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서울에도 지역신문이 있다"
[미디어오늘 28주년 창간기획]
서울 지역신문 금천in·구로타임즈·은평시민신문 대담 "서울도 지역이다"
'중앙-지방'을 '전국-지역'으로 바꿔야 '지방자치제'는 실제 '지역자치제'여야
25개 자치구 총 25조 이상 누가 감시하나, 47조 쓰는 서울시 담당할 지역언론 없어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언론의 권력은 독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권력은 독자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언론이 만든 상품인 기사에 돈을 지불하는 이들은 평범한 다수 독자가 아니라 주로 자본권력이거나 정치·행정권력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위기의 본질이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라면 언론의 혁신은 무너진 언론과 독자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와 밀착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취재와 경영을 주민들로 매개한 건강한 지역신문은 혁신의 한 모델이다. 이번 기획기사들에서 지역신문에 놓인 장벽과 비판적 지역신문의 필요성, 지역신문 종사자들의 고민 등을 담아보려고 한다. - 편집자주
서울특별시 안에도 지역신문이 있다. 이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두 가지 의문을 던진다. '서울인데 왜 지역신문이지?', '서울에서 지역신문이 필요해?' 지역이 지방과 같은 의미로 쓰이면서 서울은 지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아니면 서울이 곧 중앙이고 서울이 아닌 곳은 지역(지방)으로 불리면서 서울은 수도로서 대통령실, 국회 등 전 국민적 관심사를 다루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의 '서울'이나 SBS(서울방송)의 '서울'은 부산일보의 '부산'은 제주방송의 '제주' 등과 의미와 맥락이 다르다. 서울에 언론사가 차고 넘치지만 서울시나 특정 자치구를 제대로 취재하진 않는다. 서울의 언론은 중앙언론이기 때문에 우위에 있고 지역(지방)언론은 자신들 지역 소식이나 다루는 열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서울은 경기도로 둘러싸여 있고 부산이나 인천보다 면적이 작은 한 지역일 뿐이다. 그러므로 서울에도 지역언론이 필요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은평시민신문 사무실에서 서울 지역에서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 건강한 지역주간지 꾸려가는 이성호 금천in 편집장, 김경숙 구로타임즈 대표,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을 만났다.
3시간 동안 이어진 대담은 '전국'과 '지역', '서울(중앙)'과 '지방'이란 용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김경숙 : '전국'에 호응하는 개념은 '지역'이다. 한국 사회는 '중앙(서울)'과 '지방'이 익숙하다. 그래서 '지역'을 '지방'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잘못됐다. 지역신문이라고 하면 서울에 못 미치는 지방, 하위단위의 신문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지냐 지역지냐의 문제인데 중앙지냐 지방지냐로 보니 지역신문은 열등한 신문이 된다. 지방자치제를 영어로는 'local(지역)'이라고 쓴다. 잘못 쓴 표현이다. 언어 속에 이념과 사상이 규정돼 있다. 이 단어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의식과 정책, 모든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전국지냐 지역지냐로 봐야 서울 지역신문도 이해가 된다.
-은평시민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서울시에 대해 다루는 뉴스레터 '서울구경'을 시작했다. 은평구 주민들의 실제 생활권은 은평구에 머물지 않고, 서울 전역 심지어 경기도 고양시 등까지 확대돼 있기 때문에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강남 구룡마을, 영등포 문래 철공소 등 소식이 은평 주민에게도 관심있는 정보일 수 있어서다.
박은미 : 서대문구에서 은평구를 분리한 게 40년 좀 넘는다.(1979년 분리) 지역 정체성보다는 서울 서부권의 한 지역이고 주로 주거공간이기 때문에 퇴근하고 돌아와 잠자는 공간이다. 큰 기업이 들어와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반경은 은평에서 벗어나 훨씬 넓다. 그래서 '서울구경' 뉴스레터를 시작했고 여러 코너를 만들어보며 테스트하는 중이다.
-자치구뿐 아니라 서울시에 집중해야 할 다른 이유도 있지 않나?
