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바이오워치]화이자도 탐낸다…암세포 정밀타격하는 이것
레고켐·ABL·알테오젠 등 국내 기업도 가세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글로벌 트렌드 파악이 중요합니다. 혁신 기술과 신약에 대한 가치는 현존하는 기술이나 기존 신약 대비 우월성, 차별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바이오워치]는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바이오 소식을 다룹니다. [편집자]
암세포에 정확하게 도달해 공격하는 약물기술 '항체-약물 복합체(ADC)'가 미래 항암제 시장 대어로 떠올랐습니다.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를 포함한 국내외 기업이 ADC에 대한 대형 계약을 속속 체결하고 나섰습니다.
1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에자이는 중국 블리스 바이오슈티컬(아래 블리스)과 자사의 자체 개발 항암제 '할라벤'(성분명 에리불린)을 탑재한 ADC 치료제 'BB-1701'을 공동 개발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앞서 에자이는 지난 2018년 해당 약물을 블리스에 넘긴 바 있습니다. 블리스는 현재 중국과 미국에서 BB-1701의 임상1/2상을 진행 중입니다.
이번 공동개발 계약에 따라 에자이는 블리스에 선급금(업프론트)과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를 지급하고 임상2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에자이는 중국·홍콩·마카오·대만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BB-1701을 개발 및 상업화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에자이가 권리를 행사하면 블리스에 판매 마일스톤, 매출에 따른 로열티 등을 추가로 지급해야 하고요. 개발부터 인허가, 상업화에 모두 성공할 경우 최대 계약금은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달에는 독일 바이오엔텍이 중국 듀얼리티 바이오로직스로부터 ADC 후보물질 2종을 도입, ADC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바이오엔텍은 미국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공동으로 개발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전문 기업입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새 성장동력으로 ADC를 낙점한 거죠. 해당 계약의 선급금은 1억7000만달러(약 2000억원)로, 마일스톤을 포함한 최대 계약금은 15억달러(약 2조원)입니다. 같은달 미국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도 독일 투블리스와 총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3월에는 미국 화이자가 ADC 개발 전문 기업 시젠을 430억달러(약 56조1666억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이뤄진 인수합병(M&A) 계약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꼽힙니다. 업계 전체로 보면 세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화이자는 이미 ADC 치료제 2종을 포함 총 24종의 항암제 허가를 취득해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시젠 인수를 통해 초기 단계의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한층 강화하게 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입니다.
ADC는 어떤 기술이기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걸까요.
ADC는 항체와 약물을 연결, 이 둘의 장점을 극대화한 기술입니다. 항체는 우리 몸속에 유해물질이 들어오면 면역반응에 의해 생기는 물질입니다. 많은 바이오의약품이 이런 항체의 특성을 이용해 암과 같은 질병을 치료합니다. 특히 항체는 암세포만을 정확하게 찾아가는 표적 특이성을 갖고 있습니다. 약물이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항체는 약효를 잘 발휘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약물의 경우 암세포를 공격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표적 특이성이 떨어져 정상세포까지 죽일 수 있습니다. ADC는 항체와 약물을 링커로 붙입니다. 링커는 두 개의 DNA를 결합할 때 사용하는 합성 뉴클레오티드 사슬입니다. 즉, ADC는 항체와 약물을 연결해 약효는 높이면서 부작용도 줄이는 기술입니다. 압도적 화력으로 표적을 정밀타격해 무력화하는 기술이라고 할까요.
ADC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8개 ADC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고, 지난해에만 57개의 새로운 ADC 치료제가 임상1상에 진입했습니다. 전년보다 90%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업계에서는 전 세계 ADC 시장이 지난해 59억달러(약 8조원)에서 연평균 22%씩 성장해 오는 2026년 130억달러(약 19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역시 ADC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국내 상장 바이오벤처 중에서는 레고켐바이오·에이비엘바이오·알테오젠이 우수한 ADC 플랫폼을 보유했다고 평가받습니다. 레고켐바이오는 원천기술 '콘주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는 2015년부터 다수 기술이전 계약에 성공하며 ADC 강자로 올라섰습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암젠과 최대 1조60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주목을 받았고요. 현재까지 총 6조5000억원 규모, 12건의 기술이전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이중항체 전문 기업 에이비엘바이오는 ADC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레고켐바이오와 공동개발한 ADC 후보물질 'CS5001'을 지난해 5월 중국 시스톤 파마슈티컬에 4100억원 규모로 기술이전하기도 했습니다. 알테오젠은 ADC 항암제를 개발 중입니다. 원천기술 '넥스맵(NexMab)'를 통해서입니다.
국내 위탁생산(CMO)·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도 앞다퉈 ADC 생산시설을 확보하는 모습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물산과 조성한 삼성 라이프 사이언스 펀드를 통해 ADC 플랫폼을 보유한 스위스 바이오 기업 아라리스 바이오텍에 투자했습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BMS로부터 인수한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북미 최고 ADC CMO 시설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최근에는 ADC 전문 국내 바이오 기업 피노바이오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ADC 분야는 초기 단계입니다. 표적이 표피성장인자수용체2(HER2)나 종양관련 칼슘신호 변환자2(Trop2)에 한정돼 있고요. 항체, 링커, 약물 등에 대한 기술도 아직 개발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약물 내성이나 부작용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도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에도 기회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겠죠. 국내 ADC 분야에서 좋은 소식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차지현 (chaj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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