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민주당과 국민의힘 떠난 책임정치 이끌 새 정당 필요하다”

정용인 기자 2023. 5.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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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 인터뷰
정의당 의견 그룹을 넘어 제3신당 창당을 시도하고 있는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 조성주 공동운영위원장이 5월 8일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추석 밥상에 신당 이야기가 나오게 하겠다.”

금태섭 전 의원이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힌 각오다. 지난 4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신당이 수도권 30석 이상의 의석 확보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1대 국회를 양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바깥의 ‘제3지대’를 목표로 뛰는 사람들과 세력은 금 전 의원 말고도 여럿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수면 위로 본격 떠오를 시점을 추석 연휴 전후로 보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 여론이 섞이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등 기존정당에서 ‘공천배제’가 확실시되는 의원들이 독자 생존 모색을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흔히 정치를 살아 있는 생물에 비유한다. 큰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휩쓸려갈 수도 있어서다.

주간경향이 조성주 ‘세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의 행보를 주목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2세대 진보정치를 표지이야기로 담은 1133호(2015년 7월 7일자) 주간경향 표지

지난 1133호(2015년 7월 7일자)에서 주간경향은 ‘2세대 진보정치’라는 화두로 그의 이야기를 ‘표지 이야기’로 다뤘다. 당시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조 위원장이 내놓은 출마선언문이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당시 경향신문 기고에서 “근래 5년간 이토록 내공과 영혼이 담긴 연설문은 처음 봤다”고 썼다. 심상정·노회찬 등 1세대 진보정치인과 경쟁해 ‘2세대 진보정치’를 화두로 내건 조 위원장은 선택받지 못했다.

7년 후인 지난해 가을. 당대표 선거에 조 위원장은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결과는 3위였다.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지난 4월 15일 ‘세번째 권력’ 창립총회에서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를 넘어서 ‘민주주의세대’는 새로운 정당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기자와의 통화에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책임정치에서 이탈하면서 폭넓게 형성된 중원(中原)을 목표로 정의당은 재창당이 아닌 ‘해체 후 신당 건립’ 수준의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적을 두고 있는 정의당을 리모델링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재건축 수준의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말한 새로운 정당은 어떤 정당일까. 그동안 수없이 명멸을 거듭해온 ‘제3지대 신당’이 이번에는 유의미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는 말일까. 기존의 신당 추진 논의 그룹이나 인물들과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여러 의문을 가지고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5월 8일 경향신문사에서 이뤄졌다.

-지난번 정의당 전망 기사(주간경향 1518호·‘내년 총선, 정의당의 자리는 있을까’ 기사 참조) 관련 접촉했을 때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은 민주당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원(中原)’이라는 표현도 했고요. 적을 두고 있는 정의당을 해체하고 중도이념에 기반을 둔 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보면 맞습니까.

“한국에서 정치공학적으로 거대 두 정당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통틀어 통칭 ‘제3지대’라고 하잖아요. 두 거대정당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뭘 해야 한다는 공학적 구조에서 3지대라고 표현한다면 3지대가 맞겠죠. 하지만 우리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두 정당이 아닌 무엇, 그런 차원은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지금의 한국 정치 구도는 이렇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윤석열 정부로 대표되는 두 집단의 권력이 책임정치 안에 있지 않고, 이탈해 있는 상황입니다.”

-둘 다 책임정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는 판단이군요.

“중원이라는 표현도 그래요. 중원이라고 쓰니 중도를 연상하는 분이 많은데 말하자면 책임정치입니다. 콘서트장에 비유한다면 ‘메인 스테이지’가 비어 있다는 말입니다. 공연을 하면 주무대에서 밴드들이 연주를 해야 하는데, 이탈해서 각자 이상한 버스킹 같은 걸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큰 밴드들이 말이죠. 메인 스테이지 앞에 모인 관중과 국민은 기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극성 마니아 지지층만 바라보며 버스킹을 한다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죠.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우리가 주무대에 뛰어올라 팬들이 원하는 공연을 만들어 보겠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 정치의 문제는 메인 스테이지에서 책임지는, 어떻게 보면 제1지대라고 할 수 있겠죠. 책임정치의 부재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정당들의 붕괴와 이탈이 한국 정치의 핵심문제입니다. 이 공간에 들어가 책임 있는 정치를 하는 일이 한국 정당들이 해야 할 정치의 본령이라고 봐요. ‘민주당의 오른쪽’이라고 한 것은 일부러 도발적인 표현을 쓴 건데요. 진보-중도-보수라는 1차원적 프레임에서 정책 지향성으로 보면 오히려 진보개혁적인 프레임이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는 필요합니다. 한국 정치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조건을 놓고 봤을 때 진보개혁 성향의 강화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거지요. 변명이 너무 길었네요.”

