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 간 길 따르겠다" 5·18민주묘지 참배 열기 고조(종합)
기사내용 요약
온종일 참배곡 끊길 틈 없이 잇단 추모 발길
오월 열사 넋 위로하며 항쟁 정신 계승 다짐
노동계·정가도 동참…하루 3900여 명 다녀가
[광주=뉴시스] 변재훈 이영주 기자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닷새 앞둔 13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이른 아침부터 오월 영령의 넋을 기리고 항쟁 정신을 새기기 위한 참배객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공식 참배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추모탑까지 이동한 참배객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차례로 헌화·분향했다.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민주묘지에선 참배곡이 쉴 새 없이 울려퍼졌다.
항쟁에 참여했다가 부상으로 세상을 뜬 고(故) 이영기 열사의 아내 이금주(65)씨는 남편의 묘소 앞에서 "그저 먹먹할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딸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온 이씨는 손수 다듬은 북어와 함께 소주가 가득 담긴 종이컵을 묘소 앞에 바쳤다. 이씨는 말 없이 이따금 손수건으로 묘비를 닦았다.
이씨의 남편은 결혼 2년 전인 1980년 5월 22일 광주 동구 병무청 주변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가까스로 목숨은 구했다. 그러나 정수리에 남겨진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 가족·지인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1997년부터는 집을 떠나 정처 없이 전전하다, 2003년 부산에서 숨졌다.
이씨는 "5·18 당시 생긴 트라우마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거나 숨지고 있다. 이들을 부양하는데 가족들이 일생을 쏟고 있다"며 "5·18은 당시 숨지거나 부상을 당한 유공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43년째 슬픔을 함께 나누고 여태 간직해온 가족, 나아가 광주시민 모두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묘역 곳곳에서는 역사 동아리 소속 대학생들이 일일 해설자로 나서 참배객들을 맞았다.
이들은 '5·18 최초 희생자' 김경철 열사,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오월의 막내' 전재수군 묘지 앞에 서서 그들의 삶과 항쟁 경과를 참배객들에게 설명했다.
열띤 강연을 마친 대학생들은 참배객들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추모 분위기를 띄웠다.
대구·경북 지역민들도 참배에 함께 했다.
사단법인 대구·경북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회원 30여 명 일행은 5월 광주 기행에 나섰다. 최근 한·일 관계 개선 과정에서 역사 왜곡 우려가 불거지고 5·18을 향한 망언·폄훼 발언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오월광주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상룡(60) 대구·경북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이사장은 "퇴행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진실을 거스르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어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민주주의를 누리는 현 세대는 결코 거꾸로 흐르는 역사에 순응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자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산별 노조들도 숨진 선배 열사들의 뜻을 이어받고자 묘역을 찾았다.
전국공무원노조·건설노조·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자유롭게 묘지를 참배한 뒤 항쟁사 해설에 귀를 기울였다.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공무원 노조는 민중의 공무원이 지향하며 그 뿌리는 5·18 정신"이라며 참배 취지를 전했다. 이어 "지지부진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반복되는 왜곡·폄훼 시도는 끝 없는 정쟁과 척결되지 않은 일부 세력 탓"이라면서 "이를 바로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한 아이는 묘비 앞에서 부모님을 따라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유경은(38·여)씨는 "광주시민으로서 아픔에 공감하고 마음을 보태고자 딸을 데리고 왔다"며 "역사적 현장인 이 곳에 담긴 뜻을 미래세대에 오롯이 물려줘 5·18이 남긴 아픔을 승화하고 항쟁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리 역사 기행에 참여한 대학생 최인호(23)씨는 "직접 열사 묘를 둘러보니 숭고한 항쟁 정신이 피부로 와 닿는 것 같다. 열사들이 꿈꿨던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고 가꾸는 일에 미래 세대로서의 책임감도 느꼈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추모 열기에 힘을 보탰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김영호·박상혁·박용진·강훈식·천준호 의원은 차례로 민주묘지를 찾아 추념탑 앞에서 오월 영령에 묵념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서울 강북을 지역위원회 당원 200여명과 함께 헌화·분향한 뒤 항쟁 당시 헌혈을 하고 나오다 계엄군의 흉탄에 숨진 고(故) 박금희 열사의 묘소를 찾았다.
박 의원은 "미진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관련해 최대 의석을 가진 야당 민주당이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 오월 정신을 잘 받들어 국민들로부터 응원받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앞서 오전에는 진보당에선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한 강성희 의원과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가 참배했다. 이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열사들을 기렸다.
민주의문 방명록에는 '제 곁에 늘 5월의 민주정신이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오월 광주는 우리 모두의 역사입니다', '오월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 오월의 열사가 살고자 하고 꿈꾸신 날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등의 글귀가 적혔다.
이날 하루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은 4800여 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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