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조작으로 병들고 있는 의학 연구[PADO]
[편집자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진 지 20년 가까이 됐습니다만 논문 조작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학계만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의료 연구에서 조작된 논문이 쌓이면 심지어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는 치료법이 버젓이 시행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 요약 소개하는 이코노미스트의 2023년 2월 22일 기사를 보면 잘못된 치료법이 적용돼 영국에서만 한 해 1만 명이 사망했을 수 있다는 추산이 언급됩니다. 일반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개선을 촉구해야 합니다. 아래 기사의 전문은 PADO 웹사이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2011년, 호주 멜버른의 모나쉬 의대 산부인과 교수인 벤 몰 박사는 한 이집트 연구자가 학술 저널에 발표한 자궁 근종과 불임에 관한 논문이 철회됐다는 공지를 접했다. 학술지는 게재 철회 이유로, 해당 논문보다 먼저 스페인에서 나온 자궁 용종에 대한 연구와 동일한 수치가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알고 보니 저자가 용종 논문 일부를 베낀 뒤 질병만 근종으로 바꾼 것이었다.
몰 박사는 "그때부터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논문 독자로서만의 경각심은 아니었다. 당시 그는 유럽 산부인과 저널의 에디터였고 종종 다른 저널에 제출된 논문도 심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조작된 데이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논문 2편의 심사를 맡게 됐다. 그는 '게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1년 후, 그는 똑같은 논문이 의심스러웠던 데이터만 수정해 다른 저널에 실린 걸 봤다.
이후 그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데이터 조작이 의심되는 저자들의 논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의심 가는 곳에는 꼭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논문은 환자의 특성을 보여주는 표에 짝수만 나왔다. 임상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수치가 기재된 논문도 있었다. 출산을 앞둔 산모를 의도적으로 무작위로 선택했는데도 아기의 성비가 4대 6으로 나오는 기이한 상황의 논문도 있었다. 임상 시험을 놀라운 속도로 마쳤다는 논문은 그나마 흔한 사례였다.
몰 박사와 동료들이 우려스러운 논문을 찾아 해당 논문을 게시한 저널에 의견을 보낸 것만 750건이 넘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거나 조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문제를 제기한 연구 중 철회된 것은 80건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의심스러운 연구들이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체계적 문헌고찰은 기존에 수행된 1차 연구들을 모아, 임상 진료에 정보를 제공한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수백만 명의 환자가 잘못된 치료를 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선택적 제왕절개술을 받는 여성에게, 신생아의 호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는 것이 한 예다. 스테로이드 주사가 태아의 뇌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근거중심의학(EBM)을 장려하는 비영리단체 코크란이 2018년 발표한 문헌고찰이 이 기법의 의학적 근거가 됐다. 하지만 몰 박사와 동료들이 이 문헌고찰을 검토해보니 그들이 신뢰성을 지적했던 연구 3편이 문헌고찰 안에 들어 있었다. 결국 3편의 연구를 제외하고 2021년 수정 발표된 문헌고찰은 제왕절개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의 이점이 불확실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몰 박사 같은 탐정들의 노력으로, 부분 혹은 전체적으로 조작된 논문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리트랙션 워치'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생물의학 부문 논문 1만9000여 편이 철회됐다(그래프 1 참조). 그중 이 분야에서 2022년에 철회된 게 약 2600건으로,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일부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철회됐지만, 어떤 형태로든 부정행위에 관여된 논문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저널이 논문 철회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위의 집계에 따르면 대략 논문 1000편 중 한 편 정도가 철회된다. 그다지 상황이 나쁘지 않은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트랙션 워치 공동 설립자인 이반 오란스키는 논문 조작을 다룬 다양한 연구들을 볼 때, 논문 50편 중 1편 정도가 조작과 표절 또는 심각한 오류 등 신뢰할 수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논문 조작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몇몇 논문, 특히 임상시험 결과를 다룬 논문은 많은 논문을 생산하는 개인 또는 집단 조작꾼의 소행이다. 몰 박사가 발견한 논문들이 여기 속한다. 다른 유형으로는 소위 '논문 공장(paper mills)'라는 곳에 돈을 주고 조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분자생물학 같은 기초과학 분야 논문이 많다. 논문 공장은 보통 기존에 발표된 제대로 된 논문을 베낀 뒤, 논문이 다루는 유전자나 질병만 바꾸는 식으로 조작을 한다.
