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특집] '어린이' 잡지에 일제 검열이 집요했던 이유

박재령 기자 2023. 5. 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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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특집 (10)] '어린이' 잡지 통해 본 100년 전 시대상
31운동 경험한 일본, 각종 이유 들며 잡지 검열, 압수명령도
빈 맥주병 가져가던 7살 소년 구타한 일본인 등 어린이 수난도 담겨
"의사소통 능력은 공동체 기초" 문학 창작 독려하며 잡지가 '리터러시' 교육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5월5일은 어린이날이다. 365일 중 364일이 어른의 날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됐고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어린이 인권운동가 방정환이 참여한 잡지 <어린이> 창간 100주년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이 잡지 <어린이>에 대한 전시를 개최한다. 미디어오늘은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100년전 '어린이'의 모습을 <어린이>를 통해 조명해보려 한다. - 편집자주

10만 명 넘는 독자를 확보하며 신문만큼 영향력 있던 100년 전 <어린이> 잡지, 31운동을 겪은 일본은 잡지를 보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아우르는 표현 '어린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새 시대를 만들 주체로 인식됐고 잡지 <어린이>(1923년 창간)는 그 변화의 구심점이 되고자 했다.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전환한 일본은 각종 이유를 들며 잡지를 검열했고 그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당시 일본의 폭거를 확인할 수 있다.

▲ 1930년 5월4일 조선일보에 실린 방정환 글 '어린이날을 당하야' 자료=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1호부터 86호까지 <어린이> 편집을 담당했던 방정환의 글 중 '어린이날을 당하여'와 '어린이독본'은 일제로부터 '불허가'됐다. 삭제된 원고들은 각각 1930년 조선일보와 중외일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모두 어린이를 변화의 시작으로 삼아 민족에 행복을 가져오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때만 해도 어린이날(당시 5월1일)은 공식 기념일이 아니었고, 일제에 의해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처지였다.

방정환은 <어린이>에서 검열 당한 '어린이독본'으로 추정되는 중외일보 글 '한데 합쳐서'에서 “이 세상 사람이란 사람을 한데 합쳐서 사람 하나를 만들면 얼마나 큰 사람이 될까요. 아마 대포로 쏘아도 안 죽고 산으로 눌러도 쓰러지지 않을 걸요”라며 “우선 생김생김이 똑같고 하는 말이 똑같은 조선사람만이라도 모두 한데 합해서 한 사람이 된다면 참말 그야말로 참말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고 하고 싶은 것 치고 못할 것이 없는 굉장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일제의 적나라한 검열 흔적은 <어린이> 편집후기에 해당하는 '남은잉크'에서 찾을 수 있다. 제6권 제2호에 실린 '편집을 마치고'에서 한 편집진은 신년호가 너무 잘 팔려 압수명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방 선생님이 날마다 날마다 총독부에 들어가셔서 교섭하느라고 애를 쓰셨으나 끝끝내 좋은 해결은 얻지 못하고 말았다”고 했다. <어린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제 검열 방식은 '○○'으로 처리하기, 내용 일부 삭제하기, 삭제 원고 목록만 남기는 방식, 목차에 작품 제목만 남기는 방식 등이다.

▲ 일제 검열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어린이' 남은 잉크. 자료=국립한글박물관.

아이들은 혹시라도 검열 탓에 <어린이>가 발행을 중단할까 발을 동동 굴렀다. 제4권 제7호 독자후기에서 수원에 사는 최순애 어린이는 “아! 참말 눈물나게 반갑고 감사한 6월 호! 잡혀가고 갇히고 수색당하고 그 끔찍스러운 소문을 듣고 한동안은 <어린이>도 나오지 못할 줄 알았더니”라며 “인쇄하는 것도 못 보시고 잡혀가신 방 선생님 그래도 인쇄는 되어서 저희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언제나 우리도 자유롭게 될는지요. 6월 호 책장을 적시면서 저희는 선생님들이 하루라도 속히 나오시게 되기만 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수난을 당한 건 잡지뿐이 아니다. 실제 당대를 살아가던 어린이들도 갖은 수난을 겪었다. 잡지 속 코너 '어린이방송국'에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물을 뜨러 가다 실족사한 어린이나 계속 굶는 것을 견디다 못해 지붕 추녀에 목을 맨 어린이, 일본인 집에 있는 빈 맥주병을 가져가다 걸려 구타당한 어린이 등 우울하고 불행한 이야기 또한 잡지에 많이 담겨 있다.

일제 문화통치 시절, 어린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어린이> 편집진들은 잡지를 통해 읽고 쓰는 능력, 지금 말로 '리터러시'를 가르치고자 했다. 같은 민족끼리의 의사소통 능력이 공동체 조직을 위한 첫째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어린이' 잡지에 담긴 어린이 수필 '14~15세면 무엇을 할까'. 자료=국립한글박물관.

<어린이>는 아이들이 직접 쓴 문학, 수필, 일기, 시 등을 잡지에 실으며 창작을 독려했다. 편집진들은 원고를 보낸 이들에게 '생각하는 그대로 쓰라' 등의 피드백을 주었고, 실제 원고가 실린 이들 중에서 문인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었다. <어린이> 11권 제2호에 실린 김리원 어린이의 시를 보고 편집진은 “퍽 순박한 노래”라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밝은 달> 김리원

밝은 달은

고요히

오막사리

집웅을

넘어갓답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갈닢은

바들바들

떨고 잇답니다.

이외에도 토론, 웅변대회를 열며 아이들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했다. <어린이>는 토론을 '꽃다운 논쟁'이라 표현하며 '사업을 성취하는 데는 지혜가 중요한가, 성실·근면이 중요한가' 등 진지한 토론의 장과 함께 '산이 좋은가 바다가 좋은가', '살아가는 데 손이 더 중요한가 발이 더 중요한가' 등 토론을 하나의 즐길거리로 만드려는 노력을 보였다. 당대 최고 인기 있었던 잡지였기에 어린이들의 참여는 열렬했다.

▲ '어린이' 잡지에서 볼 수 있는 당대 어린이들의 모습. 자료=국립한글박물관.

'한글'은 <어린이>가 가장 중요시한 주제 중 하나다. <어린이>는 당대 출판물과 다르게 기본적으로 국문체(한자 부기 혹은 순한글)을 지향했고 특히 동화나 동시 등 문예물은 순한글을 사용해 사실상 '한글잡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조선 자랑 특집호'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따로 다루고, '한글난'을 따로 둬 한글로 가득 채우는 등 한글 애정이 남달랐다. '어린이대운동회 말판', '세계발명말판', '금강껨(다이아몬드 게임) 말판' 등의 한글놀이 또한 자연스러운 학습 유도 방식이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미숙함의 상징이 된 어린이는 100년 전만 해도 어른들이 고달픈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 믿던 새 시대 변화의 상징적 주체었다. 1922년 막 만들어진 어린이날이 없어지는 걸 막기 위해 각종 검열에도 어린이날 특집호를 내고자 했던 <어린이> 편집진들의 마음을 창간 100주년을 맞은 지금 다시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일제강점기 시절, <어린이>가 이루고자 했던 '어린이 공동체'의 필요성은 그때 못지않게 지금 더욱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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