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투자 리스트, 논란 이유는…"시세조종에 취약한 김치코인"
부실 백서에도 상장…시세조종에 취약
EU 미카법 "코인 발행, 당국 승인받아야"
국회, 뒤늦게 관련 입법 본격화
"가상자산(코인) 투자가 불법인가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 관련 의혹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상에선 '가상자산 투자가 불법이 아니지 않나'라는 글이 올라온다. 김 의원의 해명도 그랬다. 김 의원은 지난 9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당시 청년들 사이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변호사 일해 번 돈으로 '내돈내투(내 돈으로 내가 투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6년 코인 사기 피해 5조2,941억 원… '김치코인', 시세조종에 취약
그러나 김 의원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투자한 가상자산이 주로 위믹스와 클레이페이 등 이른바 '김치코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한국에서 발행되고, 주로 한국에서만 거래되는 가상자산인 김치코인은 전체 발행량이 소규모이다 보니, 시세조종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고 부실 코인을 거래소에 상장시킨 뒤 시세조종으로 고점에서 팔아 치워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방식이다. 시세조종 타깃이 된 가상자산은 한 번 가격이 크게 오른 후, 통상 다시 가격이 오르지 않고 거래소에서 퇴출되거나 폐지되는 수순에 이른다. 가상자산 투자자들 사이에선 '김치코인은 믿고 거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레온 풍 바이낸스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지난달 28일 영등포구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혁신 학술 포럼'에서 "한국 가상자산 시장이 시세조종 세력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글로벌 가상자산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거래가 절반 이상 차지하지만, 한국은 전체 거래의 80% 이상이 한국에서만 주로 거래되는 알트코인에 몰려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코인 사기 피해액은 5조2,941억 원에 달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폐지 건수는 239건으로 신규 거래지원(365건) 코인의 65%에 달했다. 지난달 강남에서 일어난 납치·살인사건도 김치코인 시세조종이 발단이 됐다. 시세조종 일당은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고 '퓨리에버 코인(P 코인)'을 국내 대형 거래소에 상장, 시세조종으로 가격을 올려 물량을 털어내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EU, '암호자산시장 법률안(MiCA)' 시행 앞둬…뒤늦게 논의 시작한 국회
전문가들은 누구나 부실코인을 쉽게 공개, 거래시킬 수 있는 제도가 김치코인 관련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주식시장은 상장요건을 엄격하게 심의하는 반면 현재 코인 공개 등 상장 여부는 각 거래소가 일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가상자산은 꼼꼼히 뜯어보면 '아무 말 대잔치'와 다름없는 사업구조 내용을 백서(사업계획서)에 올렸지만, 공개돼 거래될 수 있었다. 퓨리에버는 백서에 '깨끗한 공기의 중요성을 경각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국회와 협력한다'는 다소 황당한 사업비전을 제시했지만 한때 시가총액이 2,000억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반면 해외에선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방안이 일찌감치 논의돼 왔다. 최근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난달 유럽연합(EU)에서 통과시킨 '암호자산시장 법률안(MiCA)'이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증권거래와 유사한 수준의 거래소와 발행자(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간한 법안 번역본에 따르면 주요 내용은 △가상자산 발행은 관계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함△가상자산 공개·거래 승인자는 법인으로 제한 △발행자는 매월 자신의 웹사이트에 준비자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공시해야 함 △비트코인 등 발행자가 특정되지 않는 암호자산에 대해선 거래소 등 암호자산서비스 업자가 투자자 보호 규제 마련 △내부자 거래 금지 △시세조작 금지 등이다.
국회는 김 의원 사태를 계기로 뒤늦게 가상자산 관련 규제 입법에 나섰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1일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고 이용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안'을 의결했다. 그동안 발의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 19건을 통합·조정한 이 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이용자 자산 보호를 위한 의무를 규정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가 발생할 경우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책임도 부담하도록 했다.
다만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그동안 부실 가상자산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구제받기 어렵다. 법의 사각지대가 방치됐던 사이, 김치코인을 중심으로 한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너무 커진 상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 참여자는 580여만 명(2021년 4월 기준)에 달할 정도다. 이창용 한국은행은 총재는 지난 3월 국제결제은행(BIS)이 스위스 바젤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한국은 비트코인 거래 비중이 세 번째로 큰 나라이며 가상통화 거래의 50% 이상이 한국 원화로 이뤄진다"며 "성인 인구의 16% 이상이 가상통화 거래 계좌를 갖고 있는데, 이는 내게 골칫거리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한국산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할 대목으로 꼽힌다. 한 위믹스 투자자는 위믹스 관련 커뮤니티에서 "한국산 가상자산을 잡코인이니, 김치코인이라고 부르는데 왜 아무도 반감이 없는 건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투자 시, 백서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주요 체크리스트는 △프로젝트가 어떻게 수익을 만들어 내는지 △수익 창출 로드맵이 지속가능한지 △토큰 발행량과 분배·유통 계획은 무엇인지 △해당 회사를 이끌고 있는 대표이사와 임원은 누구인지 등이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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