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은 고봉밥에 슴슴한 제육볶음 … 情 있어 더 맛나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손맛 내공’ 느껴지는 40년 된 노포
낡은 은색쟁반 위 매일 다른 반찬
허기 때우기보다는 위안 얻는 곳
옛날 외할머니 댁 같은 이곳의 추억에 잠기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듯한
방앗간과 식당들이 있는 용산 ‘땡땡거리’를 걷고 있자면
1980년대 내 어릴 적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이곳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여천식당이 있다.
고층건물들 사이에 오래된 듯한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골목길이 보인다. 용산역에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땡땡땡’ 열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이촌로 29길 바로 용산 땡땡거리다. 지금은 오래된 골목길의 추억 속 여운 속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의 방문이 잦아져 브런치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많이 들어서고 있지만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내 어린시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1980년대 느낌의 음식점, 방앗간, 사진관 들이 아직 영업을 하고 있다. 기찻길 옆 주점은 저녁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기찻길이 보이는 창문에 앉아 땡땡 소리를 들으며 먹는 안주와 술은 그 어느 음악보다도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어주며 술잔을 기울이게 해준다.
늦은 점심,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백반 한 상을 시킨다. 따로 다른 메뉴는 없다. 곧 정갈하게 차려진 반상이 나온다. 세월이 느껴지는 은색 쟁반이다. 다른 음식들보다 눈에 띄는 건 포실포실하게 갓 지은 듯한 고봉밥이다. 요즘엔 어느 식당을 가도 이렇게 푸짐하게 얹어진 밥을 보기 어렵다. 오전 내내 일하고 온 허기진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가득한 밥그릇이다.
여천식당의 반찬은 매일 달라진다. 연속으로 4일 정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김치 말고는 반찬이 같은 적이 없다. 여천식당의 주방은 문이 없어 카운터 선반을 제치고 나와야 한다. 그래서 단골들은 식사를 한 후 계산을 하며 다 먹은 반상을 주방으로 가져다준다. 나도 단골인 척 슬그머니 주방에 다 먹은 반상을 놓는데, 밥이 너무 많아 조금 남겼을 때면 꼭 한마디를 하고 간다. “너무 맛있는데 제가 위가 작아요”라고. 사장님 마음 안 상하게 말이다.
제육볶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80년대 들어서야 술안주로 조금씩 알려졌고 1980년 후반부터 학생들과 직장인들을 통해 밥을 더한 후 점심식사 메뉴로도 인기를 끌었다. 제육은 돼지고기를 뜻하는데 ‘저육’이라는 말에서 변형되었다. 순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 제육볶음은 돼지고기볶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빨간 양념인 고춧가루나 고추장에 버무려 야채와 익혀 먹는데 지역에 따라 돼지주물럭, 고추장불고기, 돼지불고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육볶음을 얹은 밥인 제육덮밥은 분식집이나 백반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이고, 다른 반찬 없이 김치 하나만 나와도 가뿐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고기의 부위는 삼겹살, 앞다리살, 목살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재료>
삼겹살 250g, 매운 고춧가루 2Ts, 고추장 2Ts, 간장 50ml, 설탕 2Ts, 미림 50ml, 소금 some, 굴소스 1ts, 물 50ml, 간마늘 50g, 양배추 30g, 양파 50g, 새송이버섯 30g, 토마토 1/2ea, 씨겨자 머스타드 1ts, 샐러드오일 some, 깨소금 some
<만들기>
① 삼겹살은 한입 크기로 손질한 후 미림에 절여 놓는다. ②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설탕, 굴소스, 물, 간마늘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③삼겹살에 양념장을 버무려 준 후 야채도 한입 크기로 준비해 놓는다.④팬에 기름을 두르고 중불에 고기를 볶아준다. 양념이 타지 않게 잘 저어준다.⑤토마토를 뺀 야채들을 넣어 준 후 같이 볶고 씨겨자 머스타드와 소금을 넣고 간을 해준다.⑥고기가 다 익고 양념에서 윤기가 나면 한입 크기로 자른 토마토를 넣고 1분간 볶아 준다.⑦접시에 담고 깨소금을 뿌려 마무리해 준다.
다이닝 주연 김동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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