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만의 ‘작은 사치’… 온종일 박물관 노닐다 [박윤정의 HEI! 안녕하세요! 노르웨이]
2023. 5. 14. 09:03
⑪ 베르겐
아름다운 항구도시… 중세건물 늘어선 골목길… 우중 낭만에 흠뻑
예술 복합 쇼핑몰 같은 코데박물관… 과거·현대 잇는 시간여행에 황홀
아름다운 항구도시… 중세건물 늘어선 골목길… 우중 낭만에 흠뻑
예술 복합 쇼핑몰 같은 코데박물관… 과거·현대 잇는 시간여행에 황홀
객실 창문으로 들이치던 파도는 침대를 삼켜 바다 밑으로 끌어내리려는 듯 요란스레 난동을 부리고 사라졌다. 취객처럼 바다 위 어딘가 널브러져 지난밤 행패를 잊은 채 잠이 들었나 보다. 송별 인사를 혹독히 치르고 아침을 맞이한다. 복도 객실 앞, 승객들 짐들이 세워져 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짐들은 승객들보다 먼저 검역을 통과하고 하선을 준비한다. 짐을 정리하여 객실 문 앞에 두고 식당으로 향한다.
벌써 식사를 마쳤는지, 카페는 왁자지껄하다. 책을 읽으며 하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쉬운 마음으로 연락처를 나누는 사람들도 보인다. 긴 유람선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은 헤어지는 시간이 아쉬운지 대화가 한창이다. 카페를 가로질러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즐긴다. 연어와 청어를 접시에 담으며 짧은 크루즈 경험을 추억으로 새긴다. 식사를 마치고 야외 갑판으로 나간다. 지난밤과는 달리 파도가 잔잔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바람 따라 살포시 너울거린다. 뺨을 스치는 바닷바람에 등을 돌려 카페에 들어와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안내 방송이다. 베르겐에 도착했단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노르웨이 서남부 해안의 깊숙이 들어간 피오르에 위치한다. 수도 오슬로에서 서북쪽으로 400km 떨어져 있는 제2의 도시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적인 건축물로 유명하다. 멕시코 만류 영향으로 기후가 온화하고 따뜻하지만, 지형적인 영향으로 유럽에서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지역이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인 베르겐항은 유람선들과 선박들이 즐비하다. 항구 주위로 산악지대가 어우러져 또 다른 자연 풍광을 이루며 하선하는 승객들을 반긴다. 비 내리는 항구 주변 건물들은 조명 빛깔에 따라 은은하고 아름답게 비치고 산악지대와 바다가 배경으로 멋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유람선 도착에 맞춰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역사적인 건물들과 다양한 색상의 집들을 지나 골목길을 들어서니 비 오는 베르겐이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멋진 거리 풍경은 빗방울이 잦아들고 안개가 걷히면서 더욱 운치를 뽐낸다. 서둘러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걸어 나선다.
몇 걸음 걸으니 호수가 보인다. 지도를 보니 베르겐 디자인 박물관이다. 코데(Kode)라는 북유럽 지역에서 가장 큰 예술, 공예, 디자인과 음악 박물관이다.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이라 하여 큰 건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입구를 찾는 데 한참을 헤맸다. 안내 책자에 적힌 노르웨이 미술사 작품들을 먼저 둘러보고자 서둘렀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건물 앞에서 머뭇거리다 시간을 보낸다.
입장권 한 장으로 4개의 건물 전시관을 다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보수공사 중인 코데 1을 제외하고 코데 3부터 보기로 했다. 사업가인 메이어(Rasmus Meyer)의 컬렉션이 궁금하다. 물론 이곳에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작품들도 둘러볼 수 있다. 1880년부터 1920년까지 작품들, 노르웨이 미술사의 황금기라는 이 시기의 작품들이 눈길을 이끈다. 낯선 작가들 작품도 많지만, 달(JC Dahl), 한스 구데(Hans Gude), 해리엇 베커(Harriet Backer), 니콜라이(Nikolai)와 같은 예술가들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운 시간을 즐긴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베르겐 전통적인 실내장식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벽화를 구경한다. 다양한 작품들을 마주하며 박물관에서 노닌다.
코데(Kode)는 노르웨이 예술과 문화를 전시하는 현대미술관이다. 내부는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다. 밝고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전시물을 둘러보니 예술 종합 쇼핑몰을 거니는 듯하다.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마주하고 경험한다. 미술관 곳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작업실 공간과 가족이 함께 방문하여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흥미롭고 부럽다. 문화, 예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치 복합 문화공간 놀이터 같다. 미술관을 나오니 브리겐(Bryggen) 궁전 주변으로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다. 비 그친 늦은 오후, 싱그러운 풍경이다. 산 앞쪽으로 낀 구름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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