-‘세번째 권력’의 문제의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겁니까.

“문제의식은 오래됐지만, 새로운 정치그룹을 만들어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자고 생각한 것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부터입니다.”

-장혜영·류호정 의원과 함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정의당에 있다가 서울시 노사관계와 노동정책 총괄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서울시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사표를 쓰고 나와 정치실험공동체를 표방하는 정치발전소 일을 하고 있었는데, 두 의원이 찾아왔어요. 당에 빨리 복귀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리고는 좀 새로운 길을 같이 모색해보자, 진보정치의 혁신을 모색해보자는 제안을 건네더군요. 두 분의 인상적인 의정활동을 워낙 관심 있게 지켜보던 터여서 꾸준히 만나게 됐습니다.”

-두 의원 말고 어떤 분들이 더 참여하고 있나요.

“정의당 당원이 한 60%, 3분의 2쯤 되고 아닌 분들이 3분의 1 정도 됩니다.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은 분들도 있고, 민주당·국민의힘 당원분들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 저를 포함해 장혜영·류호정 이렇게 공동운영위원장이 셋입니다. 이병진 경기도당 위원장과 이기중 부대표, 당에서 에너지 쪽을 담당하던 이헌석 전 위원장과 함께 운영위원회를 꾸려 일하고 있습니다.”

-정치유니온을 표방하고 있는데요, 이건 협동조합과는 다른 거죠. 과거에 참여했던 청년유니온 활동 당시와 같은 문제의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까.

“이런 걸 만든다니까 정의당 내 의견그룹이냐고 묻는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정의당 내의 어떤 의견그룹이 아닙니다. 한국 정치에서 지금 새로운 정치와 정당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관련해서 내부 논의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정치운동적 성격이 있는 건데 정치단체라고 하기엔 좀…. 그래서 정의당 당원들만이 아니라 정의당을 베이스캠프처럼 해서 출발은 하되, 당원이 아닌 사람도 함께하면서 다른 정당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담자, 그렇게 하려면 조합적 성격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였죠. ‘유니온’이라는 단어가 꼭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다양한 단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지난 10여년에 걸쳐 발전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일종의 정치 운동 단체라는 의미를 담아 정치유니온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보자’고 해서 이렇게 된 거죠. 당원이 아닌 사람들도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같이하되, 별도의 멤버십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정치유니온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쓰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협동조합은 아닙니다. 서울시에 비영리임의단체로 등록해놓았습니다.”

-‘세번째 권력’이라는 이름은 누가 붙였습니까. 수권 의지를 담은 작명이겠지요?

“공동으로 붙였어요. 지난해 당대표 선거 출마할 때 캠프 이름이었는데 그때의 문제의식이 한국사회 전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대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수권 의지’와 관련 있는 것 맞습니다. 권력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호감도가 있는 단어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정치그룹으로서 당연히 권력을 지향합니다. 새로운 권력이 필요하고, 등장할 때도 됐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권력이라고 과감하게 표현했습니다.”

/권도현 기자

-2015년 7월에 주간경향이 ‘2세대 진보정치’라는 이름으로 조성주 위원장 이야기를 썼어요. 8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문제의식에서 연속된 부분은 무엇이고, 지금 생각이 달라진 부분은 또 무엇일까요.

