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안철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주사위는 던져졌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3년 4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 신당 창당에 대한 구상을 밝히며 본격적인 제3지대 깃발 꽂기에 나섰다. 이에 화답하듯 사흘 뒤인 4월21일 한국갤럽은 무당층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각 32%)에 육박하는 31%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4월18~20일 전국 성인 1003명 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국회 의석을 양분한 거대 양당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극에 달하는 상황과 함께 총선이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기적 특성까지, 제3지대의 빗장이 열리기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 펼쳐지는 셈이다.
금태섭이 띄운 신당… 아직은 부정적
그럼에도 아직은 불꽃이 활활 타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의도 ‘킹 메이커’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금 전 의원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이들이 띄워올린 ‘제3지대’에 대한 기대는 반짝 이슈로 떠올랐을 뿐 정치 뉴스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양당체제를 공고히 지키는 정치권에선 이들이 꾸릴 신당에 대한 부정론이 긍정론을 앞선다. 제3지대에 합류할 ‘스타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데다 구체적인 정책 노선도 부재하다는 점이 부정론의 핵심 이유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양당제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현재로선 제3지대로 결집할 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인물이나 정책도 없는데다 세력이 형성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신당 창당에 불리한 현행 소선거구제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역사적으로 반복돼온 제3지대 실패의 학습효과 등도 부정론의 양념으로 걸쳐진다.
이 가운데서도 그간 신당 창당의 전제조건처럼 여겨졌던 ‘대선주자급 간판스타’가 부재하다는 점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힌다. 금 전 의원이 신당 창당 의사를 처음 밝힌 ‘성찰과 모색 포럼’은 대표적인 유승민계 의원으로 꼽히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행사였다. 이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제3지대 합류 여부에 모였으나, 유 전 의원은 4월24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에 관심이 없다”며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인물 부재론’에 대해 금 전 의원은 오히려 거물급 정치인을 중심으로 신당을 창당하는 관성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맞선다. 기존 신생 정당들이 대선주자급 인물만 앞세워 세력화에 나섰다가 실패를 거듭해온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 실체가 불분명한 ‘새정치’를 내세우며 제3지대에서 분투하다 결국 10년 만에 국민의힘에 투신해버린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과거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의 창조한국당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간판스타 의존 벗어나야” vs “정치적 리더 확실해야”
금 전 의원은 신생 정당뿐 아니라 기존의 거대 정당들도 1인 권력자에게 의지해 정당을 운영해온 것의 폐해를 겪어온 만큼 정당의 1인 독주 체제에서 시급하게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양당 모두 전국적 지지율이 10% 이상 나오는 대선주자 한 명이 나타나면 무조건 그 사람을 보호하고 방어한다. 그러다 대통령이 되면 그 사람의 입만 바라보기를 반복했다”며 “이런 식의 행태를 바꾸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정치적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제3지대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누가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3지대가 어느 유권자 집단을 움직일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이 정치집단과 유권자집단 사이에 특정한 신호가 오간다는 의미”라며 “그 신호는 정책 노선, 맨파워, 조직이라는 세 가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맨파워는 일정한 유권자집단과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이들을 당겨올 수 있는 지지 자산이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도 “양당에 국민의 만족도가 매우 낮다는 면에서 제3정당이 등장하기에 굉장히 좋은 타이밍”이라면서도 “국민이 한국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대통령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대선 후보군이 없는 정당에 유권자가 강력한 지지를 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어떤 가치를 내세울지와 함께 정치적 리더가 확실하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로선 금 전 의원의 제3지대엔 대선주자급 인물뿐 아니라 구체적 정책 이념도 없다는 점이다. 다만 그는 포럼에서 “정치가 진짜 관심을 갖고 해야 하는 일은 바로 350만원을 버는 우리 주변의 커플을 위해 길을 제시하고 답을 마련해나가는 것”이라며 보통 사람을 위한 실용 정당을 추구하겠다는 최소한의 방향성만을 제시했다. 추후 제3지대에 참여할 사람들을 중심으로 토론과 숙의를 거쳐 2023년 가을까지 구체적인 정책 노선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단 개문발차는 했지만 그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나 승무원은 누구인지, 승객이 열차에 타면 어떤 서비스를 받게 되는지, 종착지는 어디인지 등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국힘·민주당 모두 균열 가능성 커져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의 당내 사정으로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의 설화에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며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당도 이재명 당대표의 ‘대장동 개발 의혹’에 더해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암호화폐 투자 논란까지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당 안팎에 지각변동이 생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총선 패배의 위기감이 높아지는 만큼 당내 균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제3지대의 성공 여부는 이 균열의 틈이 얼마나 벌어질 것인가에 달렸다. 어느 정당의 어떤 세력이 합류할지에 따라 제3지대의 정책 노선도 출렁일 것이다. 결국 제3지대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도 동행할 인물과 정책이 구체화하는 2023년 가을 이후 쏠릴 것으로 보인다. 금 전 의원의 바람대로 신생 정당이 ‘간판스타의 1인 리더십’에 이끌려가지 않으려면 먼저 깃발을 세운 이가 지금이라도 방향타 구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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