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오늘 대선…에르도안 종신집권이냐 야당 정권교체냐
야권 단일 후보 클르츠다로을루, 반에르도안 기치로 판세 주도
우크라 전쟁 등 국제정세에 중대 분기점…불복 시 큰 혼란 우려도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2003년 이후 20년 넘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 중인 튀르키예에서 14일(현지시간)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가운데 6개 야당 단일 후보인 공화인민당(CHP)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최장 2033년까지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열게 되지만,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승리할 경우 의회 민주주의를 복구하고 서방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대전환이 예상된다.
이번 선거는 튀르키예 국내뿐만 아니라 나토와 유럽,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라는 평가도 나온다.
클르츠다로을루 박빙 우세…과반 득표자 없으면 28일 결선투표
외신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 무하람 인제 조국당 대표,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 등 4명이었으나, 지난 11일 인제 대표가 전격 사퇴하면서 후보는 3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안 대표의 지지율이 미미해 실질적으로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 2명의 양강 구도가 확립됐다.
이들 2명이 40%대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소폭 앞서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최근에는 인제 대표의 사퇴로 야권 표 분산 우려가 사라지면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한층 유리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날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올 경우 선거는 종료되지만, 어느 후보도 과반을 득표하지 못할 경우 2주 뒤인 오는 28일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가 실시된다.
선거전 초반만 해도 28일 결선 투표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됐으나, 인제 대표의 사퇴 이후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사퇴한 인제 대표 지지층의 이동, 전체 인구의 약 20%에 달하는 쿠르드족 표심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친쿠르드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은 이번 대선에서 야당 단일 후보 진영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생애 처음으로 투표하는 유권자 500만 명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도 관심사다.
야권, 경제실정·권위주의 비판…에르도안, 선심성 공약으로 지지층 결집 시도
이번 대선 최대 화두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실정과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이다.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는 2013년에 비해 약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고, 물가는 지난해 10월 전년 대비 85% 이상 상승하는 등 24년 만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에 따라 서민들의 생활고가 극심해졌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며 금리 인상을 막는 등 비상식적 경제 정책을 펼쳤다.
지난 2월 튀르키예에서만 5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진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에 치명타가 됐다.
또한 지진 초기 부실 대응 논란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민심 이반을 일으켰다.
이 같은 상황을 겨냥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최근 온라인 연설도 화제가 됐다.
그는 양파를 들고 "지금은 1㎏에 30리라(약 2천원)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계속 집권한다면 100리라(약 6천800원)가 될 것"이라며 경제정책 실패를 질타했다.
야권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회복하고 에르도안 정부의 비정통적 경제 정책을 철폐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한편 언론 자유와 사법기관의 독립성을 회복하겠다고 공약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저소득층과 보수 이슬람 신자층 등 지지층 결집에 나서는 한편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년 요건을 폐지해 조기 연금 수령을 가능하게 하고 최저임금과 공공 근로자 보수를 대폭 인상하기로 했고, 아예 이달부터는 한 달간 가정용 가스를 무상 공급한다. 학생들에게 무료 인터넷 데이터도 제공한다.
야당에 대해서는 이슬람 교리에 위배되는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집단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재집권시 2033년까지 집권가능…정권교체시 국가 대개조 착수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중임 대통령으로서 조기 대선을 실시할 경우 추가 5년 임기를 보장한 헌법에 따라 2033년까지 30년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총리 재직 기간을 포함해 지난 20년간 다져온 통치 기반을 토대로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해지고, 자신이 추구해온 이슬람주의를 전면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등 친러시아 노선도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집권할 경우 경제와 사회 전반에 대한 대대적 개조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파탄 직전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경제 정책을 철폐하고 물가 및 통화 안정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세속주의를 복원하고 대통령이 독점한 권력을 나눠 의회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아울러 친서방정책을 통해 유럽연합(EU) 및 나토와의 관계 회복에도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패배할 경우 결과를 승복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과거 여러 차례 주요 선거 때에도 결과에 불복하고 재선거를 요구한 적이 있다.
이미 부정선거 우려가 제기되는 등 자칫 선거 후 대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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