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새 부산·수원·대전 세 아이 사라졌다…"법 넘은 특단 절실"
피해자, 국민들 “특단 대책 마련하라”
전문가 “법만 믿어선 ‘노답’…실질적 조치 절실”
한 달 사이에 부산 대전 수원 등 전국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 학부모들은 앞세운 자식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가해자 처벌과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부산 대전 수원서 잇따라 아이 잃은 부모 절규
13일 고(故) 황예서 양 아버지가 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블로그와 SNS를 통해 확산하면서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8시22분 부산 영도구 청동초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망 제조업체 대표 A 씨가 면허 없이 지게차를 조작해 화물을 내리는 작업을 하다 1.7t 짜리 원사롤을 떨어뜨려 초등학교 3학년인 예서 양이 숨지고 다른 초등학생 2명, 학부모 1명이 다쳤다.
예서 양의 아버지는 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부산 영도구 황예서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의 편지 글을 딸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올렸다. 그는 “아빠는 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보고 싶은데, 안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눈물만 나는구나”라고 썼다. 또 그는 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태권도 도복을 입은 예서의 사진과 생일 케이크 초를 끄는 영상을 올렸다. 게시물은 온라인에서 SNS와 블로그 등으로 퍼졌고, 관련 게시물마다 누리꾼들은 애도와 함께 정부와 지자체의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 조치를 요구하는 원성 섞인 댓글을 빼곡히 달았다. 누리꾼들은 “가해자 처벌 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동네에도 비슷한 위험지가 많다.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경찰은 지난 10일 A 씨를 업무상과실치사상, 건설기계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구속했다. 사고 지역을 관할하는 영도구도 지난 1일 청동초 어린이보호구역에 불법주정차 단속 CCTV를 7월 중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구는 행정절차를 이유로 이 사업을 9월 중 하겠다고 밝혔으나 학부모들이 침묵 시위를 이어가는 등 반발하자 설치 시기를 앞당겼다.
▮피해자, 국민들 “특단 대책 마련하라”
하지만 이 사건을 보는 국민의 분노와 정부와 지자체를 향한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부산 이외에도 대전 경기 등 전국에서 비슷한 스쿨존 사건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경기 수원시 스쿨존 내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우회전 신호를 위반한 시내버스에 치여 숨졌다. 당시 부모는 횡단보도 맞은 편에서 아이를 기다리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예서 양 부모처럼 이 아이의 부모도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며 “어른들이 아이들 안전을 보호하는 데 나서 달라”고 수차례 당부했다. 피해 아동은 조은결,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은결 군 아버지는 “아이가 너무 아파해 보였다. 사고 당시 하교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버스가 신호를 무시해 내 아이가 숨졌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은 버스운전자에게 민식이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지난 11일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민식이법을 위반해 스쿨존에서 어린이가 사망하게 하면 가해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형을 받는다. 은결 군의 아버지는 “민식이법이 있으면 뭐하냐. 사건은 계속 터지는데”라면서 “진짜 중요한 법이 뭔지 생각하고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지난달 대전에서는 9세 배승아 양이 스쿨존 내 인도를 걷다가 만취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승아 양의 유족도 언론에 아이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가해자 엄벌을 촉구했다.
▮전문가 “법만 믿어선 ‘노답’…실질적 조치 절실”
한편, 지난 13일 악사손해보험이 19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1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운전자 교통안전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민식이법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2020년 3월부터 시행된 민식이법은 스쿨존에 무인단속 장비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후 대부분의 스쿨존은 하루 24시간 내내 제한속도가 시속 30㎞로 정해졌지만, 최근 들어 교통사고가 이어져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2019년 567건에서 2020년 483건으로 감소했다가 2021년엔 523건으로 다시 증가하며 민식이법이 없던 2017년 479건과 비교해서도 큰 폭의 감소는 없었다.
이에 법률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가 더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법 제도의 한계를 말했다. 국내 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사실 어린이 스쿨존, 보행구역 사고의 상당수가 안전시설이 부족해 경계가 쉽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다. 주민 민원, 상가 차량 주차 민원 등으로 가드레일 설치가 잘 안 되고 있다. 도로 법에 막혀 보행로가 확보 안 되는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쿨존 내 속도 단속도 경찰이 직접 상시 상주하는 식의 적극적 행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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