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목소리 커지는 ‘친북’ 시리아 독재자[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2023. 5. 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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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알 아사드, 자국민 학살과 국제사회 제재에도 건재
이달 아랍연맹 복귀하며 국제무대 복귀 준비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중동 빅3’ 모두 구애
사우디, 시리아發 마약·난민 문제 해결에도 아랍연맹 복귀 필요하다 판단
한국의 유일한 미수교 아랍 국가…북한과는 대를 잇는 친분으로 유명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세습 독재자’, ‘시리아의 도살자’, ‘북한 김정은과 가까운 정상’….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설명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2000년 아버지로부터(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 권력을 물려받은 알 아사드는 2011년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에서 반대 진영에 속하는 자국민을 잔혹하게 학살한 것으로 전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알 아사드는 그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을 숨지게 했다. 반정부 인사에 대한 납치, 고문, 암살, 반군 장악 지역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공격은 더 이상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아랍 국가(22개)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아랍판 유엔’으로도 불리는 아랍연맹(Arab League)이 2011년 11월 시리아를 퇴출시킨 이유다. 유엔 등에 따르면 내전 발발 뒤 시리아 인구 약 2200만 명 중 약 50만 명이 사망했다. 시리아를 떠나 이른바 ‘전쟁 난민’이 된 사람은 550만 명이 넘는다.
알 아사드 정권의 잔혹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화학무기 공격이 꼽힌다. 알 아사드 정권은 2013년 여름 화학무기로 반군 장악 지역을 공격해 민간인 1400여 명을 숨지게 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화학무기로 반군 지역을 수차례 공격했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은 “인권 감수성이 높다고 볼 수 없는 아랍 국가들도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알 아사드 정권의 만행에 경악했고 시리아에 대한 제재에 적극 동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 아사드는 살아남았다. 아니 건재하다. 그는 러시아와 이란의 도움으로 지난 10년 동안 반대 세력을 제압했다. 그리고 7일(현지 시간) 아랍연맹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회의 때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결정했다. 알 아사드가 이끄는 시리아의 국제무대 복귀가 시작된 것이다.

●사우디, 시리아의 아랍연맹 퇴출 주도했지만 알 아사드가 ‘승자’란 현실 인정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주도한 건 ‘아랍의 맹주’, ‘아랍의 큰 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는 19일 자국 제다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리아를 복귀시키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펼쳐왔다.

2월 튀르키예(터키) 남서부와 시리아 북서부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우디는 시리아를 도왔다. 시리아 내전 발발 뒤 사우디가 시리아를 지원한 건 처음이었다. 지난달에는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과 파이살 메크다드 시리아 외교장관이 각각 12년 만에 양국을 서로 방문해 외교 관계 정상화와 항공 운항 재개를 논의했다.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가 결정되고 이틀 뒤 두 나라는 대사관을 11년 만에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현재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알 아사드가 이번 아랍연맹 정상회의 때 참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자리잡고 있는 아랍연맹 본부. 국제사회에서 아랍 국가들의 이익을 위해 1945년에 설립된 국제기구다. 전체 회원국은 22개국이지만 시리아는 2011년부터 자격 정지 상태다. 동아일보 DB
중동 외교가에선 최근 시리아를 향한 사우디의 행보를 이례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사우디는 2011년 시리아의 아랍연맹 퇴출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또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뒤에는 반군을 지원했다. 반군의 중심 세력이 같은 종파인 수니파였고, 알 아사드는 시아파(이란이 중심국인 종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란 게 큰 이유였다. 미국이 알 아사드 정권에 극도로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우디가 반군 편에 섰던 이유다.

