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볶음면이라고요?… 속으셨습니다 [S 스토리]

박미영 2023. 5. 1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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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푸드’ 전세계적으로 인기 치솟자
삼양식품 베낀 ‘매운 까르보’ 등 출시
용기 색상 비슷하고 한글로 제품명
얼핏보면 ‘원조’ 와 헷갈려… 맛도 흡사
단종된 농심 라면과 유사한 상품도
‘카피캣’ 논란 불구 모방 확인 어려워
업계 실제 법적 대응까진 비용 부담
‘원조’ 강조하는 마케팅 강화가 최선
영업 비밀 보호체계 구축 필요성도
“버버리처럼 고유디자인 상표등록을”
인기 제품 따라만드는 식품업계 전략
편의점 맥주 대표적… 법 대응 쉽지 않아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일본 닛신식품이 최근 우리나라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을 모방한 제품을 내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식품업체들이 일본 식품을 베꼈다면, 이제는 ‘라면의 원조’까지 우리나라 제품을 따라하면서 수십년 만에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K푸드가 인기를 끌면서 잇달아 등장하는 ‘카피캣(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거나 잘 팔리는 제품을 그대로 모방하여 만든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도 ‘불닭볶음면’이?”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일본 최대 라면회사 닛신식품은 최근 봉지 라면 ‘닛신 야키소바 볶음면 한국풍 달고 매운 까르보’와 컵라면 ‘닛신 야키소바 U.F.O 볶음면 진한 진한 한국풍 달고 매운 까르보’를 출시했다.

두 제품은 2018년 삼양식품이 출시한 ‘까르보불닭볶음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닛신은 라면 포장지 색상부터 까르보불닭면과 유사한 연한 분홍색을 사용했고 두 제품 모두 왼쪽에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닛신은 또 포장지에 한글 ‘볶음면’을 넣어 원조인 까르보불닭볶음면과 비슷한 외관을 연출했다.

닛신은 홈페이지에서 “이 제품은 닭과 고추장의 풍미, 치즈의 부드러운 감칠맛을 살렸으며 일본 사람들이 먹기 편하도록 단맛과 매운맛을 조절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품 캐릭터 ‘초라이온’에 대해 닛신은 “소스의 ‘강렬한 매운맛’을 힘의 상징인 ‘사자’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매운 소스에 치즈를 더해 겉포장은 물론 맛까지 삼양 까르보 불닭을 연상케 한 것이다.

닛신은 이어 국내에서는 단종된 농심의 ‘매콤달콤 양념치킨 비빔면’을 모방한 듯한 상품도 내놓았다. ‘돈베에 한국풍 아마카라 양념치킨맛 야끼우동’이다. 해당 제품은 라면 포장지 색상부터 농심의 양념치킨 비빔면과 유사한 파란색 배경과 핑크색 글자 등을 넣고 포장지에는 한글로 ‘닛신의 양념치킨’을 표기했다. 한국 라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식 라면을 따라하거나 한국 라면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유사한 상품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는 것이다.
◆60년 만에 역전… 원조 따라잡은 ‘짝퉁’도

삼양식품은 2019년 일본 현지 법인인 삼양재팬을 설립해 현지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작년 일본 매출은 21억엔(209억7858만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2021년에 비해 26.9% 증가한 수치다. 삼양식품 성장의 1등 공신으로 ‘불닭 브랜드’가 꼽히면서 일본 1위 라면 기업도 이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삼양식품은 1960년대 국산 라면을 개발하기 위해 닛신에 기술 전수를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대신 닛신의 라이벌 회사였던 묘조식품으로부터 무상으로 기술을 전수받아 1963년 우리나라 최초 인스턴트 라면 ‘치킨라면’을 개발했다. 과거 라면 개발 기술조차 없었던 우리나라 회사가 60년 만에 원조 기업이 따라할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빼빼로, 새우깡 등 과거에는 국내 업체가 일본 제품을 모방해 출시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기에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삼양식품 측은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했으나 제품명이 달라 상표권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 일본 내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오리지널리티(고유성)를 강조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논란은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미 중국,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인기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모방한 ‘짝퉁(가짜)’ 제품이 퍼지면서 업체들은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중국의 다리식품에서 만든 초코파이가 대표적이다. 해당 제품은 우리나라 오리온의 초코파이와 비슷한 겉모양과 맛에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다. 여기에 스타 마케팅까지 더하며 후발주자가 원조의 발목을 잡았다.
◆“식품산업도 영업비밀 보호체계 구축해야”