“연속된 부분부터 말해보죠. 당시 제가 내걸었던 것이 ‘노동운동 밖의 노동’과 ‘광장 밖의 시민’이었어요. 그건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한국의 민주주의가 대표하지 못하는 노동과 시민을 대변하는 일이 진보·보수를 떠나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달라진 부분은 당시에 저는 기존 노동정책의 변화, 세대 간 평등 문제를 제기하며 예컨대 임금피크제·연금 개혁을 내걸었습니다. 세대 간 타협이라는 모델도 굉장히 강조했고요. 당시는 제가 아직 30대였습니다.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와 정치라는 공간에서 타협을 통해 진보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믿었어요. 여전히 세대 간 타협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핵심적인 문제는 세대 간의 갈등구조로만 접근해서는 풀 수 없을 정도로 이전과 비교해 너무 달라졌습니다. 젠더를 비롯한 각종 정체성 이슈들이 등장하고 사회담론도 바뀌었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과 같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해주리라 기대했던 정책들도 솔직히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정책적 시효를 다한 것 같아요.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죠. 노동조합 조직률이 문재인 정부에서 거의 5% 가까이 오르긴 했지만….”

-꽤 많이 올랐을 겁니다.

“그렇죠. 문재인 정부 초기 노조 조직률이 9.8~10.1%였습니다. 지난해 통계가 올해 나오면 15%를 찍을 거라고 봅니다. 10%에서 15%면 50%가 오른 거잖아요. 그런데 노동시장에서 그만큼 불평등이 완화됐냐 한다면, 그게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정책적으로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보는 겁니다. 또 그다음으로 촛불이라고 하는 매우 큰 광장이 열렸지 않습니까. 지금 어떤가요. 여전히 광장은 일부만의 공간이죠. 또 어떻게 보면 포퓰리즘 경향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문재인 정부 때보다 더 세졌죠.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정책들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보는 배경입니다. 시장적 요소를 배합하고 새로운 노동의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측면이 온 것 같습니다. 세대 간 갈등이 강하게 나타난 것은 저 스스로도 평가를 해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과거 세대담론으로 청년정치를, 청년유니온을 주도했던 멤버 중 한 사람으로서, 그게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반성과 성찰입니다.”

-2015년 주간경향 인터뷰로 잠시 돌아가 보면, 이런 언급을 했어요. ‘사실 정치는 구름 같은 일이고 대중과 여론을 모아내는 일인데 손에 잡히지 않고 굉장히 불투명해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라고 물어본다’고요.

“네. 맞아요. ‘현타’가 오죠.”

-더 인용하자면 정치가 ‘너무 고독한 일이라 오래 정치한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고도 했어요. 지금도 그런지 궁금합니다.

“그럼요. 현타는 지금도 늘 와요. 매 순간 왜 하나. 이런 거는 아마 정치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는 질문들 같아요. 사실 제가 정답이나 해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지금도 사실은 그렇습니다. 100% 확신할 수 없어 그런 현타가 더 자주 오는 듯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고 논쟁하는 일은 굉장히 즐기는데 그냥 만나는 건 사실 좀 피곤합니다. 저 자체는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는 편입니다.”

-보수정치인, 특히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보면 체질적으로 그런 게 맞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지역유권자들의 술자리에 가서 ‘아, 누님 제가 노래 한 곡 부르겠습니다’라고 하는.

“다 형님이고 동생이고. 사실은 바뀌어야죠. 거꾸로 그런 생각도 들어요. 뭐냐 하면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그런 방식으로 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형님, 동생, 누님 하면서 즐겁게 해드리면 찍어주겠지 하는. 거꾸로 한국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과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하지 않아 정치가 그렇게 된 면이 있어요. 슬프지만 저를 포함해 다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작년에 구청장 출마하다 보니까 시장바닥에서 인사하고, 그냥 가게 들어가 인사드리고 술자리에 가서….”

-적응이 되던가요.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데, 저만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체질적으로 잘 적응한다는 분들도 내면적으로는 힘들지 않을까요.”

