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세계 최저 한국, ‘노키즈존’은 500곳” 외신까지 주목했다

김수연 2023. 5. 1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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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WP, 용혜인 의원 사례 등 다루며 노키즈존 문제 전해
우혜영 교수 “여성들이 집에서 아이 양육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강화시켜” 지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어린이정원 개방행사에서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령실 제공
 
최근 제주 의회에서 ‘노키즈존(어린이 출입금지 공간)’ 금지 조례안이 발의돼 화제가 된 가운데, 외신에서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한국에서 노키즈존이 확산되고 있는 모습에 주목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어린이 출입 제한 공간이 늘어날수록 육아의 어려움은 강조되고 출산을 더 꺼리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WP는 12일(현지시간) ‘식당에 아이들을 데려갈 수 없다면 차별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노키즈존 문제를 다뤘다.

한국엔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어린이 출입금지 구역 외에 아이 동반 입장이 금지되는 노키즈존이 약 500곳에 이른다고 전한 매체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사례를 자세히 다뤘다. 출산 직후 산후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아내를 위해 용 의원의 남편은 짧은 산책을 권유했다고 한다. 용 의원 가족들은 아기와 함께 집 근처 카페로 향했으나 카페 측은 ‘노키즈존’이라며 용 의원 가족들의 출입을 거부했다. 용 의원은 이때 눈물을 흘렸다며 “사회가 나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상처가 됐다”고 회상했다.

용 의원은 지난 4일 어린이날을 맞아 생후 23개월 아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단상에 올라 노키즈존을 없애고 한국판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용 의원은 당시 “인스타 ‘핫플’이라 불리는 카페와 식당, 심지어는 공공이 운영하는 도서관조차 노키즈존이 돼버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키즈존’이 아닌 ‘퍼스트키즈존’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소란스럽더라도 우리가 함께 아이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23개월 아들과 함께 어린이날 맞이 노키즈존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WP는 “어린이 출입 제한에 동의하는 이들은 ‘사업주가 자신의 업장을 통제, 관리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며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고 공공장소에서 존재할 기본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논쟁은 다음 세대를 돌보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더 큰 범위의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WP에 따르면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란이 한국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영국·캐나다·독일 등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일부 국제 항공사는 승객들이 어린이 승객과 떨어진 좌석을 고를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부 박물관·도서관도 출입객의 최소 연령을 제한하고 있다.

매체는 저출생이 사회적 고민거리인 지금 노키즈존 문제를 더욱 신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자녀 출산과 양육이 필수적이었던 과거 가족상과 달리 현대에는 출산 자체가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노키즈존이 확산될수록 출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클랜드공과대학교의 하이케 샨젤 관광학과 교수는 “노키즈존 정책은 아이를 갖기로 한 가족들을 더 설 자리가 없게 만들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P는 특히 한국의 경우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 중인 만큼 노키즈존 문제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틀랜드주립대학의 우혜영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노키즈존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10년 전”이라며 “식당에 다 쓴 기저귀를 버리고 가거나 실내에서 아이들의 소란을 방치하는 부모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잇따라 제보되며 사회적 공분을 산 게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 교수는 “노키즈존은 여성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해 육아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 기대를 지속시킨다”며 “아이들의 공공장소 출입을 제한하면서 양육이 더 어려워진 측면도 있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단념시킨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상’으로 인식되지 않는 사람을 ‘덜 받아들이는’ 사회에선 부모와 자녀는 물론 소수자와 장애인의 삶까지 어렵게 만든다고도 덧붙였다.

WP는 많은 전문가가 노키즈존보다 공공 환경을 관리하는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고 전했다. 럿거스대학의 존 월 아동학과 교수는 “사업주는 어린이의 출입 자체를 금지하기보단 실내에서 시끄럽고 방해가 되는 행위를 제지하는 게 더 낫다”며 “식당에서 술 취한 성인이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훨씬 더 짜증 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그들이 2등 시민이며 사회적 기업에 적합하지 않음을 알리는 꼴”이라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는 성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드니대학교의 에이미 콘리 라이트 아동 및 가족 연구센터 소장은 “노키즈존은 우리보다 먼저, 혹은 늦게 태어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세대 간의 근본적인 약속을 깨는 것이자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람들은 자신 역시 아이였다는 사실을 잊는다”며 “당신들은 (아기였을 때) 한 번도 소리치며 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었다.

한편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는 지난 11일 송창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주도 아동 출입제한업소 지정 금지 조례안’을 심의했다. 노키즈존을 금지하자는 내용인데, 조례안은 ‘도지사는 도민 차별과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키즈존 지정을 금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의원들과 전문위원, 도청 담당과장 등 심의에 참석한 관계자들 대부분 취지에는 공감했으나 상위법과의 충돌, 영업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통과에는 난색을 표했고, 결국 조례안 심사는 보류됐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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