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강타한 학폭 폭로, 그 이후
안우진·김유성, ‘학폭’ 꼬리표 여전히 따라붙어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최근 한 커뮤니티에는 프로야구 비수도권 연고지 구단에 속한 한 선수에 대한 과거 학교폭력(학폭) 폭로가 있었다. 17년 전, 초등학교 때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과거 학폭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입길에 오르고 있다. 학폭 문제가 불거지면 선수 생명엔 치명적이다. 배구 국가대표 출신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국내에는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고 해외를 전전하기도 한다. 키움 히어로즈의 안우진은 누구나 인정하는 국내 최고 에이스지만 국가대표엔 발탁되지 못한다.
두산 베어스 투수 이영하는 현재 학폭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2021년 2월 선린인터넷고 야구부 후배 A씨가 이영하와 김대현(LG 트윈스)에게 학폭을 당했다고 스포츠윤리센터에 신고했고, 스포츠윤리센터는 자체 조사 후 이들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김대현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영하의 선고 공판은 5월31일 열린다. 검찰은 이영하에게 징역 2년을 구형한 상태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영하는 프로 선수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도, 멈출 수도 있다. 야구위 규약에는 협박·폭행·상해 등에 대해 2개월 참가활동정지나 50경기 이상 출장정지, 또는 500만원 이상 제재금으로 징계할 수 있다. 하지만 규약보다 무서운 게 여론이기 때문에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이영하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영하는 2017년 프로 데뷔 후 통산 46승 35패 7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했다. 학폭 문제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에는 17승을 거두며 다승 2위에도 올랐다.
출장포기·은퇴 선언으로 대응 빨랐던 송명근·박상하는 코트 복귀
스포츠계 학폭 문제는 여자배구 이재영-이다영 자매로부터 촉발됐다. 이다영이 흥국생명 소속 시절이던 2021년 2월 팀 내 불화를 암시하며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촉매제가 됐다. 당시 이다영은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 "갑질과 괴롭힘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고 적었는데, 자신의 글이 부메랑이 됐다. 중·고교 시절 이다영·이재영으로부터 폭행과 협박 등을 당했다는 같은 배구부 내 후배들의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쌍둥이 자매는 이후 자필 사과문을 올렸으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국내 배구계에서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이재영과 이다영은 한때 그리스 리그나 루마니아 리그에서 뛰기도 했지만 현재는 소속팀이 없다. 이재영의 경우 페퍼저축은행에서 영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배구계에서는 한때 이재영만은 구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있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이들 쌍둥이 자매를 국내 프로리그에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영구 제명된 상태다.
쌍둥이 자매의 학폭이 이슈화된 후 여러 폭로가 뒤따랐다. 남자배구에서는 송명근과 박상하의 학폭이 제기됐지만 이들은 현재 프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송명근은 학폭이 터진 후 즉시 사과한 다음 2020~21 시즌 잔여경기 출장을 포기했다. 이후 FA 자격으로 OK금융그룹과 연봉 3억원에 계약하고 입대했다가 제대해 2022~23 시즌을 뛰었다. 박상하의 경우는 폭로 직후 두 차례 학폭은 인정하며 은퇴를 선언했다가 14시간 감금 폭행에 대해서는 허위 제보라는 게 드러나며 다시 코트에 돌아왔다. 소속팀은 삼성화재에서 현대캐피탈로 바뀌었고, 2022~23 시즌 챔프전에도 뛰었다.
쌍둥이 자매와 달리 송명근·박상하가 코트에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응 자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도 처음에는 학폭을 인정하며 사과했다가 이후 맞고소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태도를 바꿨다. 여기에 실망한 팬들이 더 등을 돌린 감도 없지 않다.
한 번 박힌 주홍글씨,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이유
프로야구에서는 앞서 언급한 이영하·김대현과 더불어 안우진과 김유성(두산 베어스)이 학폭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안우진은 휘문고 시절 학폭으로 대한체육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국가대표에 뽑힐 수 없다. 오는 9월에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 포함될 수 없는 이유다. 안우진의 경우는 피해자 4명 중 3명과는 화해했는데, 군 복무 중인 1명에게는 아직 용서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리그 최고 에이스로 평가받고 있지만 학폭 이슈는 내내 꼬리표로 따라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해고 에이스였던 김유성은 고3이던 2020년 연고지 구단인 NC 다이노스에 1차 지명됐지만 중학교 시절 학폭이 알려지며 지명이 철회됐다. 1차 지명 철회는 프로야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김유성은 고려대에 진학했고, 2학년이던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때 두산에 지명됐다. 지명 철회 시위 트럭까지 등장했지만 두산은 계약을 밀어붙였다.
김유성은 4월28일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투수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성적은 1이닝 2볼넷 무실점. 하지만 5월4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1이닝 3피안타(2피홈런) 5실점으로 무너졌다. 김유성이 등판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배지환(피츠버그 파이리츠)은 2018년 데이트 폭력 관련 혐의로 대구지검으로부터 약식 기소된 적이 있고, 이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30경기 출장 정지 징계 또한 받았다. 배지환 또한 항저우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과거 학창 시절 학폭 폭로는 비단 스포츠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돌 가수나 배우 또한 과거 학폭 문제로 팀에서 탈퇴하거나 드라마에서 하차하는 일이 종종 빚어진다. 대중의 잣대는 TV를 통해 노출되는 이들에게 더 엄격한 면도 없지 않다. 도박이나 음주운전 등과 비교해 여론이 더 가혹하기도 하다. 인기가 많은 이들일수록 채찍은 더욱 강해진다. 쌍둥이 자매와 송명근·박상하 사례에서 보듯이 초기 대응 태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여부에 따라 대중의 판단도 달라진다.
학폭 폭로와 그에 따른 제재로 아마추어 스포츠계에서 자정 노력이 펼쳐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교 2학년 야구선수를 둔 한 학부모는 "요즘은 학교에서 운동선수가 더 말썽을 안 부린다. 오히려 비(非)운동선수가 운동선수에게 언어·신체 폭력 등을 가해도 운동선수는 미래를 위해 가만히 참고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더러 학폭의 경중에 따라 선수들을 각각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재 학폭에는 경중이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강력한 자숙·자중 노력으로 프로 스포츠계에서 '학폭' 주홍글씨를 단 선수들이 점점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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