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날 강간하려 해?…이 동물 암컷이 특이한 신체를 가진 이유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3. 5.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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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3] 그녀는 아름다웠고 착하기까지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도 곧 잘했지요. 어려운 학우를 챙기는 데도 누구보다 앞장선 그였습니다. 신은 대개 이런 인물에게 시련을 내리기 마련이었지만, 그에겐 너무 가혹한 수준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몸은 불편했고, 의붓오빠는 불량배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여느 때처럼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걱정되어서였지요. 문을 열었을 때 부엌 한편에 쓰러져 있는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불량배인 오빠는 태연히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옆자리에서요.

영화 ‘티스’는 성기에 날카로운 이(齒)가 돋아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 제공=마스 엔터테인먼트>
분노에 휩싸인 그녀, 복수를 궁리합니다. 어느 날 자기 신체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할 때, 자기 주요 부위에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난다는 사실을요.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던 학우가 강제로 그녀를 덮쳤을 때 그의 그것은 참혹하게도 잘려 나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복수의 시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양아치인 의붓오빠를 유혹합니다. 그는 모두가 예상하듯 동생을 덮쳤고 결국 거세되고 말았지요. 영화 ‘티스’의 이야기입니다.

“강간범들은 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하지.” 영화 ‘티스’의 한 장면. <사진 제공=마스 엔터테인먼트>
허황한 얘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연세계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동물의 암컷은 교미를 강제당할 때 자신의 성기를 활용해 수컷의 성기를 방어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라내진 못하더라도 삽입은 능히 막아내지요. 수정이 되지 못하게끔 주도하기도 하고요. ‘오리’가 그 주인공입니다.
암컷 오리의 질은 나선형이다
암컷 오리의 질에 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암오리의 질 구조는 번식기에 들어서면 나선형으로 변화합니다. 평소에는 단조로운 모양이다가 짝짓기를 해야 할 시기에 구불구불 바뀌어 가는 것이지요. 척추동물 암컷 중에서는 가장 복잡한 모양을 자랑합니다.
오리는 평화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수 없이 많은 강제적 교미가 일어나는 종이기도 하다. <저작권자=Waylah>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들의 나선형 질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진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강제적 교미’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나선형’ 질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수컷의 사타구니부터 열어봅니다. 수컷은 척추동물 중 유달리 성기가 거대합니다. 아르헨티나파란부리오리(Oxyura Vittata)는 발기했을 때 크기가 무려 42.5cm에 달합니다. 자신들의 몸집(30cm)보다 성기가 더 큰 것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2m의 성기를 가진 남성인 셈이지요.

거대한 성기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파란부리오리. <저작권자=Dude Daniels>
평소 10분의 1 크기로 숨겨져 있다 번식철에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빠른 속도로 확 커지지요. 그 속도가 무려 시속 120km에 달합니다. 이렇게 크고 거친 성기를 가진 탓에 암오리 역시 길고 구불구불한 질을 갖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라이벌 국가간 군비경쟁처럼, 암오리 역시 수오리의 공격 무기에 맞춰 방어 시스템을 고도화한 셈이지요.
강제적 교미에 노출되자 ‘엄청난’ 진화가 일어났다
오리의 성비 또한 질을 복잡하게 만든 요소입니다. 오리 세계에서는 암컷보다 수컷이 훨씬 많은 탓에 짝짓기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지요. 수컷오리는 암오리의 취향에 맞춰 깃털을 열심히 장식하고 구애를 펼칩니다.
수컷 오리가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수컷 원앙. <저작권자=Adrian Pingstone>
하지만 암오리의 선택을 받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짝을 찾은 오리 커플은 낭만적인 로맨스를 펼치지만, 남은 수컷들은 욕구불만에 빠져들지요. 수놈들은 참지 않고 강제로 암컷과 관계를 시도합니다.암오리가 강압적인 교미의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배경입니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오리의 교미 중 3분의 1 이상은 ‘강제적’ 관계로 추정됩니다.

수컷 오리의 ‘거대한’ 물건, 거기에 물리력까지 행사할 경우 암컷은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지요. 더구나 수컷 오리들은 떼 지어 암컷 한 마리를 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암컷으로서는 신체적 부상과 자신의 마음에 들지도 않은 수컷의 새끼까지 낳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오리 암컷은 강제적 관계에서 삽입이 어렵게 만드는 질을 갖고 있다. 임신 방지 기능도 있어서 ‘강간’ 오리들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작다.. 사진은 오리의 교미를 묘사한 그림. <저작권자=Bellyp>
그러나 암컷 오리는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나선형 질이라는 견고한 방어구를 진화시키면서입니다. 맘에 들지 않은 숫놈과의 강제적 관계에서 그 효과가 탁월합니다. 나선형의 암컷 성기는 ‘강간범’ 수컷오리가 자기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리지요. 40cm를 자랑하는 큰 성기도 소용없습니다. 강제적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 오리 중 80%가 발기도 제대로 못 하고 물러나게 되는 배경입니다.
합의 하의 관계에서는 달라진 신체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마음에 드는 수놈과의 관계에서도 나선형 질은 불편하지 않을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로맨스적인 교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리의 ‘사랑’을 살펴 보시지요.

잘생긴 수놈이 춤을 춥니다. 구애의 메시지입니다. 암컷오리는 윤기나는 털을 가진 수놈이 썩 맘에 드는 눈치입니다. 물속에서 엎드린 채 꼬리를 들어올려봅니다. “너를 허락하노라”라는 몸짓이지요. 수놈은 기분좋게 암놈 위로 올라탑니다. 암놈은 질의 내강을 활짝 열고 수컷의 음경이 생식관을 따라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음경 거부 장치’로 불리는 질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지요.

“저희는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 파리에서 촬영된 암수 청둥오리. <저작권자=Marie-Lan Nguyen>
오리 새끼의 95퍼센트가 ‘사랑의 결과물’로 태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제적’ 관계로 잉태되는 오리는 불과 5퍼센트입니다. 누구와 교미할지 선택할 순 없어도 알의 친부만큼은 암오리가 직접 고를 수가 있는 셈이지요. “여성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는 격언, 암오리를 설명하는 데 탁월한 문장입니다.

<세줄요약>

ㅇ암컷 오리의 질은 나선형으로 강간을 방지할 수 있는 특이한 신체구조를 지녔다.

ㅇ수컷의 강제적 교미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강제로 하는 수컷들은 교미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ㅇ맘에드는 수놈은 몸 속 깊숙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다. ‘강제적 교미’로 수정되는 새끼는 5퍼센트에 불과한 이유다.

<참고문헌>

ㅇ에밀리 윌링엄,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 뿌리와이파리, 2021년

ㅇ루시 쿡, 암컷들, 웅진지식하우스,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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