박은미 : 자치구 예산이 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많지 않다. 서울시 예산이 함께 들어가거나 서울시 정책 방향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크다. 마을공동체도 전임 시장때는 은평구가 열심히 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지 않나. 서울시 예산이 40조원(2023년 약 47조원)이 넘는다.
이성호 : 서울시 단위든 자치구 단위든 누군가 감시·기록·견제해야 한다. 금천구가 중구 다음으로 작은 자치구인데 예산이 약 7500억원이다. 몇 년 지나면 1조원인데 그러면 서울 자치구 총 25조원이 넘는다. 특히 서울시는 감시하는 곳이 없다.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여러 정책 현안들, 서울시의회 등을 감시하는 곳이 없다. 서울도 지역이지만 서울에서 지역언론을 만들기란 다른 지역보다 어렵다.
김경숙 : 서울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지역언론은 없다. 서울이 중앙이니까 모든 언론은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 서울 지역 주민은 지역 정보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지역사회, 자치구 단위로 들어가면 다양한 문제가 있다. 지역사회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서울 주민들이 지역성, 정주의식이 별로 없어서 주민과 밀착해야 하는 지역신문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이성호 : 청년과 직장인은 지역 개념이 거의 없다. 2030세대는 진학·취업·결혼 등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지역에 정주하게 된다. 4050세대에게 정주의식이 조금씩 생긴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지역사회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박은미 : 아무래도 우리 신문 구독자 중엔 노년층이 많다.
김경숙 : 우리 신문도 열심히 읽는 층은 노년층이다.
-수많은 현안이 있겠지만 각 신문에서 다룬 이슈 하나씩만 소개해달라.
김경숙 : 쓰레기 처리 시설인 구로자원순환센터를 지역에 짓기로 했는데 주민들 의견을 듣지 않고 진행해서 인근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야 했다. 건립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벌어지는데 지역신문에서 각자의 의견을 담아내게 된다. 보도 이후 구의회에서 공사를 일단 멈추게 하고 주민들 의견 수렴하는 기간을 만들었다.
박은미 : 몇년전 구의원들의 국외출장에 대해 보도했다. 당시 국외출장 보고서도 사무국 직원들이 다른 지자체 보고서를 베껴쓰는 일이 있어 문제를 제기했다. 보도 이후 변화는 공무국외출장을 심의하기로 해 제비뽑기로 심사위원을 모집하고 개인별 보고사도 쓰게 만들었다.
이성호 : 지난해말 구청에서 정책자문단을 만들었다. 구의원하다 (뇌물 등으로) 현역으로 구속된 사람이 있었는데 대법원까지 가서도 유죄받은 사람이 자문단으로 위촉돼서 기사를 썼다. 형을 다 살아 죗값 다 치렀으니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자문단을 그만두진 않았다. 지역 정가의 도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신문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지자체의 막강한 권한이 시군구의회에서 제대로 감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역언론이 '있으면 좋지' 정도가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박은미 : 선거 때 한 캠프에서 함께 선거운동 하던 사람들이 누구는 구청으로 가고 누구는 의회로 간다. 당이 다르거나 다른 세력이어야 견제가 작동하는데 '원팀'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견제를 하겠나. 물론 구의회가 중요하고 역할도 하지만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구조인지 의문이다.
김경숙 : 서울과 다른 지역의 격차도 있지만 서울 내에서도 자치구별 차이, 동마다, 마을마다 삶의 질 불균형이 심각하다. 한 자치구 안에서도 생활체육시설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해도 아파트 단지 쪽 유권자가 많아서 그런지 이미 수영장 있는데 단지 다른 쪽에 또 생활체육시설을 짓는 식이다. 저층 주택 지역에서 오래 산 주민이 있는 곳은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살고 있는데 요구사항이 쉽게 무시된다. 초등학교가 문을 닫으면 주민들이 산보할 공간이 없어 외곽에 도로로 위험하게 돌아가면서 운동해야 하는 동네도 있다. 이렇게 불균형이 심화되는데 지역에 대한 애향심이나 정주의식이 없으면 변화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서울에서도 지역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정주의식이 생기고 결국 시민의식으로 발전한다.
