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탄 목사가 성폭력... 기댈 데 없는 '자립준비청년' 노렸다
피해자 지원한 기업 대표 "수년 전부터 소문 있어도 물증 없어
피해자 2명 용기 내 증언... 학업중단·입원 극심한 트라우마 시달려"
"A목사 운영 중인 예비사회적기업도 제재해야"
"성추행과 성폭력을 일삼은 A목사가 구속돼 다행스럽지만, 저희들이 거주한 센터에서 일한 A목사의 부하 직원들은 구속되지 않았어요. 이들은 A목사의 만행을 알고도 묵인해 왔기 때문에 방조죄로 처벌받았으면 좋겠네요."
A목사에게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한 기업 대표 이정준(가명)씨는 1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A목사가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아서 피해자들이 언제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는데, (A목사가) 구속됐다니까 그나마 좀 안심이 된다"며 피해자들의 입장을 전해왔다.
피해자들은 부모 없는 고아로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서 지내다 만 18세가 되면 보호(양육)기간이 끝나 퇴소해야만 했던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다. 이들은 가진 돈도, 잘 곳도 없어 정부가 지원하는 자립준비금 등 최소한의 도움으로 정글 같은 사회에서 혈혈단신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절박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고마운 어른도 있지만, 경기도 양주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센터를 운영해 온 A목사는 오히려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지난 11일 준강간 및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A목사를 구속했다. 전날(10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A목사는 지난해 4~6월 자신이 운영하는 센터에서 입소자들을 상대로 신체접촉을 하며 추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다. 지난해 11월 피해자들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나선 경찰은 A목사가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에 놓인 입소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피해자 "3차례 성폭행"... A목사 "합의에 의한 성관계" 부인
A목사는 센터 내 술자리에서 '옷을 벗으라'고 요구하고, 수시로 성추행을 했고, 세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지만, A목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통화에서 "(A목사가) 간음 행위를 인정하고 있지만, 상호 동의하에 이뤄진 정상적인 성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전체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몇 년 전부터 아이들의 피해 주장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어서 저도 돕지 못하다가 2명의 피해자가 용기를 내 증언하면서 공론화됐다"면서도 "증언한 피해자들은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한 명은 현재도 입원해 치료받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다 최근에야 학교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생계 수단인 아르바이트도 중단하고, 여전히 심리정서가 불안한 상태"라며 "상처 치유와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아버지 역할을 자처한 A목사는 2020년 지상파 방송의 한 다큐멘터리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자립준비청년들을 돕는 '키다리 아저씨'로 소개됐고, 다수의 기업과 후원자들로부터 기부금도 받아왔다.
이 대표는 "방송 이전부터 A목사가 운영하는 센터 입소자들과 그곳을 거쳐간 아이들로부터 (여러 안 좋은) 소문을 들어오던 중 센터가 저희 회사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며 "검증되지 않은 곳과 함께 활동하는 건 조심스러워 (거절했다)"라고 기억했다. 또 "A목사의 행태를 증언한 피해자들도 방송 당시 센터에 있었다"며 "기댈 곳 없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그곳에서 지내며 생긴 소속감과 안정감이 중요하고, 자신을 도와준 기관이 잘못되면 의지할 곳이 사라져 묵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A목사가 이용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A목사 3년 전 지상파에 다큐도 방영... 후원금·금품 중간서 가로채"
A목사는 피해자를 포함한 입소자들로부터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여러 기업과 후원기관에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지원한 물품이나 후원금을, A목사가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A목사가 운영하는 기업 B사에 대한 제재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씨는 "A목사와 센터 직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친환경 사료기업이 예비사회적기업으로 등록돼 있다"며 "이 기업이 이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채용사이트에 등록된 B사의 공고와 소개를 보면, 2018년 2월 설립된 해당 기업은 3년 차인 2020년 기준 연매출 5억6,753만 원, 영업이익 1,246만 원으로 나온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관계자는 12일 통화에서 "이전에 B사가 심사를 거쳐, 현재 예비사회적기업으로 등록돼 있는 게 맞다"고 했다.
이 대표는 "A목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B회사가 많이 알려지면서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된 걸로 안다"며 "여러 대기업과 주요 기관이 검증 절차 없이 지원했던 결과"라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후원금을 몰수하고, 수상 경력도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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