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결손 벌써 30조…지출 확대해 돌파구 찾아야
‘대응 실패’ 세수결손
성장률 감소, 세법 변경 등
예산심사 과정에서 미반영
윤석열표 법인세 감세 상황 악화
재정상황 공개하고 합의 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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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안 걷힌다. 지난해엔 초과 세수가 고민이더니 올해는 세수결손이 고민이다. 먼저 세수결손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따져보자. 일단 문재인 정부는 증세해서 초과 세수가 발생했고, 윤석열 정부는 감세해서 세수결손이 생겼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세수결손이란 전년도보다 세금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예측보다 세금이 덜 걷혔다는 의미다. 즉 전년도보다 세수가 줄어도 예측만 잘했으면 세수결손은 생기지 않는다. 초과 세수의 책임이 증세가 아니라 예측 실패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왜 예측에 실패했을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아니면 제대로 예측을 못 해서? 주식쟁이들의 격언이 있다. ‘예측 실패는 용서해도 대응 실패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만약 예측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시장 변화가 있었다면 세수결손에 따른 정부 책임을 너무 과하게 묻지 말자. 결과론으로 추궁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질타는 없다. 세수결손이 대응 실패라면,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세수결손은 예측 실패라기보다 대응 실패다.
성장률 예측치 0.4%p 낮아졌지만…
세수결손 원인으로는 첫째, 변화된 경제적 상황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세수 예측을 지난해 7월 말 기준 예측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이후 국회에서 올해 예산이 통과되는 12월까지 경제 상황이 안 좋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해 11월 우리나라 올해 성장률 예측치를 두달 만에 2.2%에서 1.8%로 0.4%포인트 낮추기도 했다. 지난해 말까지 국회는 올해 예산이 통과될 때까지 변화된 경제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회에서 변경된 세법에 따른 세수 효과까지 추계에 반영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세수 예측이 잘못돼 큰 쟁점이 됐다. 수도꼭지를 찬물에서 뜨거운 물로 급변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국회 심의 과정 동안 변화된 경제 환경을 반영해 재추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재추계만 하면, 법인세수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법인세수는 기업 실적에 따라 6개월 뒤 세수가 정해진다. 즉, 매년 하반기 실적을 알면 이듬해 3월 법인세수는 짐작할 수 있다. 국회에 제출하는 7월 기준으로는 어렵지만 3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11월 말 기준으로 법인세를 다시 추계하면 세수 예측은 식은 죽 먹기다.
둘째, 세수결손이 발생했으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재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세수가 감소하면 현금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응하려면 국채를 더 발행하든지 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국채 발행 한도는 이미 정해져 있고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본예산 예측보다 세수가 적게 들어오니 그만큼 국채 발행 한도를 늘려 달라고 국회에 요청하는 ‘세입 감액 경정 추경’ 절차다. 아니면 세수가 부족하니 예정된 지출을 줄여달라고 국회에 요청하는 ‘세출 감액 경정 추경’을 할 수도 있다.
행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급하지 않은 사업 지출을 줄일 것을 종용하는 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2013~2014년 세수결손이 발생할 때, 기획재정부가 불용을 종용한다는 얘기가 많이 돌았고 실제로 결산 때 불용률이 대단히 높았다. 국회가 편성한 금액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지출을 미루는 것은 예산심의권을 훼손하는 행위다. 결국 추경 말고는 세수결손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추경 논의를 미룰수록 시장의 예측 가능성만 저해될 뿐이다.
셋째,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세액공제 확대로 세수결손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여야 합의로 반도체 산업 등의 세액공제가 6%에서 8%로 늘었지만 불과 열흘 만에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15%로 다시 확대됐다. 이 때문에 올해 8월 이후 법인세수는 본예산 예측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칸막이’ 허무는 적극재정 필요
재정 당국은 여유가 있는 기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세수결손에 대응한다고 한다. 세수가 부족할 때, 재정개혁을 통해 돈을 마련한다는 정책의 방향성은 환영한다. 돈이 부족하면 대출을 받기 전에 서랍에 잠자는 돈부터 꺼내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 고용촉진 기금’이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 미달 업체가 내는 부담금이 주요 수입원이다. 이 돈으로 장애인 추가 고용 업체를 지원한다. 그런데 장애인 의무고용 미달 업체는 넘치고, 추가 고용 업체는 부족하니 기금은 남아돈다. 실제로 올해만 해도 1조원이 넘는 돈이 장애인 정책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돈이 모자라지만 다른 쪽에서는 돈이 남는 ‘재정의 칸막이’가 있다는 의미다. 1조원 여유 재원을 그냥 쌓아만 놓지 말고 적극적으로 장애인 정책에 쓰는 것은 어떨까? 이런 재정의 칸막이는 제법 많이 있다. ‘스포츠토토’ 수입을 독점하는 국민체육진흥기금에도 올해 1조4천억원이 넘는 여유 재원이 돈놀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기금의 여유 재원을 활용한다고 한 이상 이런 재정의 칸막이를 낮출 수 있는 전향적인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올해 세수결손 규모는 이 정도 재정개혁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올 3월까지 지난해보다 줄어든 금액만 이미 24조원이다. 올해 3월 법인세 감소분을 고려하면, 4월 분납분은 약 2조원 감소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오는 8월 이후 반도체 등 세액공제 효과까지 나타나면, 이미 확정된 세수 결손분만 약 30조원에 이른다.
이 규모의 세수결손은 올해 하반기 경제가 지난해 수준을 유지한다는 장밋빛 희망 섞인 가정이다. 만약 올해 하반기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세수결손 30조원’도 지나친 낙관이다. 실제로 올해 경제 예측치는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 논의조차 없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예측 실패는 용서해도 대응 실패는 용서하면 안 된다.
현금 유동성 문제로 ‘세입 감액 경정 추경’은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가정 살림은 수입이 줄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국가재정 운용 원칙은 반대다. 내수가 안 좋아 세수가 줄 때는 오히려 지출을 확대해서 내수를 부양하는 것이 국가재정 원칙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지출 규모를 국민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국민적 합의를 위해서 정부는 현재 재정 상황을 정확히 국민에게 알리고 지출 규모를 정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변화된 경제성장 전망치에 따라 올해 세수결손 규모를 솔직하게 재추계하자. 세입 예측 모델을 정교화하려면 모델을 공개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전국의 전문가들이 공짜로 모델을 검증하고 무수한 대안을 내놓을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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