-최근 ‘세번째 권력’의 움직임을 보면 정의당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정치의 중원으로 나가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심상정·노회찬을 넘어 보수 양당의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배운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보수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진보는 자꾸 무언가 새로운 것을 지향하죠. 변화에 꽂혀 포커스를 맞추고요. 그런데 보수적인 분들은 이걸 어떻게 잘 통합하고 운영할까에 더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는 이런 고민 많이 안 해보잖아요. 왜냐면 늘 변화하고 바뀌어야 하고, 이러니까 어떻게 통합하고 운영할까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적거든요. 기본적으로 그런 영역에서 대화하고 토론·논쟁하다 보면 보수 쪽으로부터도 많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토론회에서 주최자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금태섭 전의원 아래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 2월에 금태섭 전 의원을 ‘세번째 권력’ 포럼에 초청해 검찰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최근 금 전 의원이 ‘수도권 30석 이상’을 목표로 신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는데 ‘세번째 권력’이 혹시 이후에 그쪽과 힘을 합칠 가능성도 있습니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어떤 고민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금 전 의원도 두 거대정당이 아닌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고, 우리도 비슷한 고민이니까요. 고민의 맥락은 비슷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 안의 내용이 서로 어떤지는 아직 확인해보지 않았어요. 각자가 좀더 내용을 벼려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아직 만나보거나 구체적으로 접촉해보거나 이러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인 듯합니다.”

-‘세번째 권력’에서 나오는 주장문 등을 보면 현재 정의당은 재창당이 아니라 해체 수준으로 가야 하는데, 만약 기존 정의당 사람들 대부분이 재창당 수준에 머무른다면 다른 행동을 모색하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것은 지금 이야기하기 어렵죠. 우리는 끝까지 정의당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같이 옮겨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그게 안 될 경우를 상정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현시점에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재창당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그때 가서 우리가 어떻게 토론하고 논쟁해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를 봐야 하기 때문에 지금 그 부분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기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결국 정치라는 것이 노선과 정책 못지않게 인물도 중요하지요. 인물 중심의 정당 움직임이 전근대적 내지는 후진적이라는 평가가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요.

“맞아요. 정치라는 것이 캐릭터성이 있어야 하니까 중요하죠.”

-사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거대 기득권 양당체제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해왔지만 ‘소선거구제/단순다수 승자독식’를 특징으로 하는 ‘87체제’를 결정지었던 첫 선거인 1988년 총선에서 만들어진 것도 양당체제는 아니었단 말이에요.

“맞습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야3당 체제였죠. 따지고 보면 정주영의 국민당에서부터 안철수까지 원내교섭단체를 유의미한 정치세력의 기준으로 본다면 인물을 따라가는 정당이라는 비판은 있지만 ‘3당이라는 대안’은 꾸준히 있었거든요. 국민의당에서 바른미래당까지 이어지는 안철수의 실험은 기간도 제법 길었고요. 안철수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한국에서 제3당 실험은 시효를 다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안철수 전 대표의 행보를 보면 2016년 선거에서 국민의당이 엄청 돌풍을 일으켰어요. 수도권이나 서울에서도 득표율이 민주당보다 높았어요. 이건 뭐를 이야기하냐면 한국정치사에 남을 만한 엄청나게 훌륭한 3당 캠페인과 전략 및 뚝심을 보여줬다는 거예요. 그게 지속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엄청 고민스러운 것이 실은 국회가 그렇게 구성된 시절에 주 52시간 상한제를 비롯한 좋은 법안들이 대부분 통과됐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논의가 그때 가능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이게 왜 또 이렇게 됐냐, 대선 때문이라고 봐요. 대선 때문에 결국 주저앉게 된 거죠. 그게 가장 뼈아픈 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번째 권력’의 사람들이 궁금합니다. 지난번 정의당 기사에서도 거론했는데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다고 하니까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진짜 많았어요. 두 의원 본인들의 생각 여부와 별개로 PC(정치적 올바름)주의 내지는 정체성 정치의 대표 캐릭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게다가 특히 민주당과 정의당의 경우 청년정치가 자기 실력이나 공정, 혹은 정의로운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차별 내지는 특혜로 그 자리에 올라섰다고 비판하는 시선이 제법 있어요. 물론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이런 바깥의 시각을 고려하면 ‘만들어진 캐릭터’는 ‘세번째 권력’을 알리는 데 오히려 도움이 안 되는 면이 있지 않을까요.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 가끔 술 한잔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장혜영·류호정 두 사람이 저에게 ‘조성주 대표님이 이렇게 안티가 많을 줄 몰랐다. 큰 노동조합이나 기성 노동운동가들이 조성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겁니다. 제가 직무급제론자인 데다 노동조합에 쓴소리도 많이 했으니 노동운동 조직에 있는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반대로 두 의원에게는 기자님이 이야기하는 그런 비판이 많고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권력’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예를 들어 지난번 류호정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하고 대정부 질의했던 것,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질문하니 화제가 됐잖아요. 그동안 ‘세번째 권력’에서 고민을 되짚어보면서 그 연장선에서 나온 행동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본인도 지난 2~3년 의정활동을 돌이켜보면 퍼포먼스형이었고, 여러 가지 성실하게 해왔지만 또 자기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것에 얼마나 노력했던가라는 반성이 포함된 거죠. 장혜영 의원도 정체성 정치의 대표주자라고 하지만 ‘세번째 권력’ 창립식에 이준석을 부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이준석은 장혜영이 대표해왔던 장애인 이동권이나 젠더와 같은 것에 가장 공격적인 사람인데 그럼에도 다르지만 대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었어요. 이제 바뀌는 거죠.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하죠. 저도 의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캐릭터를 ‘리스크’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세번째 권력’이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포텐셜’(잠재력·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걸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걸 이미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거죠. 앞으로 더 시끄러울 것이라 생각해요.”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세 번째), 조성주·류호정·장혜영 공동대표(네 번째부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오른쪽 첫 번째) 등이 지난 4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번째 권력 출범식에서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세번째 권력 홈페이지

