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멘트덮밥 한 그릇이요!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2023. 5. 14.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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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이사를 거듭하며 몇 해 지나서 전기밥솥 시대로 넘어왔다. 그 밥솥은 우리 가족이 다시 이사의 운명에 내몰리면서 ‘오함마’ 맛을 보게 된다.
ⓒ박찬일 제공

지금이야 최근 주소지만 프린트하는 ‘옵션’이 있지만 옛날에 주민등록 등본이나 초본을 떼면 정말 대단했다. 이사 다닌 흔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주민등록증 뒤에도 날카로운 펜에 잉크 찍어서 동사무소 직원이 멋진 글씨로 새 주소를 적어 넣던 시절이었다. 여담이지만, 옛날 남자 주민증에는 병역란도 있어서 계급과 주특기를 써넣었다.

한동안 등본, 초본을 내라고 하면 아주 힘들었다. 앞뒤 한 장으로는 부족해서 두 장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직원은 면구스러워하는 내게 스테이플러로 등본을 찍어주면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괜찮아요. 어떤 사람은 열 장이 넘는 경우도 있었어요.” 주민등록 등본 열 장이 넘도록 이사한 사람은 누굴까. 뭐 하는 사람일까. 그때 물어봤어야 했는데. 누가 그러던데 집장수이거나, 뭔가 대출 받아주는 대리인을 했을 거라고 한다.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닌 건 당연한 얘기지만, 가난해서였다. 요새처럼 임대차보호법이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주인이 수틀려서 나가라면 나가야 했다. 물론 계약서에 쓴 대로 버티려면 버틸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집은 좀 예외였다. 늘 월세가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혀 짧은 내가 돌쟁이 동생에게 가르친다고 하는 말이 이랬다고 한다. 지금도 어머니는 추억하면서 마음 아파하신다. 웃기기도 하는 일이고.

“일쭈! 독쪽! 딸라!”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들은 연식이 쌩쌩하거나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경우일 거다. 번역하면 ‘일수, 독촉, 달러 이자’다. 일수는 매일 갚아나가는 사채의 일종이고, 독촉은 문자 그대로다. 집주인의 독촉이 얼마나 잦았으면 어린 내게 인이 박힌 말이었을까. '딸라'는 하루 1%짜리 고이자 사채를 말한다. 달러 이자가 얼마나 무서우면 이 말이 생겼을까. 좀 인간적인 변종으로 '반딸라'도 있다. 0.5%다. 하루에. 대체로 이런 사채는 선이자를 떼고 이자와 원금을 복리로 매기고 연체를 과다 계산하는 등 실제 예상보다 훨씬 이율이 높다. 그러니, 길에서 찌라시 보고 전화하면 안 된다. 아, 요샌 이자제한법이 생겼구나. 대한민국 좋은 나라다.

마당 있는 집이었고, 가까운 곳에 너른 솔밭이 있었으며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큰 개천도 있어서 제법 살기 좋은 동네에 여섯 살까지 살았다. 문제는 독채가 아니라 문간방이었다는 사실. 우리 여섯 식구는 바글거리며 방 하나에 살았다. 부엌이 좁아서 날이 더우면 어머니는 마당에 흙으로 구워 만든 간이 연탄 화덕을 놓고 요리를 하셨다. 이런 별도의 독립형 연탄 화덕은 방에 불을 넣고 요리도 하는 연탄아궁이 말고도 추가로 필요했고, 특히 더운 여름에 유용했다. 삼복에 밥하자고 아궁이에 불을 넣을 수는 없으니까.

연탄 화덕은 19공탄이 두 장 들어간다. 불 조절은 아래에 함석으로 된 바람 조절 구멍이 있었는데, 그게 부서지는 경우가 많았다. 연탄가스가 독해서 함석 따위는 금세 삭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면 못 쓰는 장갑이나 걸레 따위로 틀어막는데, 개별 섬유의 공기 투과 성능을 고려하여 막을 때 힘 조절을 잘해야 했다. 잘못하면 연탄이 꺼지고 낭패를 봤다. 제시간에 저녁밥을 못 먹을 수 있었다. 그때는 숯을 사다가 피워 넣었다.

그런 번거로움을 일거에(?) 해결해준 것이 바로 번개탄이다. 번개탄이 출시되자 전국의 숯 굽는 가마들이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이 상황을 구원해준 것은 돼지갈빗집이었다. 1970년대에 양돈가가 급증하고, 돼지갈비 생산이 늘면서 전문 구이집이 전국에 퍼졌다. 삼성이 용인에 돼지 사육장을 세운 것도 그즈음이다. 용인 자연농원이다. 바로 에버랜드의 탄생이다. 원래 돼지갈비는 실비집과 한식집의 안주 메뉴 중 하나였다. 삼겹살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의외로 돼지갈비, 삼겹살 전문집은 노포가 거의 없고, 있어도 역사가 짧은 편이다.

