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주재자는 아들 먼저’ 판례 변경…남녀 불문 ‘연장자’ 우선
협의없을 때 장남·장손자 우선→연장자 우선
“남성상속인 우선, 헌법정신 합치되지 않아”
“협의없으면 연령 객관적 기준 삼을 수 있어”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제사주재자와 관련해 별도 협의가 없는 경우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와 적자·서자를 불문하고 연장자가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2008년 전원합의체에서 장남 또는 장손자가 우선한다고 했던 기존 판례를 15년 만에 변경했다.
제사주재자는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으로, 제사 관련 재산의 소유권을 갖는다. 민법은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지만,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없는 경우 누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지를 두고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판결로 달라졌다.
오랜 기간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한은 ‘정실이 낳은 장남(적자인 장남)’에게 있었다. 종래 대법원은 공동상속인 중 종손이 있다면 그에게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상 종손이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해왔다.
그런데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공동상속인들 사이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 또는 장손자가 제사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는 경우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결했다.
기본적으로 협의에 따르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 적자·서자 여부와 무관하게 장남 또는 장손자가 우선한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공동상속인 가운데 아들이 없는 경우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1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15년 만에 새 기준이 제시됐다. 제사주재자에 관한 협의가 없다면 직계비속 중 가장 연장자가 우선한다는 판단이다. 전원합의체에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고 김명수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이 심리 및 선고에 참여하는데 13인 중 9인이 다수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협의가 없을 때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에 기초한 혼인 및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현대사회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 가계 계승의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망인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어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감안할 때 최근친인 직계비속이 여러 명일 경우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연령이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같은 지위와 조건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장자를 우선하는 것이 전통 미풍양속에 부합하고 실제 장례나 제사에서도 직계비속 중 연장자가 상주나 제사주재자를 맡는 것이 우리 문화의 사회 일반 인식에 합치한다”고 밝혔다. 또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등 법질서 곳곳에 반영돼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본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사주재자 결정 방법에 관한 새 법리는 법적 안정성과 당사자 신뢰 보호를 위해 이 판결 선고 이후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며 “새 법리 선언은 이 사건 재판규범으로 삼기 위한 것이므로 이 사건에는 새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별개의견을 낸 4명(민유숙·김선수·노정희·이흥구 대법관)도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하는 것에는 찬성했다. 다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법원이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1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숨진 A씨의 배우자, 큰딸, 둘째딸이 B씨 및 A씨 유해가 봉안된 추모공원을 상대로 낸 유해 인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A씨의 직계비속 중 남녀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를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되 다만 그 사람이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사유가 있는지를 심리해 누가 제사주재자인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B씨가 A씨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제사주재자로서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봐 자녀들 중 연장자인 장녀를 비롯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1심을 유지했다”며 “법리를 오해하고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원고인 배우자와 1993년 결혼해 두 딸(각각 1994년생, 2000년생)을 낳았다. 이후 혼인관계가 있던 상태에서 B씨와 사이에 아들 C씨(2006년생)를 낳았다.
2017년 A씨가 사망하자 B씨는 A씨 유체를 화장한 후 유해를 경기도의 한 추모공원 납골당에 봉안했다. 그러자 원고들은 B씨와 추모공원을 상대로 같은 해 유해 인도 소송을 냈다.
앞서 하급심은 기존 전원합의체 논리에 따라 판결하면서 1·2심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C씨가 제사주재자로서 A씨에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B씨는 C씨의 법정대리인(친권자인 어머니)로서 그 유해를 점유·관리하고 있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2심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피상속인의 유체⋅유해의 귀속 및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 관해 종래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을 중시한 적장자 우선의 관념에서 벗어나 헌법상 개인의 존엄 및 양성평등의 이념과 현대사회의 변화된 보편적 법의식에 합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의 범위를 종전에 비해 넓혀 구체적 타당성도 보다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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