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봄날에 구원타령하는 이들을 보니
[[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최 선생, 기도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말씀드리기 뭐 하지만… 성당에는 구원이 없잖아요. 형님도 교회를 다녀보세요.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
점심시간 내 옆에 앉았던 최 선생과 나눈 대화다. 최 선생은 식사 전에 감사 기도를 올리곤 했다. 반면에 나는 천주교 신자임에도 식탁에 앉으면 바로 숟가락을 잡는 편이다. 물론 교우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드린다. 아무튼 식탁에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그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과거 최 선생은 직장에서 버럭 선생이라 불렀다. 개신교 집사인 그는 성질이 매우 급했다. 목소리는 화가 난 사람처럼 컸으며, 별것 아닌 일에도 버럭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좋아하는 동료들은 거의 없었다. 학생들도 버럭 최 선생은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런 버럭 최 선생이 몰라보게 달라진 것은 3년 전이었다. 그해 겨울,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최 선생은 다른 사람처럼 바꿔있었다. 거칠었던 목소리는 물론이요, 눈빛도 부드러워졌고 힘든 업무도 쾌히 맡는 등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은 직장에서 화제였다.
아무튼 최 선생의 달라진 모습은 놀라웠고 경외심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날 그에게 호감 어린 말을 건넸다가, 구원이 없는 종교를 다니는 내 모습이 안타깝다는 따스한(?)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천주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그의 말에 당황했지만, 그냥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넘겼다. 직장에서 정치와 종교 관련 이야기를 삼가는 것은 불문율이 아니던가.
사실 내게 구원은 복잡한 서양 요리 이름만큼이나 낯선 개념이었다. 그보다는 ‘현존, 일치, 식별, 묵상’이 내 신앙의 중심이었다. 간혹 구원이란 말을 사용할 때도 있지만, 왠지 구원이란 용어가 풍기는 뉘앙스 탓에 멀리하였다.
식당에서 최 선생과 그런 대화가 오갔던 그 날 오후. 구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먼저 나무위키에서 구원을 검색해 보니 '어떤 것에서 구출, 해방되는 것 또는 내세(부활)로 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개인적인 성결, 삶의 갱신, 영적 자유, 용서와 치유, 하느님 앞에 의로움’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굳이 인터넷으로 검색하지 않더라도 흔히들 구원이라면 내세에 천국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 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칭 재림 예수라는 자들이 세상을 속이는 방편으로 흔히 구원을 소리 높이지 않던가.
유튜브 채널 가운데 ‘잘잘법’이란 방송이 있다. 몇몇 개신교 목회자들이 15분 내외로 설교를 하는 내용인데, 감동적이고 이해하기 쉬워서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얼마 전 ‘잘잘법’ 채널에서 구원에 대한 명쾌한 말씀이 있었다.
설교자는 구원이란 작은 것에도 경탄하고 감동할 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길옆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도 감탄하고 이웃의 작은 선행에도 감동하는 능력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했다. 마음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말씀이었다.
구원에 대한 설교자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 봄날 무등산에 올랐던 때가 떠올랐다. 그날은 햇살이 찬란한 봄이었다. 한 시간가량 걷다가 산 중턱에 이르러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있는데 건너편 커다란 활엽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잎들이 햇살을 튕기면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동안 바람에 살랑대는 나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순간, 어떤 커다란 힘이랄까. 실루엣처럼 투명한 아우라가 나무에 서려 있음이 보였다. 이런 걸 물아일체라고 하던가.
그렇게 30분가량 나무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어떤 충만한 에너지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바타 아님). 자연에 대한 경탄과 감동이 밀려왔고 세상은 잠깐 멈춘 듯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설교자가 말한 구원일지 모르겠다. 삶이 베푼 선물에 감동, 감사하는 능력이 구원이 아닐까 싶다.
지난 토요일 오후, 전남대 후문 근처를 걷고 있었는데 어느 여대생이 말을 걸어왔다. “인상이 좋으시네요? 구원에 관심 있으시죠?”라고.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니 선교하겠다는 열망이 환히 보였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살짝 웃으며 지나쳤다.
화사한 봄날, 행인들에게 구원을 묻는 젊은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구원보다는 먼저 캠퍼스 연못에 나는 새들과 팝콘처럼 피어난 매화꽃부터 보라고. 봄은 빨리 지나갈 것이니, 어서 그 향기를 맡아보라고. 어쩌면 구원은 봄꽃 속에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새로운 천지를 만들겠다는 그들과 예수님이 마주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시 예수님께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지 않을까? 웃음도 나고 궁금하기도 하다.
글 화개(순천 사랑어린마을배움터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마을배움터 마루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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