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점 지고 있어도…한화 웃을 날 온다, 오랫동안 웃을 것" 사과나무 심고 떠난 수베로

이상학 2023. 5. 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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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인천공항, 이대선 기자] 한화 사령탑에서 물러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수베로 감독이 출국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05.13 /sunday@osen.co.kr

[OSEN=이상학 기자] 카를로스 수베로(51) 전 한화 감독이 웃으며 한국을 떠났다. 갑작스런 경질로 지휘봉을 내려놓았지만 한화의 밝은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베로 전 감독은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자택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출국했다. 지난 11일 대전 삼성전 승리 후 경질 통보를 받았고, 12일 짐을 정리한 뒤 13일 출국 비행기에 올랐다. 아내와 함께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수베로 전 감독은 밝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였고, 마중 나온 구단 관계자들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갑자기 경질당한 감독처럼 보이지 않았다. 

취재진과 공항 인터뷰에서 수베로 전 감독은 “모든 일에는 씨앗을 심는 사람과 거둬들이는 사람이 따로 있다. 내 역할은 묵묵히 씨앗을 심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외부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친 것에 감사하다”며 “정말 많은 선수들을 아들처럼 대했다. 그동안 여러 팀을 감독하면서 수많은 이별이 있었지만 이번만큼 마음이 아프진 않았다. (선수들에게) ‘매번 꼴찌를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지는 것에 분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신념을 갖고 야구하고, 인생을 살아가라’는 말을 해줬다”고 말했다. 

길고 긴 암흑기에도 한곁같이 성원해준 한화 팬들도 수베로 전 감독 마음속 깊이 남았다. 그는 “한화 팬들은 17점차로 지고 있어도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을 내면 노래를 틀고 경사가 난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한다. 경기가 끝나고 2~3시간이 지나서도 야구장에 남아 기다려주며 수고했다는 말을 해줬다. 한화 팬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잊지 못할 것이다”며 “장담하는데 앞으로 한화는 좋은 팀이 될 것이다. 한화 팬들이 웃을 날이 머지 않았다. 끝까지 한화를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OSEN=인천공항, 이대선 기자] 한화 사령탑에서 물러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수베로 감독이 구단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05.13 /sunday@osen.co.kr

인터뷰뿐만 아니라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팬들에게 마지막 영상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부터 곁을 지킨 이현재 통역이 수베로 전 감독 말을 바로바로 옮겼다. 수베로 전 감독은 “인천공항에서 인사드린다. 집에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KBO와 한화 팬 여러분께 감사하다. KBO 10개 구단 팬 여러분, 어느 도시를 가든 특별한 분위기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하다. 여러분들은 정말로 특별한 팬들이다”고 인사했다. 

이어 한화팬들에겐 “응원하는 팀의 감독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들은 정말 최고다. 힘든 상황에서도 늘 좋은 성원, 응원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며 “팀이 이제 올라갈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웃을 날이 올 것이다. 오랫동안 웃을 것이다”며 긴 암흑기를 벗어나 한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베로 전 감독은 지난 2020년 11월 한화의 제12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그해 KBO리그 역대 최다 타이 18연패를 당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낸 뒤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정리, 전면 리빌딩에 나선 한화는 마이너리그 감독만 15년을 지낸 ‘육성 전문가’ 수베로 감독과 3년 계약을 했다. 

2021년 1월26일 취임식 당시 수베로 전 감독. /한화 이글스 제공

황무지 상태의 팀을 맡아 젊은 선수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부여하며 신념을 갖길 주문한 수베로 감독은 팀 성적보다 선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운영했다. 메이저리그식 파격 시프트로 새 바람을 일으키며 리빌딩 첫발을 뗐다. 2021년 첫 해 순위는 예상대로 10위(49승83패12무 .371)였지만 정은원, 노시환, 김민우, 강재민 등 투타에서 젊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희망을 봤다. 

그러나 2년차 시즌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럻다 할 전력 보강 없이 구단에서 이기는 경기 운영을 바랐고, 외국인 투수들의 줄부상이 겹쳐 시작부터 성적이 추락했다. 전력이 워낙 약하기도 했지만 승부처에서 세밀하지 못한 수베로 감독 운영도 도마에 올랐다. 경쟁 체제가 흐릿해지면서 긴장감이 떨어졌고, 선수 성장세도 더뎠다. 결국 46승92패2무(.324)로 구단 역대 최다패 불명예를 썼다. 

시즌을 마치고 수베로 감독 경질 논의가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재신임 결론이 났다.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구단에서 FA, 트레이드로 전력을 보강했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 속에 초반부터 10위로 떨어졌다. 개막 2연전 모두 끝내기 패배를 당하는 등 아까운 역전패를 반복하면서 레임덕이 일찍 찾아왔다. 

[OSEN=대전, 조은정 기자] 한화 수베로 전 감독. 2023.03.18 /cej@osen.co.kr

4월말 연패 기간 한화는 감독 교체를 내부적으로 결정했고, 신임 최원호 감독 선임까지 그룹의 최종 재가를 받는 절차를 밟았다. 5월 들어 5승2패로 탈꼴찌에 성공하며 반등 중이었지만 한 번 결정된 것을 무를 수 없었다. 11승19패1무(.367)로 9위에 오른 상황에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수베로 감독은 3년간 총 319경기 106승198패15무(.349)의 성적을 남겼다. 

비록 성적을 내지 못하며 중도 하차했지만 수베로 전 감독은 한화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며 토대를 다졌다. 1승이 급한 상황에서도 부상 선수를 당겨쓰지 않고 꾹 참았다. 철저한 관리 원칙으로 투수들을 혹사시키지 않았다. 리빌딩 방패막이를 자처하며 선수들을 보호했고, 여러 선수들에게 고르게 기회를 주며 가능성을 봤다. 올 시즌 전에도 “계약 마지막 해이지만 선수 미래를 위해 보호하고 관리하는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야구인으로서 계속 지켜온 철학이다. 모든 결정은 한화 미래를 위해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철학자 스피노자처럼 수베로 감독의 흔들림 없는 인내와 철학은 시간이 흘러 훗날 재평가될 것이다.

[OSEN=인천공항, 이대선 기자] 한화 사령탑에서 물러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수베로 감독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5.13 /sunday@osen.co.kr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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