많이 위치해 있고, 그만큼 산업 인구도 많다. 바이에른이나 뮌헨 지역은 모빌리티 회사들의 주요 근거지로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해 있다. 함부르크 같은 지역은 전통적으로 항만 항구 도시이기 때문에 물류 관련 생태계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식이다.
SJ : 생각해 보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통적인 공업 도시들이 독일에 많다. 그렇다면 베를린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허브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 : 핀테크와 IoT 허브로서 각각 핀립(Finleap)과 팩토리 베를린(Factory Berlin)을 꼽을 수 있다. 핀립은 핀테크 전문 액셀러레이터자 벤처캐피털(VC)이다. 스타트업을 위한 대규모 코워킹스페이스인 H:32를 운영하며, B2B 중심의 금융 스타트업들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금융기관에 은행 라이선스를 통한 화이트 레이블 서비스를 제공하는 솔라리스 뱅크(Solarisbank), 비즈니스 계좌 중심의 디지털 뱅킹 서비스인 펜타(Penta),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인 클락(Clark)과 엘레멘트(Element) 등이 핀립의 투자를 받았다.
베를린 IoT 네트워크의 허브인 팩토리 베를린 내에는 응용기술 대학인 코드(Code University), 기술 전문 벤처 스튜디오인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 AG), 베를린 하드웨어 혁신 허브인 모셥 랩(Motion Lab), 쉰들러(Schindler) 그룹의 스타트업이자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파트너인 빌딩마인즈(BuildingMinds), IoT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팀 노이슈타(Team Neusta), 그리고 베를린 응용과학대학(HTW Berlin)과 베를린 경제부 산하 기관인 베를린 파트너(Berlin Partner) 등이 있다.
핀립이나 팩토리 베를린처럼 정책적으로 시작된 곳 이외에 민간에서 시작된 흥미로운 곳으로 ‘실리콘 알레(Silicon Allee)’도 소개하고 싶다. 2011년에 스타트업들이 모이는 월간 밋업(Meetup)으로 시작된 이 곳이 이제는 베를린 중심부인 미테지구 7500㎡를 차지하는 스타트업 단지가 됐다.
특히 실리콘 알레는 외국인 창업자 친화적인 곳이다. 실리콘 알레의 시작이 독일어로 정보를 얻기 힘든 외국 출신 창업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기 위한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실리콘 알레에서 시작한 베를린 창업자 펀드(Berlin Founder Fund)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에게 2년 동안 매달 2000 유로(약 270만원)를 조건 없이 지원한다. 외국인 창업자라면 실리콘 알레를 통해 비자 지원뿐 아니라 당분간 거주할 아파트 임대에 대한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실리콘 알레 공간 안에 이러한 시설이 마련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기술 클러스터 등과의 네트워크도 실리콘 알레가 가진 매력적인 요소다.
SJ : 베를린 창업자 펀드와 같이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또 있나?
이 :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익시스트 프로그램이 정부 공공기관 프로그램 중 펀딩의 규모가 가장 크다. 익시스트 프로그램은 1998년에 공과 대학들의 경진대회로 시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학문 기반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 출신의 창업자들에게 창업지원금, 기술이전 지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작년 6월에 독일 정부의 경제기후부가 발표한 스타트업 장려 정책 중에 ‘익시스트 위민(Exist Women)’ 론칭 계획이 포함되어 화제가 됐다. 여성 창업가와 여성 교수로 이루어진 멘토링 시스템 개발 등을 통해 창업가로서 여성들의 역할 모델을 키우는 등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SJ : 시작하는 단계라면 무조건 베를린으로 오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렇다면 독일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들에 해 주실 조언이 있다면?
이 : 정말 디지털의 불모지다. 디지털화가 한국에 비해 매우 느리고, UX나 UI 등 서비스 개발 면에서도 핀테크로 보면 한국의 토스나 카카오뱅크 같은 서비스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순히 독일의 큰 대기업이나 자동차 회사들을 고객사로 삼겠다는 목표 말고도, 한국 회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해외 진출이라고 하면 일단 미국과 중국을 생각하고, 유럽에는 여전히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다른 나라 대비 훨씬 더 쉬운 시장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도 한국 미디어에 기고를 열심히 하고 있고, 이런 인터뷰도 매우 반갑다. 실제로 오늘 일부 이야기 나눈 것처럼 정책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분도 매우 많다.
조금 준비를 해 오셔야 할 부분이 있다면, 첫째로는 언어적인 부분이다. 독일어로 일할 필요는 없다. 스타트업 씬에서는 영어로 일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베를린이나 그 외 독일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는 것은 유럽 전역으로 확장하고 그 이후 미국 시장까지 나아가겠다는 목표를 가진 회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멀티 컬처럴(multi-cultural)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선호한다.
두 번째로는 법인 설립이나 창업 등을 위한 행정적인 페이퍼워크를 최대한 한국에서 준비하고 오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독일 공공기관의 행정 처리 속도는 한국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상 이상으로 오래 걸린다.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보통 이상의 스피드로 일 처리를 하기 때문에, 행정 처리 속도면에서 시간과 비용, 에너지 소모가 클 수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한 후 독일에 들어오는 걸 추천하고 싶다.
김성준 | 렌딧 대표
세 차례의 창업 경험을 가진 연쇄 창업가. 첫 창업은 2009년에 했던 기부의 일상화를 위한 사회적 기업 1/2 프로젝트. 두 번째는 2011년 스탠퍼드대학원 재학 중 창업 수업에서 만난 팀과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던 스타일세즈(StyleSays)다. 세 번째 창업한 렌딧은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한국에 돌아와 개인 대출을 해본 경험을 통해, 중금리 대출이 부재하다는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한 회사다.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창업가 정신과 혁신적인 조직의 기업 문화를 렌딧에 이식하고 적용해 전통적인 금융 인재들과 혁신적인 IT 인재들이 성공적으로 융합한 테크핀(TechFin) 조직으로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스탠퍼드대학원 기계과 프로덕트 디자인 석사 전공 도중 자퇴하고 스타일세즈(StyleSays)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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