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깁니다. 그 중에서도 창업자는 브랜드로 이름을 남깁니다. 세상의 수많은 브랜드 중 창업자의 이름을 따온 브랜드를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될수록, 또한 장인정신이 깃든 제품이나 명품 브랜드의 경우 대체로 창업자 또는 디자이너 이름을 그대로 브랜드로 쓰며 자긍심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요. 흥미로운 브랜드 이야기, 흥부전에서 이러한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최근 패션 산업계의 대세 중에 대세는 다름 아닌 ‘어패럴 브랜드’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의류’를 뜻하는 어패럴 브랜드는 특히 타산업분야 브랜드의 상표권만 사서 라인업을 구축하는 일종의 라이센스 사업으로 통칭됩니다. 특히 UCLA나 예일(YALE)대와 같은 미국 명문대학교 로고는 최근 어패럴 브랜드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죠. 또한 패션과 전혀 무관한 브랜드 로고를 활용한 의류 브랜드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연다큐멘터리 TV 채널 디스커버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이 의류 브랜드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트래킹과 등산 등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의 이미지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다큐멘터리 TV채널과의 협업은 어패럴 업계에선 신의 한수로 불리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아웃도어 어패럴 업계에서 또 눈에 띄는 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코닥’입니다. 그럼 코닥이 창업자의 이름이냐구요? 사실 그렇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틀린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코닥의 공식 명칭이 바로 이스트만 코닥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스트만도, 코닥도 사실상 역사 뒷편으로 물러나 있지만 역사적 상징성과 이러한 창업자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첫번째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로 바로 ‘조지 이스트만’을 꼽아 봤습니다.
이스트만 코닥의 탄생
코닥의 창업주 조지 이스트만은 사진기술이 본격화된 19세기 중반 1854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가정의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스트먼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며 이른 나이에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보험회사 사환으로 시작한 그의 직장생활은 은행원으로 이어지며 점차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20대가 된 그는 친한 친구와 여행을 떠나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는 지금과 달리 무척 크고 복잡했으며 촬영 자체도 여러 조건이 딱 맞아 떨어져야만 가능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이러한 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스트먼은 사진을 보다 편리하고 쉽게 촬영할 방법을 찾았고 그로부터 사진 연구가이자 발명가로의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쉽게 사진을 찍을 방법을 연구한 끝에 그는 필름을 통한 사진촬영이라는 기술 개발에 성공합니다. 그렇게 그는 1880년 건식 필름을 개발해 1882년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사업가들의 투자까지 받아낸 그는 1883년 본격적인 대량생산과 사업화에 나섰습니다.
이스트만이 사랑한 이니셜 ‘K’
그리고 코닥이 등장합니다. 이스트만은 회사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그때, 본인의 이름 이스트만이 미국외 다른 국가에서 발음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민 끝에 회사 이름을 ‘이스트만 코닥’으로 정했습니다. 대중은 긴 이름대신 코닥이라는 명쾌한 브랜드로 이 회사를 기억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브랜드 전략이 성공한 셈인데요.
사실 이러한 작명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조지 이스트만의 이름이 이스트만 코닥인지 알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닥은 사실 별다른 뜻이 있는 단어는 아닙니다. 이스트만이 가장 좋아하는 알파벳이 K였고 이를 발음하기 편한 인상적인 단어로 만들다 보니 나온 것이 바로 코닥입니다. 또한 코닥을 상징하는 짙은 노란색 역시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용도로 그가 택한 회사의 시그니처 색깔입니다.
그렇게 1887년 세계 최초의 휴대형 사진기를 개발한 코닥은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합니다’라는 도발적인 광고문구로 소비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필름에서 시작해 휴대용 일회용 카메라까지 아날로그 카메라 시장을 장악해나간 코닥은 어느새 필름 카메라의 대명사가 됐고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스트만은 당연히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말년은 조금 우울한데, 요추협착증으로 추정되는 병에 걸린 그는 더이상 살아봤자 할일이 없다는 유서를 남긴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코닥의 황금기는 20세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 코닥은 1억대가 넘는 일회용카메라를 판매했고 각종 디지털 기술을 앞세워 기술기업으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갔습니다. 한때 코닥은 미국 20대 기업에 포함될 정도로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시대 흐름을 못 따라간 코닥, 역사속으로
하지만 이러한 코닥의 위기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됐습니다. 각 카메라 회사가 경쟁적으로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 몰두했고 이러한 디지털 카메라의 발전은 필름 카메라의 종말을 불러왔습니다. 코닥은 이러한 디지털 카메라 산업 전환에 뒤쳐졌고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며 결국 파산 수순을 밟으며 그 전성기를 막을 내립니다. 이후 코닥은 산업 패러다임 전환 실패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현재 코닥은 여전히 사업을 이어가며 이스트만의 창업가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언급드렸던 어패럴 산업 진출 역시 이러한 코닥의 새로운 사업 분야의 하나죠.
카메라 필름의 대명사인 코닥, 이제는 추억속의 브랜드가 됐지만 여전히 코닥은 곳곳에서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시절 사람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코닥 모멘트’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쉽고 편리하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공유하고, 다시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사진 한장을 촬영하고 간직하는 것 조차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어떻게 보관하고 정리할까 그게 더 문제라면 옛날에는 가장 소중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포착하고 기다리는 그 일이 더욱 어려웠지 않았을까요. 모든 것을 저장하고 그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대신 정말 소중한 그 순간을 어렵고 신중하게 선택해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운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예전 세대들에겐 추억의 브랜드이자 MZ세대에겐 의류 브랜드로만 기억되는 코닥이지만 제각각 우리들의 코닥 모멘트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