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실수' 클릭 한번에 460억 날리고 파산했는데…결국

민경진 2023. 5. 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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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거래 취소 못 한다"
SW 설정값 실수로 파산 이른 '한맥증권'
해외업체와 360억 반환 소송서 최종 패
법원 "착오 알고 거래해야만 취소 인정"
한국거래소엔 '구상금' 411억원 지급해야
사진=연합뉴스

파생상품 자동 매매 프로그램의 설정값을 잘못 입력한 실수로 순식간에 462억원의 손실을 떠안고 파산한 한맥투자증권이 해외 투자회사에 "부당 이득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은 의사표시자의 착오를 모른 채 이뤄진 거래는 의사표시자의 중대한 과실이 있더라도 취소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 같이 선고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지난달 27일 한맥의 파산관재를 맡은 예금보험공사(이하 한맥)가 싱가포르 소재 사모투자신탁 C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쟁점은 파생상품 거래와 관련해 거래 상대방이 의사 표시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라며 "단순히 의사 표시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춰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의사 표시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맥 사태는 10년 전 발생한 국내 증권업계 사상 최악의 '팻 핑거(입력 실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중견 투자회사 하나가 문을 닫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거래소가 시장 안정을 위해 직권으로 주식 거래를 취소할 수 있는 직권 취소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내 자본시장이 크게 바뀌었다.

한맥은 2013년 3월 변수를 입력하면 소프트웨어에 의해 호가가 생성·제출되는 방식의 파생상품 거래를 하기 위해 A업체로부터 소프트웨어의 사용권을 구매했다. 같은 해 12월 한맥으로부터 소프트웨어의 작동을 위한 변수 입력을 위탁받은 A업체 직원은 변수 중 일부를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했다. 이자율을 계산하기 위한 설정값에 '잔존 일수/365'를 입력하지 않고 '잔존 일수/0'을 입력했다. 그 결과 소프트웨어는 매수·매도 가격의 상·하단이 설정되지 않은 채 직전 체결 호가 및 최우선 주문 호가만을 검토해 이례적인 호가를 제출했고, 모든 거래가 이익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거래를 대량으로 체결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한 직원은 곧 바로 컴퓨터의 전원코드를 뽑았다. 143초 동안 12월 만기 코스피200 콜옵션, 풋옵션 42개 종목에서 3만7900여 건의 거래가 이뤄진 뒤였다.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맥이 떠안게 된 손실액은 462억원에 달했다.

한맥은 이 사건 거래에 참여한 국내 증권사들로부터 손실액 일부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360억원에 달하는 가장 큰 이익을 챙긴 C사는 반환을 거부했다. 이에 한맥은 C사를 상대로 "상대방의 착오로 취득한 부당 이득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알고 (거래를)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봤다. 이 사건의 쟁점은 파생상품 거래와 관련해 거래 상대방이 의사 표시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상대방이 의사 표시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의사 표시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어도 해당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대법원은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 상황이나 거래 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원고의 착오로 인한 취소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같은 날 대법원 2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거래소가 한맥에 "한맥 대신 갚아준 채권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국거래소는 증권사들이 모아 놓은 손해배상공동기금에서 460억원을 마련해 이 사건 파생상품 거래에 참여한 업체들에 거래대금을 지급했다. 한국거래소는 이후 국내 증권사들로부터 59억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400억원이 넘는 돈은 돌려받지 못해 한맥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이에 한맥 측은 한국거래소가 파생시장의 감시 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반소로 맞섰다. 그럼에도 한맥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파산 원인이 발생하면서 2014년 말 금융위원회의 인가취소 행정명령을 받은 데 이어 이듬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파산선고를 받았다.

한맥과 한국거래소 간 구상권 청구 소송 역시 1·2심 모두 한국거래소가 승소했다. 반소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법원은 "한국거래소가 파생상품시장 감시 및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등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한국거래소 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본소·반소에서 모두 한국거래소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위와 같은 종전 대법원의 판시를 따르면서도 파생상품 거래에서 상대방이 의사표시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최초로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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