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세계와 직관적으로 친해지는 기회…‘사과 씨앗 같은 것’展 [전시리뷰]

송상호 기자 2023. 5. 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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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퐁텐블로’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 전경. 송상호기자

 

‘난해하지 않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백남준의 예술 세계’. 

백남준아트센터의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지난달 27일 개막했다. 동시대와 소통하면서도 항상 시대를 앞서 갔던 백남준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백남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만프레드 레베, 만프레드 몬트베, 알도 탐벨리니, 앨런 캐프로, 오토 피네, 저드 얄커트, 제임스 시라이트, 토마스 태들록의 작품을 다루는 이번 전시는 백남준을 비롯해 그의 곁에 머물거나 그를 스쳐갔던 작가들을 통해 백남준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이는 데 집중했다. 총 29점의 작품과 인터뷰 프로젝트 비디오 14점이 관람객과 만난다.

전시는 198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임의 접속 정보’ 강연 도중 백남준이 당시 새롭게 태동한 매체인 비디오에 대해 예술과 소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고 언급한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씨앗은 무엇일까. 교차점에서 생겨날 어떤 가능성 내지는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녹아 있는 비유로 읽힌다. 이번 전시에선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 사과 씨앗을 어떻게 하면 싹틔울 수 있을지 백남준의 삶과 생각을 따라 고민에 빠져볼 수 있다.

후면의 흑경을 통해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는 ‘나는 이 곡을 1954년 도쿄에서 썼다’가 전시된 모습. 송상호기자

백남준의 삶에서 뽑아낸 주요한 순간들이 전시장 곳곳에 스며들었다. 공연과 실험 작곡에 몰두하던 그가 독일에서 품었던 생각들, 텔레비전과 비디오 아트를 통한 프로젝트 작업으로 전 세계를 누볐던 시기의 작품들을 만난다. 이 가운데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에게 영향을 줬던 주변 동료 작가들, 그가 작업 때 작성했던 글을 함께 배치하고, 작품의 내부 구조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 관람객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기획했다.

본격적으로 전시공간에 들어가면 처음 맞닥뜨리는 벽면에 연보가 보인다. 백남준이 1963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등 당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사진들과 함께 아주 간결한 사건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글자와 숫자로 도배된 과다한 정보량을 들이미는 전시들과 다르게, 관람객과 백남준 세계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구성이다.

백남준作 ‘랜덤 액세스 오디오테이프’.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지난해 센터가 수집한 신소장품인 ‘랜덤 액세스 오디오테이프’는 백남준의 초기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백남준은 1963년 부퍼탈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선보인 첫 개인전에서 마그네틱 테이프를 풀어 제각기 조각으로 잘라낸 뒤 벽면에 붙여 놓았다. 이 테이프 조각에 관람객이 금속 헤드를 갖다대 녹음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 ‘랜덤 액세스’를 그가 다시 제작한 작품이다. 다시 만든 작품은 나무판에 붙은 테이프를 통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청취가 가능하도록 제작됐다.

소통을 강조한 전시의 기조 때문인지 전시장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나는 이 곡을 1954년 도쿄에서 썼다’는 벽면의 흑경과 함께 배치돼 있다. 텔레비전의 후면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내부 구조를 흑경에 반사된 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성은 전시장 초입에 있던 ‘퐁텐블로’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기존의 작품을 이루던 CRT 모니터는 수명의 제약이 있어 사용시간이 한정돼 있으므로, 일부 뒷부분을 LED와 디빅스플레이어로 교체한 상태다. 내부 구조를 육안으로 볼 수 있기에, 이처럼 작품에 깃든 역사도 함께 음미하는 기회도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조권진 학예사는 이번 전시에 대해 “백남준의 작품을 따라가는 데 있어 그가 활용한 기술과 아이디어, 함께 했던 작가들로부터 받은 영감과 그들의 피드백 등 단계적인 소통을 체험할 수 있게 전시를 기획했다”면서 “작품의 구성 원리와 기술의 구조적인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훨씬 깊게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의 작품은 태생적으로 기술을 매개로 예술의 확장성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12일까지 열린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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