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른다고 말하는게 창피했어요"…야간학교서 새 삶 찾은 만학도

이성덕 기자 2023. 5. 1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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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낮은 계단이지만 이 계단을 올라서 학교 문을 두드리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대구 지역 유일의 야간학교인 '삼일야간학교(삼일야학)'에서 한글을 깨우치고 있는 A씨(60대·여)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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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입학·졸업식이 열리는 삼일야간학교 모습. 2023.5.12/뉴스1 ⓒ News1 이성덕 기자

(대구=뉴스1) 이성덕 기자 = "아주 낮은 계단이지만 이 계단을 올라서 학교 문을 두드리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대구 지역 유일의 야간학교인 '삼일야간학교(삼일야학)'에서 한글을 깨우치고 있는 A씨(60대·여)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다.

A씨는 "여자로 태어나 돈만 벌러 다녔다"면서 "글을 몰라 동사무소나 은행에서 서류를 제대로 읽고 작성할 수가 없었다. 직원에게 '글을 몰라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는데 많이 창피했다"고 말했다.

스승의 날(15일)을 며칠 앞둔 12일 오후 7시30분 대구 달서구 서남시장에 자리한 삼일야학에서 입학·졸업식이 열렸다.

13년째 삼일야학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연주 선생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작년에 비해 학생수가 약 20%정도 줄었다"면서 "한글반에서 고등반까지 총 8명이 졸업하고 26명이 신입생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7시30분 삼일야간학교 입학·졸업식에서 교장인 김대희씨가 학생들에게 축하말을 하고 있다.2023.5.12/뉴스1 ⓒ News1 이성덕 기자

삼일야학은 1972년에 개원, 올해 개교 51주년을 맞았다. 대구에는 한글을 가르치는 수많은 복지관이 있지만 모두 낮에만 운영하고 있어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고령자들은 밤에만 불이 켜지는 삼일야학을 찾는다.

삼일야학 운영비로 한해 3000만원 상당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50여년간 삼일야학을 지탱하고 있는 김대희씨(71)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보조금을 제외하고 사비와 후원금으로 메꾸고 있다.

그는 "쥐가 들끓는 열악한 환경 등의 문제로 야학의 위치를 여러번 바꿨다"면서 "배우지 못해 한(恨)이 된 만학도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교사를 생각하며 지금껏 달려왔다"고 했다.

이날 열리는 입학식을 통해 정식 학생이 되는 A씨는 "이 곳을 찾아와 '글을 모른다. 배우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많이 힘들었다. 문 앞에서 발길을 몇 번 돌렸다"면서 "먼저 글을 깨우친다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기사에 댓글을 달면서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삼일야학에서 글을 깨우친 학생들은 일기와 시(詩)를 써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초등반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B씨가 쓴 '부끄럽지 않는 일'이란 제목의 시가 교실 한 쪽에 걸려 있었다. 이 시에는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개미 허리의 힘을 빌려 쓰듯 나보다 나은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적혀져 있었다.

삼일야학 원장인 김씨는 "마음은 시작할 때의 청년인데 몸은 70대 늙은이로 변해버렸다"면서 "수많은 제자의 성장과 성공을 봤다. 한 졸업생은 수필가로 등단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뤘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면서 만학도에게 당부했다.

psyduc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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