이처럼 사우디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시리아 내전의 최종 승자가 결국 알 아사드란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3월 중국 중재 아래 베이징에서 7년 간 단교 상태였던 지역 라이벌 이란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결정하는 등 ‘광폭 외교’에 나서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의 또다른 파격 조치란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 이란, 튀르키예 ‘중동 빅3’, 시리아의 지정학적 가치 포기 못해

무엇보다 사우디로서는 시리아를 더 이상 불안정한 상태, 특히 ‘앙숙’, ‘라이벌’ 이란의 영향력 아래 두는 건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비록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사우디-이란 관계는 정치체제(사우디는 왕정, 이란은 신정공화정)와 종파 차이로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알 아사드 정권은 2011년 내전이 발발하자 ‘반미 국가’이며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이란과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란과 러시아는 튀르키예, 이라크,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시에 지중해도 접하고 있는 시리아의 지정학적 가치에 매료됐다. 이란과 러시아가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배경이다. 두 나라 모두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교두보로 시리아를 본 것.

시리아는 다양한 중동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지중해도 접하고 있어 지정학적 전략 가치가 높은 나라로 여겨진다. 동아일보DB
이란과 러시아의 군사 지원 덕에 알 아사드는 반군을 물리쳤다. 러시아는 공군력을 중심으로 반군 장악 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주도했다. 러시아군의 공습 중 많은 수는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하지 않는 이른바 ‘융단폭격’이었다.

이란은 국가 최고지도자(시아파 최고 성직자)가 직접 관리하는 정예부대로 이란 사회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인식되는 혁명수비대(IRGC)의 특수부대를 시리아에 파견했다. 혁명수비대는 시리아의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하며 지상군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이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시리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과 달리 시리아에 계속 공을 들여왔다. 이란에게 시리아는 이라크에서 시작돼 레바논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파 벨트 전략’의 중간 지점이다.

이처럼 지정학적 가치가 높고 같은 아랍 국가인 시리아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10여 년 간 계속 커져온 게 사우디로서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우디로서는 반군을 지원했던 과거가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알 아사드 정권과 화해를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란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란 데탕트(긴장 완화) 무드는 지난 12년 간 엉망이었던 시리아와의 관계 복원에 나설 수 있는 기회였다. ‘이란과도 화해를 지향하는 데, 시리아와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아프리카‧중동연구부장(교수)은 “사우디로서는 시리아에 대한 전략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는 명분과 모멘텀이 생긴 것”이라며 “경제 지원을 통해 시리아 재건 사업을 돕고, 이란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중재 아래 이란과 사우디가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사우디는 이란과의 화해를 모멘텀으로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무사드 빈 모하메드 알 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뉴시스
반면 이란은 최근 사우디의 움직임과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가 반갑지 않다. 물론 이란이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3일과 4일 이란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에 에브라힘 라이시가 시리아를 방문한 건 예사롭지 않다. 이란 역시 변화하는 시리아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시리아 내전에서 역시 반군을 지원했고, 사우디와 이란과 중동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튀르키예도 바빠졌다. 튀르키예는 1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외교장관 회의 때 시리아와 별도 회담을 가졌다.

튀르키예는 자국 국민의 약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운동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시리아를 예의주시한다. 시리아 북부 지역에도 반튀르키예 성향,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쿠르드족이 대거 거주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2019년 10월 시리아 북부 지역 쿠르드족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진행했고 군대를 시리아에 주둔시키고 있다.

