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새 909곳 ‘셧다운’… “시대적 흐름” vs “고령층 소외” [심층기획-은행권 점포 감축 논란]

이강진 2023. 5. 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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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온라인 금융거래 가속화 영향
신규 직원 채용도 팬데믹 전보다 감소
디지털 취약계층선 여전히 점포 선호
당국 ‘폐쇄前 영향평가’ 절차 강화 착수
금융노조 “절차 어겨도 실질 제재 부족”
전문가 “점포 수 유지 인센티브 병행을”
해외 사례 보니
금융기관 없는 지역 ‘은행 사막’ 지칭도
日은 지방은행 3곳서 영업점 공동 운영
‘909곳.’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새 사라진 은행권 점포 숫자다. 감염병 확산으로 비대면 금융이 가속화하면서 매년 300곳 이상의 점포가 문을 닫은 셈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금융소비자들에게는 비대면 금융이 혁신으로 다가왔으나, 여전히 은행 지점 이용을 선호하는 70대 이상 등 금융취약계층에게는 점포 폐쇄가 곧 ‘금융소외’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창구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국면 속 대면 활동 재개로 은행권 점포 폐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당국은 폐쇄 관련 절차 강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 업계 안팎에선 은행권 점포·인력 감축은 비대면 거래 급증에 따른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 시대적 흐름이라는 주장과 무분별한 점포 폐쇄를 막기 위해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코로나로 비대면 금융 가속화

12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2019년 말 6709개였던 은행 점포 수는 지난해 말 5800개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304곳이 줄어들었고, 2021년 311곳, 지난해 294곳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2018년 23곳, 2019년 57곳의 점포가 폐쇄된 것과 비교하면 최근 3년간 점포 폐쇄가 가속화한 것이다.

은행권 점포 폐쇄에는 비대면·온라인 금융거래가 급증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 조사 결과 입·출금 및 자금 이체 거래 시 인터넷·모바일뱅킹으로 처리하는 비중은 2019년 60.4%에서 지난해 77.7%로 17.3%포인트 올랐다. 반면 창구로 처리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7.7%에서 5.5%로 더 축소됐다. 인터넷·모바일뱅킹을 통한 금융거래 관련 조회서비스 이용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93.2%에 달한다.
은행들의 지난해 신입직원 채용 규모 역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쪼그라들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금감원에서 받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채용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은행의 신입 채용 수는 총 1662명으로, 2019년(2301명)보다 27.8% 감소했다.

◆고령층은 여전히 지점 선호

문제는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에선 여전히 은행 점포 이용 수요가 크다는 점이다.

한은의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 행태 조사 결과를 보면 70대 이상은 금융서비스 이용 시 가장 선호하는 접근방식으로 지점·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꼽은 비중이 95.3%(2021년 기준)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최근 1개월 내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경험 비율도 70대 이상은 15.4%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은 은행 점포 폐쇄에 따른 금융소비자 불편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달부터 점포 폐쇄 사전영향평가 절차 강화에 착수했다. 폐쇄 결정 이전에 실시해 온 사전영향평가가 내실화되도록 점포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사전 의견수렴을 하도록 하고, 외부전문가의 평가 참여 비중 및 역할을 확대하는 등의 방식이다. 소비자 관련 평가항목의 비중도 키웠으며 불가피하게 점포 폐쇄를 결정한 때에는 고령층 비율 등을 고려해 공동점포·소규모점포를 우선 마련하도록 했다.
◆“제재 강화”, “인센티브 필요”

당국의 대책에 대해 금융노조는 은행권이 해당 절차를 지키지 않았을 때 가해지는 실질적 제재가 부족한 만큼 점포 폐쇄 속도를 늦추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최원철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점포 폐쇄 절차의 경우 최소한 금감원의 감독규정에 명문화돼야 은행들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형식적인 절차만으로는 사실상 점포 폐쇄를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민간금융기관인 은행이 비용 절감을 위해 지점 수를 줄이는 것은 당연한 상황에서 점포 유지를 강제할 수만은 없는 만큼, 정부의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으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 입장에서는 디지털화 과정에서 점포 수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비용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점포를) 줄이려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사회적 웰페어(복지) 측면에서 보면 금융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등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만큼 당국 입장에선 속도 조절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비용을 온전히 금융회사가 감당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점포 수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금융이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된 상황에서 고령층 등에 대한 디지털 금융교육이 더 확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금융 접근성 차원에서 시니어들에 대한 디지털 금융교육이 점포 폐쇄 지역뿐만 아니라 각지의 노인복지관·사회복지관·노인대학 등에서 의무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은행들이 점포 폐쇄 예정 지역의 고령층 등을 상대로 사전에 교육을 해 디지털 금융역량을 높이고, 이를 평가해 점포 폐쇄 여부에 반영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美 주요 상업銀 점포 수 22년 만에 ‘반토막’

은행 점포 폐쇄로 인한 금융 사각지대 확대 우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주요 상업은행 점포가 22년 새 절반 가까이 줄었고, 영국에서도 6년 만에 점포가 30% 이상 감소했다. 금융당국은 각종 규약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은행권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디지털 금융 확산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12일 국회입법조사처의 ‘주요국의 은행점포 폐쇄절차와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내 상업은행과 신용협동조합, 저축은행, 저축대부조합의 점포 수는 2008년 10만2630개에서 2021년 8만8926개로 줄었다. 영국의 은행 점포는 2015년 1만745개에서 2021년 6965개까지 감소했다. 캐나다도 2016년 6190개였던 은행 점포가 2020년에는 5783개로 축소됐다.

대형 시중은행의 점포 폐쇄 속도는 더욱 빠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2000년 8000여개였던 미국 상업은행 점포가 2022년 3월 말 현재 4194개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추산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이후로 폐쇄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391개 감소한 미국의 은행·저축은행 점포는 이듬해 2284개로 감소폭을 늘렸다. 영국도 2020∼2021년 2년간 은행 점포가 1600개 가까이 줄었다. 호주 금융서비스노조(FSU)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은행 점포 1600개가 폐쇄됐는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문을 닫은 곳이 900곳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넓은 국토를 보유한 미국이나 호주 등에서는 ‘금융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다. 미국 금융기관 감시 단체인 전국지역재투자연합(NCRC)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문을 닫은 은행 점포 3분의 1이 인구밀도가 낮고 저소득층이 다수인 지점이었다. FSU는 2017년부터 2022년 폐쇄된 은행 지점 대다수가 비수도권에 위치해 지역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CNBC는 16㎞ 이내에 은행이나 상호금융이 없는 지역을 ‘은행 사막’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런 곳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때 높은 수수료를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재정적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 금융당국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포 폐쇄에 대한 규약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감독기관 지침 등으로 폐쇄 전 사전안내와 검토회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감독기관 지침으로 점포폐쇄 전 상세한 사전분석을 실시하고 이를 감독당국과 고객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은행권은 공동점포 운영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2018년부터 일반고객 대상으로 ‘뱅크 허브’를 운영 중이다. 허브 소속 은행은 일주일 중 하루씩 대면서비스를 제공하고, 입금 및 지급 등 간편업무는 허브가 위치한 우체국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지방은행 3곳이 협약을 통해 영업점을 공동 운영 중이다. 독일에서도 2개 은행 직원이 공동점포에 교대근무를 하는 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벨기에는 은행권 공동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운영 중이다

이구형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금융거래환경의 변화로 점포 폐쇄 자체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기관에서는 과도한 개입은 삼가면서도, 고객 및 지역사회의 불편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강진·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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