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전 정권에서 배워야할 점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은 1년 전에 문 닫은 문재인 정부와 싸우고 있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즈음인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지난 정부는 케이(K)방역이라는 말을 하면서 코로나 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했지만, 엄밀히 평가하면 국민의 자유로운 일상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영업권·재산권, 의료진의 희생을 담보로 한 정치방역으로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판의 근거는 다소 당황스럽다. △ 코로나 발생 초기에 의사협회의 6차례 건의에도 중국인 입국자를 통제하지 않은 것, △ 신도들의 반발로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법무부 장관이 대구 신천지 본부에 압수수색하라고 공개 지시한 것, △ 청와대 및 정부의 컨트롤타워를 전문성이 아니라 이념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맡은 것 등이다.
이건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코로나19 대응 방안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조치들이다. 긍정 평가 요인을 근거로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고 주장하니 다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건 방역의 '정치 평가'일 뿐이다. 코로나19 종식선언은 윤 대통령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확진자 수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무슨 근거로 종식선언을 했는지 명확히 밝히지도 않았다. 그래놓고 '과학 방역'이란다. 아무리 전임 정부를 비판하고 싶어도 취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학적 근거도 없이 '묻지마' 전임 정부 탓을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전 정부 탓'은 계속된다.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도 문재인 정부를 향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는 "과거 정부에서는 국군통수권자가 전 세계에 '북한이 비핵화를 할 거니 제재를 풀어 달라'고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방 체계가 어떻게 됐겠나. 결국 군에 골병이 들고 말았다. 정부가 정치이념에 사로잡혀 북핵 위험에서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우리 정부가 비상식적인 것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9일에는 국무회의에서 최근 논란이 되는 전세사기 사건을 두고 문재인 정부 탓을 했다. 윤 대통령은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전세 사기의 토양"이라며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적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와 마찬가지로, 범죄자의 선의에 기대는 감시 적발 시스템 무력화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
10일에는 취임 1주년 기념 내각, 참모, 당 지도부 오찬에서 "지난 대선의 민심은 불공정과 비상식 등을 바로잡으라는 것"이라며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는 안보, 반시장적, 비정상적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사흘 내내 이어진 발언은 죄다 ‘전 정부 탓’이다.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과거 정부의 잘못을 규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개혁을 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과거 정부의 잘못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지난 집권 1년 동안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것을 역으로 입증하는 일이다. 이른바 ‘집토끼 잡기’, 보수층 지지를 강화하려는 정치공학적 판단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편가르기‘를 비판해 왔던 이 정부 인사들은 새로운 '편가르기'를 발명해 내고 있다. '편가르기 정치'는 '반대편 타도'를 양분으로 삼는다. 잘못된 모든 것의 책임을 '반대편'에 돌리고 비판과 견제는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윤석열 정부의 정치는 생산적 수단으로 작동하지 않고 반대편을 숙청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전 정부와 '비교'를 좋아하는 윤석열 정부이니, 내친김에 전 정부와 비교해 볼 만한 걸 찾아 봤다. 지금 2년차를 맞이한 윤석열 정부처럼, 문재인 정부가 2년 차 들어갈 무렵 나온 발언이다.
"경제나 국정 운영은 어느 정부의 임기를 딱 잘라가지고 이렇게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결국은 계속적으로 쭉 흘러가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떤 것이 됐든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정책을 맡고 있는 저희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책임 있는 정책 당국자’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어떤 것들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희가 내부적으로 분석을 통해 고칠 것은 고치며 좋은 정책하는 것이 정책을 맡고 있는 책임자들로서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2018년 8월 27일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말이다. 이 답변을 받은 질문자는 국회 예결특위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수혁 의원이었다. 그는 "과거 경제 정책의 실패 사례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의 경제 상황을 야기한 과거 9년 보수 정부의 경제정책은 뭐였다고 보느냐"고 질문했다. ‘전 정부 경제 정책’을 탓해달라는 요구처럼 들린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내 탓이오'였다.
김동연 지사는 지난 2월 언론 인터뷰에서 '남탓'만 하는 윤석열 정부를 두고 "못난 사람들 남 탓한다"며 "'과거 정부 탓하는 건 스스로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전 정부와 비교하는 걸 좋아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사례를 잘 참고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임 대통령 퇴임 당시 국정 운영 지지율보다 낮은 취임 1년차 지지율 성적표를 받아놓고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전 정권 탓'을 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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