‘카피캣’ 논란이 잇따르고 있지만 제품이 워낙 많고 모방 여부를 일일이 따지기 힘들어 법적 대응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비슷하게 보이는 제품이라도 법적으로 상표권이나 디자인권 등을 침해했는지는 다른 문제”라며 “침해 여부를 엄격하게 따질 뿐만 아니라 소송 비용도 적지 않기 때문에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미투제품(유사제품)과 표절의 경계가 모호하고 유행에 맞춰 비슷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하나하나 대응하기가 불가능하다”며 “해외에서도 모방제품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거나 사라지는 사례가 많아서 ‘원조’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식품산업에서도 다른 산업에서 이뤄지는 영업비밀 보호체계를 구축해 둘 필요성이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특허청 심사관을 지낸 배진효 특허법인 아이더스 변리사는 “고유한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하고 지배적 특징부에 대해서는 버버리의 체크무늬같이 도형상표로 등록하여 장기간 보호받거나 부분디자인으로 등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관련 디자인제도를 이용하여 유사한 디자인에 대해서도 권리를 선점해 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특히 “반도체 회사 인력의 해외유출사례가 식품산업에도 발생가능하므로 특유의 식품 제조 레시피 및 제조장치에 대해서는 영업비밀 보호체계를 구축해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리온 초코파이(왼쪽)과 롯데 초코파이. 각사 홈페이지 캡처
◆‘미투 마케팅·표절’ 경계 모호… 오리온 ‘초코파이 소송’ 패소하기도

‘미투 마케팅’은 경쟁 브랜드의 히트 상품을 모방해 제품의 명칭이나 맛, 디자인을 비슷하게 만들어 판매하는 전략이다. 위험 부담이 적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비용도 줄일 수 있어 국내외를 불문하고 ‘미투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투 마케팅’과 ‘표절’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이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12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세븐브로이맥주는 상표권 계약 종료로 ‘곰표밀맥주’의 이름을 ‘대표밀맥주’로 변경하고 패키지에 곰 대신 호랑이 캐릭터를 넣기로 했다.

세븐브로이맥주는 2020년 편의점 CU, 대한제분과 함께 곰표밀맥주를 선보였다. 곰표밀맥주는 출시 후 누적 판매량 6000만개를 기록하며 ‘편의점 수제맥주’ 돌풍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곰표’ 브랜드를 보유한 대한제분이 계약 종료를 앞두고 경쟁입찰을 진행해 새 제조사로 수제맥주 2위 업체인 제주맥주로 낙점하면서 세븐브로이맥주는 더 이상 곰표밀맥주를 생산할 수 없게 됐다.

당초 세븐브로이맥주는 제품명을 대표밀맥주로 변경하면서도 디자인에는 기존 곰표밀맥주와 같은 곰 캐릭터를 활용하려 했다. 이에 곰표 상표권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유사한 디자인을 차용했다는 표절 논란이 일었고 결국 곰이 아닌 호랑이로 캐릭터를 변경했다.
중국 달리푸드의 초코파이. 중국 달리푸드 홈페이지 캡처
세븐브로이맥주 측은 “법무법인과 변리사를 통해 상표권과 부정경쟁방지법 등에 대한 검토를 받아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은 바 있으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디자인을 변경해 생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표절 논란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코파이’ 사건이다.

오리온은 1974년 처음 국내에 초코파이를 출시했다. 초코파이가 히트를 하자 뒤이어 롯데, 크라운, 해태 등에서도 초코파이가 등장했다. 오리온은 1997년에서야 경쟁사를 상대로 “이들의 초코파이 상표를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경쟁사들은 “‘초코파이’는 상표가 아닌 상품”이라고 맞섰다. 결국 특허법원은 “초코파이가 상표로 식별력이 없다”며 롯데와 해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오리온이 초코파이 표장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974년부터 항상 ‘오리온’을 상표로 내세워 ‘오리온 초코파이’로만 사용하였을 뿐 초코파이를 독자적인 상표로 사용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재판장을 맡았던 박일환 전 대법관은 “적극적으로 경쟁사의 사용을 막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며 “스스로 권리 위에 잠을 자게 된 결과로 상표권을 상실하게 된 희귀한 사례”라고 평했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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