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었던 성소수자의 글쓰기

한겨레 2023. 5. 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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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
당신의 이십호와 나의 칠십호
이성·합리가 내게 질서가 아닐 때
결핍 알고 스스로 결정해야 했던
고통 너머 나를 지켜준 정체성
함께 읽고 쓰는 일 계속할 것
그림 박조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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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으로, 나는 느려도 너무 느린 편이다. 글 하나를 적고서 몇주씩 마음에 담아두고 씨름한다. ‘나’로부터 한발 물러나는 일이 어려웠던 것처럼, 내 글에서 벗어나는 나도 시간이 걸린다.

쓰는 사람에게 일하는 시간의 경계는 무한히 확장되는데, 나는 굳이 자판 앞으로 다가앉는 출근 시간을 따라 움직이고 퇴근 시간에 맞춰 빠져나온다. 특근은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찾아오지만, 다행히 요즘은 누구나 휴대할 수 있는 자판을 하나쯤 지닌 채 살아간다. 칫솔질하다가 마트를 걷다가 자판이 필요한 순간이 생기면, 어디서든 쌀알만 한 자판을 끄집어내 똑딱거린다.

문장이란 공기처럼 흐르고, 들숨처럼 두근거리게 했다가, 한숨으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게 대부분이니, 잠깐이라도 때를 놓쳐서는 곤란하다. 화장실 안에도, 침대 위에도, 내가 가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쓸 준비를 한다. 형편없는 문장이라도 내 토사물이고 내 책임이니 소중히 담아 쌀알들 위에 새겨야 한다. 먹고사는 일에 한참 모자라단 걸 알지만, 내 몫의 밥이니 밥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산다는 건 왜 안심이어야 할까, 불안한 삶은 왜 삶이 아닐까? 또 한번 반문하는 나와 마주한다. 글을 쓸 때 홀로 쓴다고 믿지만, 항상 곁에 내 몸처럼 들러붙은 또 다른 몸이 있다. 생존한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성소수자인 나도 혼자가 아니었으며, 쓰는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 이다음 언젠가 이런 ‘나’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너도 애썼다고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쓰는 나는 노려보는 나와 같은 몸에 살고, 분노하는 나는 용서하는 나와 같이 살며, 내가 아니라고 믿는 나와 나라고 믿는 내가 같이 산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내 것인 나의 정체성. 헤엄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퀴어(魚)라는 이름의 어류.

글 쓴 뒤 훌쩍이고 반성하고

꽉 찬 삼년 동안 이 지면을 통해 글을 쓴 건 나지만, 나 또한 누군가 적은 문장들을 읽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에 관한 내 글 밑 독자의 문장들은 이따금 한번씩 열어 반복해서 읽는다. 읽을 때마다 훌쩍거린다. 비슷한 고통을 지닌 사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고통을 아는 사람의 문장은, 두부 한 모 같은 위로가 된다. 고통이나 절망 역시 문장의 칼로 나눌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고통을 누군가 견디고 있구나 알게 된 것만으로 영원히 다시 읽고 싶은 위로였다. 꽤 큰 안심이었다.

신랑과의 결혼 이야기를 적은 꼭지 밑 문장들을 보고는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손가락에 새긴 서로의 이름 문신을 언급하며, “노예냐?”고 묻던 누군가의 문장 앞에서였다. 부부지간이 아니라 엄마와 아들 사이 같다는 자못 진지한 감상평 앞에서 웃음은 이어졌다. 여섯살 연하 남친이었던 지금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어묵 좌판 앞에서 들었던 “군대 휴가 나온 아들이냐?”는 질문과 정확하게 겹쳤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내밀한 시간 앞에 어떻게든 이름을 붙이고 규정해야 마땅하다고 믿는 이 사회의 반영이기도 해서, 씁쓸한 웃음도 함께였다. 쉼표나 물음표도 없이 그들의 사랑은 진정 제대로 살아남을까, 서로를 가두고 갇힌 사랑이 어떻게 사랑일까?

드로잉 작가의 삶을 그만두고 생산직 노동자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던 신랑에 관해 적었을 때, 내 글이 생산직 노동자를 폄하하는 것처럼 읽힌다는 문장 앞에서 꽤 오래 반성했다. 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내 안에 갇히는 과정이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장의 힘을 알지만, 이성과 합리가 나에게는 질서가 아닐 때, 나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내 것으로 받아들인 ‘쓰는 삶’처럼, 살아남기 위해 감행해야 했던 내 삶의 치료와 수술처럼, 부족한 나를 내보이는 수밖에 없다. 다음번에는 더 큰 품을 지닌 내 글이 되도록 애써 보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나는 내 결핍을 알고, 나의 선택을 기억하며, 또 한번 내 몫의 밥 한 숟갈을 뜰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성소수자로서 ‘아이를 키우는 삶’에 관해 적었을 때에도, 많은 분들이 글을 남겨주셨다. 성소수자의 기본권이 아직 그 근간의 당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으니 먼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우리 또한 한 세대를 꿈꿔야 하는 어른으로 나눠 가진 책임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 확장하지 못할 때, 정상가족 개념이 사회 구성원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는 전시물 같은 고귀함 속에 갇히고 말 때, 개인은 어떻게 자신의 고립을 이겨내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사회가 고집스럽게 지켜야 하는 공동체적 가족이란 진정 딱 하나뿐인가?

낡은 해답으로는 미래 세대의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과거에도 사실 우리의 답은 틀렸다. 가족 안에서 누군가 묵묵히 감당했기에, 기꺼이 불합리를 떠안았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우린 이제 가족이나 공동체에 관해 지켜야 할 다른 의미와 답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퀴어였기에 강해진 나

내가 성소수자인 덕분에 이 소중한 지면에 글을 실을 수 있었다는 걸 안다. 나를 가두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 성소수자이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버티고 보니 꽤 오래 나를 지켰던 것도 내 정체성이었다. 퀴어가 아니었다면 이 지난한 고독을 견디며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 사람 하나의 소중함을 깨달았을까. 나는 불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퀴어였기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쓸 수 있었고, 웬만한 억압이나 고독쯤은 버텨낼 수 있는 강한 내가 되었다.

성소수자로 썼지만, 나는 또한 소외의 이름으로도 썼다. 결핍을 떠안은 한 인간으로 썼고, 살림하는 주부로 썼고, 늙어가는 몸과 싸우는 중년 여성으로 썼고, 먹고살 걱정을 놓지 못하는 가난한 소설가로 썼다. 노후의 문턱에 선 쪼그라드는 몸으로 썼고, 가난한 가계 출신의 한 사람으로 썼고,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존중과 배려만큼은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시민으로 썼고, 어디에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이웃으로 썼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이 고맙고, 또 고맙다. 덕분에 나는 그렇게 고마워하는 사람으로, 느려도 너무 느리지만 계속 쓸 것이다.

이제 ‘달려라 오십호’는 오십삼호로 끝나지만, 오십사호, 오십오호, 육십호, 칠십호, 어디선가 나는 내 몫의 밥을 써 나아갈 것이다. 당신의 오십호, 육십호, 혹은 이십호, 삼십호도 그렇게 쓰이고 읽히며 지켜지기를 바란다. 삼년 동안, 이 지면을 채우면서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가 아니었다. 쓴 사람, 읽은 사람, 지면을 내어준 사람, 모두가 같이 이루어낸 이 시공간은 곳곳에서 그렇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된다. 같이 달리자.

소설가

※연재를 마칩니다. 작가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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