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매력적인 '택배기사', 또 한 번 K디스토피아 열풍 만들까
[엔터미디어=정덕현] 2071년 혜성의 충돌로 인해 종말로 치닫는 지구. 한반도는 사막이 됐고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된다. 단 1%만 생존한 이들은 일반, 특별, 코어로 계급이 분류되어 구호물품을 택배로 받아 살아가는 삶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자체가 되지 않은 난민들은 사막에 버려진 채 생존해야 하는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택배기사>가 먼저 보여주는 세계관은 미래에 벌어진 상상의 허구지만,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건 이 환경 재앙을 보여주는 세계관이 어딘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며 몇 년 간을 비대면으로 고립되어 지내야 했던 우리들에게 이 디스토피아는 그저 상상의 허구로만 보이지 않는다. 산소호흡기가 마스크로 보이고, 산소를 공급하고 백신도 만들어내는 천명이라는 회사가 마치 글로벌 제약회사처럼 보인다.
신체검사를 하고 백신을 맞는 장면은 또 어떤가. 코로나 19의 선별진료소와 백신 접종의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계급으로 나뉘어 코어 지역에는 마스크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산소가 공급되지만 난민들이 지내는 사막은 마스크 없이는 몇 분을 버티지 못하는 이 차별적인 '산소 공급' 역시 백신을 두고 벌어졌던 잘 사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들 사이의 차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택배기사>의 상상력이 흥미로워지는 부분은 바로 제목에 담긴 것처럼 팬데믹을 겪으며 '택배'가 깊숙이 들어온 우리의 삶(특히 한국사회)을 이 드라마의 모티브로 가져온 부분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거대한 기업으로 자리한 택배업체들은 특히 배달 문화가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급속도로 자리를 잡고 성장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천명이라는 그룹이 택배업과 백신, 환경 솔루션을 경쟁력으로 국가와 딜을 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상황은 팬데믹을 겪으며 급성장한 관련 산업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택배기사>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흥미롭다. 그간 K디스토피아가 그려낸 세계들이 당대의 우리네 현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발 빠르게 포착해 은유함으로써 판타지적 세계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택배기사>의 세계관도 이들 작품들과 계보를 함께 한다. 이를 테면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가 공감하는 양극화된 경쟁사회의 단면을, <킹덤>이 조선 좀비를 통해 양극화된 현실을, 또 <지금 우리 학교는>이 폭력과 경쟁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만든 세계에 노출된 아이들의 비극을 은유했던 것처럼, <택배기사>는 팬데믹을 통해 경험한 전 지구적인 환경 재앙 속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이조차 산업화하는 비정한 현실을 은유한다.
물론 세계관만이 아닌 그 위에서 펼쳐지는 스토리들도 이를 구현해낸 액션도 흥미진진하다. '택배기사'가 마치 중세의 기사들처럼 어려움에 처한 약자들을 위해 싸운다는 중의적 의미로 재해석된 부분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택배기사 5-8(김우빈)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움직이는 택배기사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5-8은 등장만으로도 피를 끓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는 김우빈이라는 배우의 지분이 절대적이지만.
5-8과 더불어 그 같은 택배기사가 되고픈 꿈을 꾸는 난민 사월(강유석)과 사월을 보살펴주며 동생의 죽음을 겪고 천명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는 군 정보사 설아(이솜) 소령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사건을 통해 서서히 한 팀으로 묶여져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 과정에는 K디스토피아에 빠지지 않는 '서바이벌' 미션 서사가 주는 몰입감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택배기사>가 거둔 중요한 성취는 이 가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구현해낸 영상 연출이다. 사막을 달리며 펼쳐지는 레이싱 액션은 마치 <매드맥스>의 한 장면처럼 보이고, VFX로 재현된 무너진 남산 타워처럼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 곳곳의 모습들은 그 배경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움을 준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거대한 세계를 6부작 안에 담아 놓고 너무 빨리 그 세계를 닫아버린 느낌이 남는다는 점이다. 과정은 충분히 흥미진진하지만 그 끝은 너무 간단하게 처리된 느낌이랄까. 빠른 속도감으로 1편을 보면 끝까지 단번에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의 힘은 너무나 좋지만, 이 정도의 세계라면 좀 더 느린 호흡으로 흘러가며 인물들의 서사들과 그 감정들을 좀 더 차곡차곡 쌓아갔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택배기사>가 갖고 있는 이 세계관의 매력이다. 팬데믹을 은유한 이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충분히 글로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과연 <택배기사>는 또 다시 K디스토피아 열풍을 이어갈 수 있을까. 만일 그게 가능해진다면, 스핀오프로라도 <택배기사>의 세계관을 가져온 다른 서사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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