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이불에 지퍼 단 침구회사..이브자리 디자인연구소, 스무돌

김성진 기자 2023. 5. 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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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 시장 과거와 오늘 함께...국내 최초 '침구 전문' 디자인 연구소
카림 라시드, 故 이영희 디자이너도 협업...디자인 등록 수차례, 어워드 수상도
이불에 처음 지퍼 단 회사가 차린 연구소...'건강한 수면' 두번째 도약
서울 동대문구 이브자리 본사 1층 매장에 진열된 파라디스 '아이더 다운' 침구. 해당 건물 3층에 오는 6월 설립 20주년을 맞는 이브자리 디자인연구소가 있다./사진제공=이브자리.

# 침구를 세탁하려면 지퍼를 열어 겉면만 세탁기에 던져 넣으면 끝이다. 지퍼가 달린 침구를 처음 내놓은 회사가 '이브자리'다. 창업주 고준홍 대표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출신이었다. 1977년 이브자리를 창업한 이듬해 지퍼 달린 옷을 보다가 이불에 지퍼를 달아야겠다고 떠올렸다. 당시 침구는 바느질로 돼 있어 한번 빨래하려면 바느질한 것을 뜯어냈다가 다시 바느질해야 했다. 이브자리를 시작으로 지퍼 달린 침구는 표준이 됐다.

이브자리 디자인연구소가 오는 6월 설립 20주년을 맞는다. 한국 최초 침구 디자인 연구소다. 지금까지 디자인한 상품만 1만4000종이 넘는다.

이브자리가 창업한 시대, 침구는 지금처럼 브랜드 대리점에서 사던 물건이 아니었다. 동네마다 재봉틀 딸린 가내 수공업식 이불 가게에서 사던 게 보통이었다. 이브자리는 침구 전문 브랜드를 런칭하고 대리점 체제를 만들어갔다. 침구를 옷, 신발처럼 브랜드 대리점에서 사는 트렌드가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1990년 이브자리 전국 대리점이 500호를 돌파했다. 오프라인 침구 판매가 안정됐고 고 대표는 침구 품질 향상을 위해 2003년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제 침구 브랜드마다 고급, 기능성 경쟁을 벌인다. 이브자리가 침구 브랜드화 시대를 열고, 디자인연구소가 품질 경쟁 시대를 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연구소는 서울 동대문구 이브자리 본사 3층에 있다. 내부 모습이 바깥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한해 침구 700종을 디자인하는 곳이고, 눈을 조금만 돌려도 기밀투성이다. 연구소 안에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종합하면 이곳저곳에 콘셉트 보드, 상품 가상 완성그림이 있다고 한다. 지금 연구소는 올 F/W(가을·겨울) 시즌 상품을 디자인 중이다. 이브자리 관계자는 "개발 중인 새 소재와 침구 충전물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와 상품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인력은 30여명이다. 침구 디자인 경력만 18~20년 된 베테랑들이 즐비하다. 연구소는 세계적인 침구 디자이너,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지난 2월에는 카림 라시드와 협업해 △카림 아트 △카림 스투키 △카림 웨이브 3종을 출시했다. 카림 라시드는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로 꼽히는 인물이다.

카림 아트./사진제공=이브자리.


연구소는 2003년 설립되고 침구 고급화를 이끌어 왔다. 설립 6년 만에 '스와로브스키'로 유명한 크리스털라이즈드와 'e-다이아몬드' 침구 세트를 출시했다. 다이아몬드를 연상하는 큐빅을 이불에 붙였거나 은사 자수로 다이아몬드 반짝임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었다. 신혼부부들에게 큰 인기였다.

2010년대는 '고급 혼수' 전성시대였다. 연구소는 왕실문화원, 그리고 5년 전 별세한 고(故) 이영희 디자이너와 '왕실예단'을 출시했다. 왕실문화원은 조선 왕실 문화를 발굴, 계승, 홍보하는 곳이다. 이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로 한복의 세계화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된다. 왕실예단은 과거 왕실 진상품처럼 품질이 좋다고 인정받아 왕실문화원 '로얄워런트' 인증을 받았다.

로얄워런트 인증을 받은 이브자리 침구 금윤./사진제공=이브자리.


연구소는 해외 침구 트렌드에도 민감했다. 이브자리는 1995년 국내 최초로 독일 기업 파라디스에서 구스 다운(거위털) 침구를 들여왔다. 연구소가 설립된 후에는 외국 브랜드들과 라이센스 계약 체결, 협업을 연구소가 도맡아 한다. 현재 이브자리 매장에 가면 독일 파라디스 최고급 구스 침구가 있다. 100% 손으로 채집한 아이더 덕 가슴 털로 만든 상품이다. 아이더 덕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해안선에만 사는 해양성 물오리다. 털 품질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데 1년에 침구 3000개를 생산할 정도의 분량만 수집된다.

침구 디자인은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다. 인체공학적 분석과 연구로 수면의 질을 끌어올리는 기능적인 역할도 해야 한다. 디자인이 수면 질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가 이브자리 분할 베개다. 베개를 6분할, 5분할 해 자는 동안 수면에 방해받지 않고 머리가 편안하도록 했다. 연구소는 분할 구조인 우레탄 베개도 개발해 디자인 등록까지 마쳤다.

이브자리 슬림핏PT 베개. 어깨가 말리고 등이 굽은 사람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전문의들과 설계했다. 이브자리 디자인연구소는 침구 디자인이 아름다움뿐 아니라 기능적인 면도 챙겨야 한다고 한다. /사진제공=이브자리.


연구소가 가진 디자인 등록권은 모두 8개다. 자다가 뒤척여도 신체를 부드럽게 지지하는 토퍼 등이 디자인 등록을 마쳤다. 연구소 상품들은 7차례 한국디자인 진흥원(KIDP) 굿 디자인 어워드를 받았다.

연구소는 지난 3월 국내 대형 종합병원 전문의 등과 협업해 슬립핏PT 베개를 개발했다. 어깨가 말리고 등이 굽어 견갑골, 이른바 날개뼈 사이가 멀어진 사람도 편안하게 자도록 받쳐준다는 게 특징이다. 연구소는 이브자리가 침구업계 부동의 1위를 유지하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이브자리는 지난해 침구 업계 최고 수준인 매출 1500억원을 거뒀다.

이브자리 관계자는 "침구 소비 트렌드에 맞춰 수면의 질을 높이는 침구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며 "아름다움뿐 아니라 건강한 수면을 돕는 침구를 디자인하기 위해 여러 연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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