리트랙션 워치 데이터에 따르면, 가장 많은 논문이 철회된 저자 200명이 1만9000건의 전체 철회 건수 중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큰 대학이나 병원의 선임급 연구자들이었다. 연구를 조작한 동기를 공개적으로 밝힌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연구를 조작했던 이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왜 다른 연구자들도 그러한 길로 빠져들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과학 연구는 고난의 행군이지만 그 결과는 연구자의 야심찬 가설에 대해 때때로 실망스러울 정도로 모호한 결과가 나온다. 네덜란드 틸뷔르흐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던 디데릭 스타펠은 연구 조작이 드러난 후, 자신이 쓴 논문 58편이 철회됐다. 그는 회고록 <페이킹 사이언스(Faking Science)>에서 조작을 하지 않으면 "단순하고 명확하며 아름답고 우아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구를 조작하는 다른 이들처럼, 그 역시 더 높은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동기에서 논문 조작을 했다. '출판이냐 도태냐(publish or perish)'라는 말은 학계에 만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긴 논문 게재 이력은 승진 또는 더 나은 직장을 얻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학술지들은 강력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를 선호한다. 결국 연구자의 노력 대부분은 경력 관리의 측면에서 볼 때 그냥 낭비되는 것이다.
일부 사기꾼들은 많은 논문을 쏟아내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이 탄로나기 전까지 명예를 누린다. 실험심리학자 도로시 비숍은 이런 사기꾼들 중에는 연구 집단을 자체적으로 꾸리거나 다른 연구 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은퇴한 뒤, 현재 자원봉사로 의심스러운 연구를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한 사기꾼의 연구 조작이 탄로나면 그 여파를 동료들이 감당하게 된다. "이런 일로 후배 학자들의 경력이 완전히 망가지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나죠."
특히 중국에서 이런 문제가 크다. 중국 병원에서 최고의 직위를 얻기 위해 비현실적인 논문 게재량을 채워야 하는 경우가 많고 고급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면 거액의 현금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중국에서 논문 공장이 번성한 게 놀랍지 않은 이유다. 실제로 논문 공장과 연루돼 철회된 논문 거의 전부에 중국인 저자가 들어있다. 학술지에 제출된 논문 중 중국 학술 기관 소속 기고자가 1명 이상 포함된 논문은 약 5분의 1. 그런데 이 5분의 1에서 철회된 논문의 거의 절반이 나왔다.
그러나 논문 공장의 표적이 된 2개의 저널에 제출된 논문들을 검토해보면 비단 중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70여 개국 저자들이 논문을 조작했다. 그 분포를 보면 중간 소득 국가(중국 포함, 그래프 3 참조)가 가장 많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커다란 임상시험 조작 사례에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 일본 저자의 것도 있었다.
아직 적발되지 않은 부정행위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비숍 박사는 "우리에게 알려진 부정행위는 솜씨가 서툰 것들뿐"이라며 "아주 정교하게 부정행위를 하면 적발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 조작은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2009년 미국 학술지 PLOS ONE은 연구 부정에 대해 미국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설문 18개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인정한 응답자는 2%뿐이었지만 위조한 사람을 안다는 응답은 14%였다. 응답자의 3분의 1이 "직감"에 따라, 불편한 데이터를 누락하거나 연구 프로토콜 중 중요한 부분을 바꾼다는 등의 수상한 연구 관행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 중 72%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 동료들을 비난했다.
미국만 유별난 게 아니다. 2016년에 발표된 영국의 학계 설문에 따르면, 거의 5명 중 1명이 데이터를 조작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네덜란드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설문에선 생명과학 및 의학 분야 연구자 중 10%가 데이터를 위조하거나 조작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가짜 논문에는 이미 다른 연구를 통해 뒷받침된 치료법을 지지하는 연구가 많다. 때문에 보통은 가짜 논문들이 임상 진료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몇몇 사기꾼들은 쓸모없거나 심지어 해롭다고 판명된 치료법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수술을 받는 중환자의 혈압을 높이기 위해 녹말을 주입하는 것이다. 이 처방의 근거가 된 것 중에 독일의 마취과 의사 요하임 볼트가 발표했다 철회된 논문 7편도 있다. 볼트의 조작이 탄로난 후, 2013년 미국 의학협회 저널은 수정된 내용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녹말을 주입하면 환자의 신장 손상을 유발하고 때로는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는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심장병 환자에게 수술 전에 베타 차단제를 10년 이상 투여해 왔다. 2009년에 나온 한 연구가 이러한 관행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 연구 역시 일정 부분 이상 조작된 데이터에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요법으로 영국에서만 연간 1만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또한 고용량 설탕 수용액 주입이 두부 손상 후 사망률을 낮춰준다는 체계적 문헌고찰이 철회된 사례도 있다. 문헌고찰에 포함된 특정 연구원의 연구들을 조사해보니, 해당 연구자가 주장하는 임상시험들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계속)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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