●알 아사드의 아랍연맹 복귀 미국도 못 막아

결과적으로, 알 아사드로서는 중동 나아가 이슬람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 나라를 상대로 외교적 지렛대를 활용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정확히는, 독재자였던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 잔인하게 자국민을 탄압하며 아랍권에서조차 고립됐던 알 아사드에게 중동의 강대국들이 먼저 다가서고 적극 대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리고 알 아사드는 자연스럽게 국제무대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알 아사드의 복귀는 미국에게도 당혹스럽다. 미국은 시리아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를 주도했었다. 아랍연맹 복귀 결정에도 노골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시리아는 아랍연맹에 복귀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동 주요 국가들이 미국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 중동 외교 소식통은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아랍 주요 국가들이 미국의 석유 증산과 중국, 러시아와의 거리두기 같은 요청을 따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미국과의 관계를 포기하진 않겠지만 과거처럼 미국에 의존할 생각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랍권, 마약과 난민 문제 해결 위해서도 시리아 복귀시켜야 한다고 판단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이 마약과 난민 같은 자국 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에 적극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브라이턴에 세워진 시리아 난민 소녀를 형상화한 조형물 ‘리틀 아말’. 이 조형물은 전 세계 난민 아동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국제 예술 단체가 제작했다. 2021년 7월 튀르키예-시리아 국경에서 영국까지 이동한 뒤 난민 인권의 상징이 됐다. 브라이턴=AP 뉴시스
뉴욕타임스(NYT)와 알자지라방송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시리아에서 생산돼 중동 주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마약인 ‘캡타곤’의 확산을 막는 데 관심이 많다. 캡타곤은 2014~2017년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서 국가 수립을 선포했던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전투요원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대량 생산한 마약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 마약’, ‘IS 마약’, ‘지하드(이슬람에서 성전을 의미) 마약’ 등으로 불리는 데 가격이 저렴해 중동 전역에 퍼지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이 캡타곤의 생산과 유통을 눈감아 주고 있고, 오히려 배후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스라엘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요엘 구잔스키 수석연구위원과 카르밋 발렌시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중동의 데탕트 시대 : 재개된 사우디와 시리아 관계’ 보고서에서 “캡타곤 확산은 이란에 대한 위협처럼 아랍권 전체가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문제”라며 “사우디가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은 자국에 대규모로 넘어온 시리아 난민들을 다시 돌려보내는 데 관심이 많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데 시리아 난민들까지 지속적으로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난민들로 인한 일자리 부족과 범죄 증가도 심각한 문제다.

이집트 카이로 인근의 시리아 난민 집단 거주 지역. 동아일보 DB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아랍 국가들이 마약,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선 시리아가 고립돼 있는 것보다는 아랍연맹이란 국제무대에 정식으로 복귀한 뒤 본격적으로 세부 협상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시리아에게 복귀를 명분으로 캡타곤과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나라, 정상들 간 친분도 두터워…한국과는 미수교 상태

중동 정세와 직접 연관된 건 아니다. 하지만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계기로 북한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궁금해진다. 북한과 시리아의 ‘특수관계’ 때문이다.

일단 두 나라 사이에는 세습 독재, 비참한 국민들의 상황, 국제사회의 불신 등 공통점이 많다. 정상들 간의 개인적 친분도 특별하다. 알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는 살아 있을 때 김일성 주석과 가까웠고 북한을 방문한 적도 있다. 북한은 1967년과 1973년 아랍권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를 때 시리아와 이집트에 공군 조종사 등 군인들을 보냈다. 전쟁을 같이 경험한 ‘혈맹’인 셈. 1990년대, 2000년대 들어서는 미사일 개발 등에서도 서로를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는 북한과 가까운 사이다. 알 아사드와 김정은은 축전과 서한도 자주 주고받는다. 김일성 주석과 알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도 친한 사이였다. 반면 한국과는 아직 수교를 하지 않았다. 노동신문 뉴스1
아랍연맹 소속 22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과 수교를 안 한 나라가 시리아다(시리아를 제외하면 쿠바와 코소보가 아직 한국과 수교를 안 했다). 중동 외교가에선 북한과의 친분 때문에 시리아가 한국과의 수교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이집트의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1928~2020년‧1981년~2011년 대통령 재임)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는 한국과 수교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자 이듬해 한국과 수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알 아사드는 자주 서한을 주고받는 사이다. 2월 대지진 때도 김정은은 시리아에 위로 서한을 보냈다. 북한의 ‘태양절(김일성 생일)’과 시리아의 독립 기념일 같은 때도 두 정상은 축전을 주고받는다.

만약 알 아사드가 19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면 김정은은 그의 ‘국제무대 복귀’를 환영 및 축하한다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전달할까.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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