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포기 직전→KGC 통합우승', 김상식 감독의 인간극장[스한 인터뷰]
[안양=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안양 KGC가 한국프로농구 역사에 남을 대업의 주인공이 됐다. 정규리그에서 한 번도 선두를 뺏기지 않고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한 KGC는 서울 SK를 상대로 챔피언결정전 7차전 접전 끝에 구단 역사상 4번째 플레이오프(PO) 우승이자 2번째 통합우승을 이뤘다. 시즌 중 차지한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 우승까지 합치면 구단 최초의 트레블 달성이다.
그리고 이 영광의 시즌은 김상식(55) 감독이 KGC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첫 시즌이기도 했다. 스포츠한국은 은퇴의 갈림길에서 돌아와 KGC를 챔피언으로 이끈 김상식 감독을 우승의 감동이 남아있는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만났다.
▶은퇴 기로에서 우승 감독으로
2022~2023시즌 KGC는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이어 PO 우승까지 거머쥔 2번째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 시즌 전까지 이 같은 사례는 2018~2019시즌 울산 현대모비스가 유일했다. 여기에 KGC는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 SK에 패한 것도 갚아줬다.
이 모든 것이 김상식 감독의 KGC 사령탑 부임 첫해에 일어났다. 여기에 김 감독이 KGC 감독직을 제안 받기 전 농구계를 떠날 생각까지 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2021년에 국가대표팀 감독을 그만둔 이후 러브콜이 한동안 없었고, 적은 나이도 아니기에 농구에 미련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할 생각도 했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아내에게 얘기를 하고 제주도에 2주 정도 내려가 있었다. 그러던 중 국가대표팀 코치 시절 감독으로 모셨던 허재 감독님 모친상 소식을 듣고 짐을 정리해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다시 제주도에 가려고 하던 찰나에 KGC로부터 감독직 제의가 왔고 얘기를 나눈 끝에 팀을 맡게 됐다. 농구를 그만두기 직전까지 갔다가 이렇게 우승까지 하니 감회가 새롭다."
KGC는 지난 시즌 6강 PO에서 챔프전까지 진출했지만 SK에 1승4패로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여기에 두 번의 PO 우승을 함께한 김승기 감독이 올 시즌을 앞두고 고양 데이원의 사령탑으로 떠났으며 팀의 주포였던 전성현도 김승기 감독을 따라 데이원과 FA 계약을 맺었다. 구단이 전성현의 보상선수 지명 대신 보상금만 가져오면서 전력 누수가 심했다. 중요 전력을 고스란히 잃은 KGC를 시즌 전부터 우승 후보로 평가하는 팀은 나머지 9개 구단 중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KGC의 새 사령탑이 된 김상식 감독이 반전을 만들었다.
"전성현이 떠난 후 구단에 배병준, 정준원, 김철욱 영입을 요구했다. 전성현의 부재에 대한 얘기가 많았기에 모션 오펜스(유기적인 움직임과 패스를 기반으로 득점을 만들어가는 공격전술)를 팀에 입히고 전성현이 갖고 있던 득점력을 여러 선수에게 분배하고자 했다. 정규리그 시작 전 KBL 컵대회 때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기존에 전성현과 오마리 스펠맨의 개인 돌파가 많았던 농구에서 벗어나 모두가 움직이면서 기회를 만들고 득점을 올리는 방식을 가져가는 것이 어색했던 모양이다. 선수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맞춰갔더니 점점 팀의 호흡이 좋아졌다. 그렇게 임한 정규리그에서 개막 4연승을 달리며 1위를 질주하고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호통 아닌 소통으로, 우승 이끈 '아빠 리더십'
김상식 감독은 시즌 내내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김 감독의 이름과 아버지를 더한 '식버지'라는 별명이 탄생할 정도.
"기술적인 부분이야 억지로 연습해도 늘지만 팀워크는 한 번 무너지면 끝이다. 선수들을 혼내기보다는 칭찬해주고 선수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고자 했다. 경기를 하다 보면 화나는 일도 많지만 그걸 선수들에게 바로 얘기하면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을 했을 때는 확실하게 질책한다. 최승태-조성민 코치, 주장 양희종이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 줘서 선수들과의 소통이 잘 이뤄졌다."
