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장애’ 이야기에도 악플 붙지만…미움은 꾸준할 수 없어요
② 장애인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 김지우
‘유쾌한 장애’ 콘텐츠로 장애와 친해지기
“휠체어 여행 유튜버 꿈꿔요”
‘미워해도 소용없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지난해 5월17일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데이)을 맞아 내 건 문구다. 해당 문구는 같은 해 퀴어퍼레이드에서도 사용되며 성소수자와 앨라이(ally·성소수자 인권 지지자) 공감과 반응을 끌어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올해 ‘미워해도 소용없어 2023’ 캠페인을 시작한다. 지난해 캠페인이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성소수자·앨라이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자신을 긍정하며 현재를 사는 모습에 주목한다. 〈한겨레〉도 이 캠페인에 동행했다. 시리즈는 17일까지 총 6차례 계속된다.
“수업을 듣느라 밥을 못 먹어서요.”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는 유튜버 김지우(22)씨가 입을 오물거리며 강당으로 들어와 씩 웃었다. 대학 수업과 각종 촬영으로 끼니를 못챙겨 간식으로 때웠다고 했다. 그는 턱이 없는 넓은 강당에 경쾌하게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와 간식을 꿀떡 삼킨 뒤 인터뷰 준비를 마쳤다. 〈한겨레〉는 앰네스티와 함께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아트홀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7년 차 유튜버이자 뇌병변장애를 가진 휠체어 사용자다. 장애인으로 살며 겪는 일상들을 유튜브에 올린다. ‘조선 시대에 휠체어가 있었다면?’ ‘휠체어 타고 물놀이하기’ 등 김씨가 만든 톡톡 튀는 콘텐츠들은 장애인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북돋는다. 지난 6일 공개된 ‘휠체어로 비행기 탈 수 있을까’편에서는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비행기에 탑승하는 과정이 생생하다. 전동 휠체어의 배터리를 분리해, 배터리는 기내로 휠체어는 수화물로 옮기는 것도, 기내에선 기내용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도 비장애인에겐 ‘뉴스’다. 영상에서 김씨는 “무사 탑승 완료”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장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할 수 있을까.’ 김씨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 “비장애인들은 장애를 나와 관련 없거나 먼 것으로 취급해요. 장애는 언급조차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주 모습을 드러내서 사람들이 (장애에) 익숙해지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장애를 유쾌하게 다루는 김씨의 콘텐츠를 보며 장애 당사자들도 삶의 다채로운 면을 발견한다.
영상을 만들기 전, 김씨는 자신이 “외롭고 특이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영상에 댓글이 많이 달려요.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마음을 똑같이 느껴봤다’라고요. 나라는 사람의 등장이, 휠체어 사용자들이 여태까지 못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가 유튜버 일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김씨는 소수자의 눈으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2월에 대만, 홍콩 등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어요. 휠체어로 여행하면 대중교통에 관련 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돼 있는지 등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걸 금방 잡아낼 수 있거든요.” 대만의 대중교통은 엘리베이터 위치나 휠체어 동선 등 장애인을 위한 정보가 잘 안내 돼 있었다. 장애인 화장실도 찾기 쉬웠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광안내 책자가 있는 건 특히 인상 깊었다. 김씨는 여러 나라의 이동권을 보여주는 영상을 찍는 ‘여행 유튜버’를 꿈꾼다. 장애인이 가시화될수록 장애가 상대를 대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소수자일수록 ‘나와 같은 존재’가 소중하다. 김씨는 지난해 ‘휠꾸’(휠체어 꾸미기) 활동을 하며, 9살 지체장애 아이를 만났다. 비장애인과 함께 학교 생활하며 타인과 다르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이는 사람과 대화하기 어려워하는 성격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한 달에 한 번 아이를 만나 함께 휠체어를 디자인하고 꾸몄다. 세번째 만났을 때 아이가 말했다. “친구들이 부러워할 것 같아요. 빨리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씨는 아이에게서 큰 힘을 느꼈다고 했다.
김씨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비슷한 타인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김씨는 지난 28일 연극 〈틴에이지 딕〉에 나온 배우 하지성이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 부문 연기상을 받은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뇌병변장애인인 하지성은 당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 “비장애인 학생들 사이에서 제가 학생회장이 된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유쾌한’ 장애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만, 김씨에게도 장애인으로 사는 삶은 때때로 고되다. 지난 4월 서울 성동구에 있는 협동조합 무의에서 열린 ‘걸즈 온 휠즈(girls on wheels)―나다운 프로젝트 만들기’ 토크 콘서트에서 김씨는 좀처럼 내뱉지 않는 “힘들다”는 말을 했다. 당시 객석엔 휠체어를 탄 여성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장애가 원동력인지 장애물인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어요. 평소의 나라면 원동력이라고 했을 텐데, 그날은 ‘솔직히 저 좀 힘들다’고 말했어요.” 장애인은 힘들고 우울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 앞에서 김씨는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나를 지키고 나를 나답게 유지할 수 있으려면 무조건 좋은 점만 보여주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해요.” 이를 위해선 안전한 공간,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김씨는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징후를 목격하고 있다.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휠체어를 타고 가면 직원이 싫어하는 티를 내거나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불편한 내색 없이 바로바로 자리를 안내해 준다”고 했다. 사회는 느리게 바뀌더라도 개인들은 쉽고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작게 보면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있다. “언젠가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제 유튜브 채널에 몰려와 악플을 단 적이 있어요. 그런 것에 초연한 편인데도 신경이 쓰였어요.” 그는 3일 동안 인터넷을 끊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책을 읽으며 보냈다. 채널 댓글 창은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김씨는 그때 느꼈다. “미워하는 건,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보다 꾸준할 수 없더라고요.” 김씨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꾸준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악플에도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 김씨는 말한다. “미워해도 소용없어. 그 미움은 꾸준할 수 없으니까.”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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