독립형 또는 이동식 연탄아궁이는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써서 아주 친숙하다. 보통 가정용은 19공탄, 업소용은 더 큰 22공탄, 25공탄을 썼던 것 같다. 별걸 다 기억한다고 하실 텐데 당시의 어린이들은 중동전쟁으로 석유파동이 나서 겨울방학을 70일씩 받았으며, 에너지에 대해 아주 각별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풍로에 석유 자바라를 쓰는 법, 배달해주는 기름은 실제로 20L들이 통이 아니라 15~16L짜리라는 것도. 물론 돈은 20L로 쳐서 받았다. 그러니 일부러 기름집까지 20L짜리 통을 두 개 들고 가서 받아오곤 했다. 한 푼이라도 아껴 살았다. 중학생 정도만 되면 그렇게 20L짜리 통 두 개쯤은 들고 고개를 오르곤 했다. 빙판에 연탄재를 깨서 끼얹은 그런 고갯길을 제대로 된 장갑도 끼지 않고 소년들이 석유를 날랐다. 힘은 들지, 손가락은 시리지. 제길.

가난한 집 밥솥의 운명

하여간 그 집에 사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급히 짐을 쌌다. 월세는 이미 몇 달 밀려 있었지만 그렇게 갑자기 짐을 쌀 줄 몰랐다. 가재도구래봐야 별게 없었다. 알루미늄으로 된 커다란 궤짝이 기억난다. 한동안 우리 집 이사에 큰일을 하던 놈이었다. 홑청으로 싼 이불짐에 밥상과 부엌 도구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급작스러운 퇴거 요구에 적이 놀랐다. 안 그래도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저녁마다 주인집 안채에서 사람들이 모여 찬송가를 불렀다. 그러더니 결국은 그 집이 통째로 교회가 되었다. 바로 순○○이라는 이름이 붙는 교회였다. 리어카에 이삿짐을 싣고 나오는데, 집구석에 둔 유리구슬과 딱지 생각이 났다. 그걸 가지러 다시 들어갔더니 주인아주머니가 호통을 쳐서 못 들어오게 막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그 집에서 양은솥밥을 자주 지었다. 어머니가 놋쇠 그릇을 들고 동네 어귀의 개울에서 양잿물로 닦던 기억도 있는데, 유행을 따라 어머니도 양은으로 ‘개비’를 했던 것 같다. 양은솥은 찌개도 빨리 끓고 해서 비싼 연료 시대에 유용했다. 하지만 빨리 삭았고, 구멍도 잘 났다. “솥 때워요!” 하는 땜쟁이 아저씨들의 활약이 바야흐로 넘쳐나던. 그때 집 쌀독에 그득 쌀을 쟁여두는 집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어느 집이나 변두리 동네는 누런 봉투로 쌀가게에서 몇 되나 쌀을 사서 먹었다. 쌀가게는 큰 멍석에 쌀을 부어두고 정부미, 일반미 아키바레(추청)로 나누어 쌀을 팔았다. 쌀보다 잡곡이 더 많이 팔리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하얀 쌀을 됫박 사서 어머니가 양은솥에 밥을 지은 날이었다. 내가 밖에서 놀다가 어둑해져서 귀가하는데 구수한 쌀 냄새가 번져왔다. 주인집 퍼런 대문 밖까지 마치 구름처럼 밥 냄새가 뭉글뭉글 넘어왔다. 한두 번 사오셨던 ‘명동 영양쎈타’ 통닭 기름내는 아버지의 냄새였고, 양은냄비 밥의 구수함은 어머니의 냄새였다.

우리 집은 이사를 거듭하며 몇 해 지나서 전기밥솥 시대로 넘어왔다. 코미디언 배삼룡이 선전하던 유니버셜 전자보온밥솥을 월부 장수에게 들였기 때문이다. 그 밥솥은 우리 가족이 다시 이사의 운명에 내몰리면서 ‘오함마(큰 망치)’ 맛을 보게 된다. 이사 간 어느 집에서 주인은 퇴거명령을 내려도 우리가 나가지 않자 오함마를 든 인부를 불렀다. 우리 집인 문간방의 바깥벽은 부엌의 외벽이기도 했는데, 오함마질에 풀썩 시멘트 벽이 무너지고, 내가 점심으로 먹을 유니버셜 전자보온밥솥 위로 회색 시멘트 가루가 가득 덮였다. 나는 발굴하는 심정으로 콘크리트 유탄으로 난리가 난 부엌에서 밥솥을 찾아냈다. 너무도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자 밥솥을 덮고 있던 시멘트 가루가 밥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시멘트 가루를 올린 덮밥은 버석거렸고, 시멘트 맛이 났다. 어린 마음에도 그냥 분했다. 그때 엄마는 어디 갔을까. 차가운 맨밥을 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휑하니 뚫린 부엌 벽 밖에서 동네 애들이 나를 들여다보았다.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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