김상식 감독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의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도자 첫해였던 조성민 코치는 시즌 후 김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경기 중 벤치에서 코칭스태프와 함께 회의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던 주장 양희종도 김 감독에 대해 "팀의 리더이자 지도자를 육성하는 선생님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2003년에 선수 은퇴 후 미국에 코치 연수를 가서 필 잭슨 감독의 LA 레이커스를 관찰했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부분만 머리에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켜보니 기술만큼 중요한 게 팀을 운영하는 시스템이었다. 감독 혼자 선수들을 이끄는 것보다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사전에 코칭스태프와 회의를 하고 나면 선수들과의 비디오 분석 시간은 내가 안 들어가고 코치들에게 설명을 맡긴다. 감독 없이 선수들에게 분석 내용을 직접 얘기하면 코치 본인들도 공부가 되고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기가 용이하다. 감독 역시 그렇게 나온 코치들의 아이디어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모션 오펜스를 기반으로 한 유기적인 공격과 선수들과의 원활한 소통 외에 부상 관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김상식 감독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들은 되도록이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출전을 허가하지 않는 등의 엄격한 모습을 보이며 감기 몸살로 약 3주를 빠진 렌즈 아반도를 제외하고는 장기 부상자를 만들지 않았다. 바쁜 경기 일정 속에서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부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비시즌에는 누구보다 연습을 많이 해서 체력을 올려야 하지만 시즌에 들어갔을 때는 기존에 만들어놓은 체력을 유지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고참이든 어린 선수든 경기를 많이 뛰는 선수들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물론 이 방식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선수들이 스스로 보강 운동하고 치료 받는 시간으로 휴식일을 활용하더라. 부임한지 1년도 안돼서 이런 문화가 만들어지고 감독-선수 간의 신뢰가 쌓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KGC의 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김상식 감독의 '아빠 리더십'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선수는 변준형과 스펠맨이라고 할 수 있다. 변준형은 전성현이 떠난 이번 시즌, 공격과 조율에 모두 능한 모습을 보이며 정규리그 어시스트 3위(경기당 5개)의 좋은 활약과 함께 리그 베스트5 선정과 팀의 통합 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에이스로 거듭났다. 스펠맨은 정규리그 득점 2위(경기당 19.9득점)에 이어 SK와의 챔프전 7차전에서 34득점을 폭발하며 지난 시즌 준우승의 눈물을 씻어냈다.
"변준형은 공격형 가드로서 본인의 득점력도 살리되 팀의 공격 템포도 조절할 줄 알아야 했다. 동영상을 통해 모션 오펜스의 부분적인 연습을 했다. 또한 실책을 범해도 혼내는 것보다는 다음에 더 잘하자고 말해주니 선수도 점차 자신감을 얻었다. 스펠맨은 감독으로서 가장 많이 화를 누르고 대한 선수였다(웃음). 어느 날 스펠맨의 어머니가 오셨을 때 인사의 의미로 향수를 선물했는데 스펠맨이 이제까지 감독에게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깜짝 놀라더라. 이후 '감독님 말은 다 잘 듣겠다'고 말했다. 감독이 모든 선수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웬만한 경사는 직접 가서 축하해줬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옮긴 부분이 선수들에게도 좋게 비친 모양이다.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다."
▶'33년' 만의 첫 우승, 늦게 핀 꽃의 아름다움
챔프전 7차전 치열한 연장 승부 끝에 KGC가 SK에 경기 종료 3.4초를 남기고 100-97로 앞선 채 공격권까지 소유하며 우승을 눈앞에 뒀다. 그때 어깨 부상을 안고 있던 KGC 주장 양희종이 유니폼을 입고 코트 위에 섰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KGC 15년 원클럽맨' 양희종이 선수로서의 마지막 순간을 코트 위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한 김상식 감독의 배려였다. 같은 날 인터뷰를 진행했던 양희종은 "감독님이 '나는 선수 은퇴 때 이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무리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가장 아쉽다. 그래서 제자들을 잘 챙겨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양희종에게)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 감사하다고 하더라. 상황을 봐야했지만 아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오랜 세월 KGC를 위해 헌신한 양희종이 마지막 순간에는 코트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3.4초가 남은 상황에서 리바운드를 잡고 공격권을 가져왔을 때 들여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챔프전을 이기고 마지막에 희종이까지 코트에 설 수 있어서 감독으로서 너무나도 감사하다."
김상식 감독은 선수-코치-감독 경력을 통틀어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 시즌에 지도자 생활 처음으로 KBL 감독상을 수상한 김 감독은 1990년 실업농구팀인 기업은행 농구단에서 선수 데뷔를 한 뒤 33년 동안 계속됐던 무관의 한까지 풀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안양 KT&G, 대구 오리온스, 서울 삼성에서 감독 대행을 했지만 정식 감독으로 전환된 경우는 오리온스 시절 뿐이었고 우승과도 연이 없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지난해에는 농구인으로서 마지막이라고 봤는데 지금은 우승 감독이 됐다. 우승 후 아내에게 '이런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기적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김상식 감독은 끝으로 자신의 첫 우승을 함께한 KGC라는 팀과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KT&G 시절 코치와 감독대행을 지낸 후 15년이 흘러 감독으로 돌아온 안양에서 우여곡절 끝에 우승을 이뤘다. 기회를 주시고 응원해주신 구단, 코칭스태프, 선수, 팬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특히 챔프전 7차전에서 홈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함성은 대단했다. 1990년대 NBA 유타 재즈 팬들의 응원 소리가 비행기 이착륙 시 데시벨을 능가했다지만 이번 챔프전 KGC 팬들의 함성 역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다음 시즌을 더욱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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