-세 사람이 공동운영위원장인데, 앞으로 정치적 운명도 같이할 겁니까.

“네. 그래야죠.”

-만약에, 그러니까 예를 들어 민주당에서 조성주만 스카우트하겠다고 나온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개인적인 결정은 하지 않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뭘 할 거였으면 진작에 다 알아서 했겠죠. 지금 가는 길이 훨씬 험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보정치를 이제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새로운 챕터로 완전히 이동시켜보자, 우리가 책임지고 해보자, 이렇게 논의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보정치의 다음 세대들이니까요.”

-진보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고 좋게 말하면 확장입니까.

“저는 이제 진보라는 타이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타이틀을 수호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고 봅니다. 진보는 그것을 실현하는 일이 중요하지 타이틀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내년 총선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양당 모두에서 떨어져 나간 무당층이 30% 넘게 있습니다. 여기에 현 양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민주당 쪽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니 자기 당을 지지해 찍은 것이 아니라 상대 당이 싫어 투표한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아요. 양당의 강한 목소리 사이에서 이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정당이 유권자를 재정렬시키고 있다고 봐요. 무당층과 양당, 진보 쪽에서 실망한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을 우리가 만들어 내면 유권자 재정렬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유능한 신당이 출현하지 않고 흐지부지한 상태로 가면 내년 선거에서 투표율은 대거 떨어질 겁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정권심판론이 세지지 않겠냐고 합니다. 여론조사상으로 정권심판론이 나오더라도 투표장에는 안 나갈 수가 있어요. 기권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거꾸로 여당이 이길 수도 있어요. 그런 상태라면 향후 정국은 정말 오리무중이 되겠지요. 총선전망 관련해서 확실한 건 정의당이나 진보정당도 이렇게 그냥 흘러가면 훨씬 더 충격적으로 표를 못 받을 거라는 점입니다. 아마 총선 이후에 당을 유지하기도 힘들 겁니다.”

-선거를 앞두고 오는 9월과 10월 즈음이면 여야 모두 지금의 기득권 정당으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체와 이합집산이 계속되는 상황이 올 것으로 예측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과거에도 보면 정치적 격변의 시기엔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휩쓸려가는 그런 측면이 있었죠.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 예컨대 아까 이야기한 금태섭 전 의원 같은 분들과 같이 움직인다든가, 그런 일이 현재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건 맞습니다. 장담할 수 있는 건 없죠. 그러니까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격변의 시기가 와도 유연할 부분엔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어떻게 원칙을 잘 지켜나가느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내용을 잘 준비해 놓아야겠죠.”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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