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20년 철권 끝낼까… 野 단일후보 지지율 49% ‘1위’ [세계는 지금]
‘21세기 술탄’ 향한 민심 싸늘
개헌 통해 ‘10년 더’ 집권 길 열었지만
인플레에도 저금리 유지 경제난 가중
2023년 초 대지진까지 겹쳐 지지율 43%
‘튀르키예의 간디’ 정권심판 선봉
‘평화행진’ 주도… 온화한 이미지로 인기
野 성향 군소후보 사퇴로 표 결집 관측
과반 득표 성공 땐 결선투표 없이 당선
정권 교체 땐 정책 대전환 예고
의회 해산권 가진 첫 ‘제왕적 대통령’
야권은 의원내각제 부활 공약 내세워
EU 가입 추진 등 서방 관계 복원 의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1년째 집권 중이다. 2003년 3월 처음 총리직에 올라 3연임을 한 뒤 소속 정당(정의개발당·AKP) 당규상 연임 제한 규정에 부딪히자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개정 헌법하에서 에르도안은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치르면 2033년까지 최장 30년간 집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그리 녹록지 않다. 오히려 정치 인생 최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많다. 25년 만에 최대치를 찍은 인플레이션과 석 달 전 대지진에 따른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아서다. ‘반(反)에르도안’이라는 기치로 뭉친 야권은 단일 후보를 내세워 대응 중이다.
에르도안은 튀르키예가 경제위기에서 막 벗어날 무렵 처음 정권을 잡았다. 2003∼2007년 평균 7.2%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고, 집권 초 3600달러(약 476만원) 수준이던 1인당 GDP는 한때 1만2600달러(1666만원)까지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곡물 가격 인상은 튀르키예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물가가 급등했다. 지난해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85%를 기록했다.
에르도안은 경제 상식을 역행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대폭 올린 것과 달리 저금리 정책을 유지한 것이다. 리라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경제 성장도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으로 풀이됐다. 에르도안의 뜻에 반기를 든 중앙은행 총재들은 줄줄이 자리에서 쫓겨났다.
지난 2월 남동부 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희생자만 5만여 명. 거기에 수백만 명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았다. 에르도안 정권은 내진 규제 완화, 부실·늑장 대응 논란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중도좌파 성향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등 야권 6개 정당은 이번이야말로 에르도안 장기집권을 끝낼 호기로 보고 단일대오를 구축했다. 에르도안 대항마로는 CHP 대표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를 내세웠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를 닮아 ‘튀르키예의 간디’, ‘간디 케말’ 등으로 불리는 그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공직 은퇴 후 CHP에 영입됐다. 온화한 학자풍으로 스트롱맨(권위주의 지도자) 스타일인 에르도안과는 정반대 이미지이다.
클르츠다로을루는 CHP를 이끌면서 주요 선거에서 일련의 패배를 겪었으나, 에르도안이 군부 쿠데타 저지 후 대대적인 숙청 및 야권 탄압에 나선 2017년 수도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450㎞를 24일 동안 걷는 ‘정의를 위한 행진’을 주도해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행진 마지막 날 이스탄불 말테페 광장에는 100만 인파가 모여 에르도안 집권기 최대 반정부 시위로 기록됐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는 CHP 후보가 앙카라·이스탄불에서 당선되는 데 힘을 보탰다.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야권 후보 단일화의 위력이 확인된다. ‘폴리트프로’(politpro)가 최근 한 달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한 바에 따르면 클르츠다로을루 지지율은 48.9%로 에르도안 43.2%에 앞서 있다.
최근에는 0.01%차 초박빙 판세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으나, 약 5% 지지율을 점유 중이던 조국당 무하렘 인제 대표가 11일 후보직을 전격 사퇴해 야권의 표 분산 우려가 해소됐다. 인제 대표는 “나는 후보직에서 물러난다”며 “이는 조국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대선에서 CHP 후보로 나와 에르도안과 맞붙었던 인물이어서 지지자들 표심은 대거 클르츠다로을루에게 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클르츠다로을루의 야권 6자 연대는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의회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의원내각제를 부활하고 법안 거부권 등 대통령 권한은 대폭 축소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대통령 임기는 7년 단임으로 조정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도 의무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의회 총선거에서 600석 중 400석을 차지해 개헌선을 돌파하거나, 개헌 국민투표 부의에 필요한 360석을 확보해야 한다. 야권 지지율은 폴리티프로 조사에서 CHP 29.5%, 좋은당(iYi) 11.0%, 녹색좌파당(YSP) 10.3%를 나타냈다. 여권인 AKP는 34.4%, 민족주의운동당(MHP)은 6.6%였다. 실제 의석은 7% 이상 득표율을 기록한 당에만 정당명부 비례대표 방식으로 배분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게다가 AKP가 야당으로 밀려나더라도 20년간 구축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거세게 저항할 것이 분명하므로, 클르츠다로을루가 이에 대적하려면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FP는 지적했다.
다만 클르츠다로을루 역시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북키프로스튀르키예공화국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공언했고 그리스와의 관계 회복 전망도 불투명하다. EU 회원국인 키프로스, 그리스와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튀르키예의 EU 가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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