박은미 : 유기동물 취재하면서 놀랐다. 은평구는 안락사율이 높은데 관악구는 왜 낮을까. 은평구에서 잃어버린 개는 죽을 확률이 높고 관악구에서 잃어버린 개는 살 확률이 높은 거다. 개만 해당할까. 어떤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주민들 삶이 바뀐다.
이성호 : 지역에 따라 지역혐오가 있기도 하다. 명확히 따져보면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도 있는데 이를 바로 잡는 게 지역신문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김경숙 : 서울 지역의 경우, 정치인들이 시민의식으로 나아갈 정주의식이 생기는 걸 막는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자치단체장이 하는 행사에 한번 갔는데 자기 지역 역사 이야기를 하다가 연결해 정책으로 입안을 했더라. 지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지역 정체성,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타 지역은 지역연고가 없으면 공천도 잘 안주는 분위기가 있다. 서울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지역과 무관한 기준으로 전략공천을 하지 않나. 그러니 주민 삶과 무관한 개발, 건축이 중심이 된다. 주민들이 지역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면 정치인의 지역 행보에 대해서도 판단을 하게 될 거다.
박은미 : 지역을 둘로 구분한다. 지역신문이 있는 곳과 없는 곳. 우리 신문에 대한 자부심으로 하는 말인데 실제 은평 주민이면서 강남에서 일하는 분이 있다. 일하면서 겪는 문제가 많은데 그 지역을 다뤄줄 신문사가 없어서 답답했다고 하더라.
김경숙 : 건강한 지역신문을 경험한 주민들이 타 지역에 가면 어떨까요? 구로·금천·은평에서 지역신문을 경험한 사람들이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에 구독료를 내고 보게 된다. 많은 사람이 종이신문 구독료를 왜 내냐고 하지만 좋은 지역언론을 잘 키우면 결국 일간지까지 구독할 힘이 된다고 본다.
-전국적으로 2000년대 계도지(통반장 신문구독료를 구청 세금으로 대납하는 관언유착 관행) 폐지운동이 있었고 성과도 있지만 서울은 여전히 계도지가 유지되고 있다.
박은미 : 한 지역의원이 그러더라. '은평구 예산이 1조원인데 거기서 자기한테 도움되는 얘기 하는데 (계도지로) 6억원 쓰는 걸 눈 하나 깜짝하겠나.' 계도지 예산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지 말해준다. 행정권력 정점에 있는 사람을 위해 언론 관련 예산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성호 : 통반장에게 신문 말고 다른 혜택을 주는 게 좋은가? 이런 생각도 든다. 결국 계도지 예산을 지역신문을 위한 공적예산으로 전환하고 그 예산이 언론을 지원할 예산이라면 투명하게 집행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논의가 많이 필요하다.
김경숙 : 구청장과 공무원들이 함께 의사결정하는 거다. 구청 자치구 '언론보도' 게시판에 가면 구로구 지역에 대해 취재한 기사가 없다. 구의회나 구청이 보도자료내서 계도지로 나가는 곳들에 실린 기사를 성과물이라고 올려놨다. 계도지 예산을 없애는 걸 원치 않는 거다. 결국 제대로 된 지역신문을 만들 기반이 지역주민을 위한 더 나은 삶의 기반이 된다. 구청에서는 계도지를 주면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거라고 말하겠지만 아니다. (계도지는 박정희 정권 시절 시작했으니) 50년이 지났는데 50년 전 소통법을 지금 적용해야 하나.
이성호 : 구청장이 막대한 예산을 쓰는데 식사자리에서 간담회를 하는 식이다. 밥 안 먹어도 좋으니 정책설명회를 해야 한다. 행정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 주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로 문답이 오가는 정책설명회는 많이 없다.
김경숙 : 처음에 구의회 취재 갔는데 의안 관련 자료를 요청했더니 안 주더라. 왜 안 줬을까? 처음이라서 그랬던 거다. 자료를 요구하는 게 일반화되면 아무말 없이 주지 않겠나. 취재를 하면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취재를 당해본 공무원들은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해줘야 한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주민과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경험이 쌓인다. 좋은 지역언론의 경험은 주민뿐 아니라 행정 공무원들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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