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블랙핑크 ‘성덕’설까지…유럽 한류의 메카 된 프랑스
(시사저널=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한국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출판물 기획 전문가인 신아무개 대표는 2주 전 프랑스를 방문하곤 깜짝 놀랐다. 출판 동향 업무 등을 위해 그동안 프랑스를 10여 차례 이상 다녀왔고, 최근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게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이었는데, 그때에 비해 한국 사람을 대하는 프랑스인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프랑스인들이 다소 인종차별이 심한 편이고 특히 중국·한국 같은 동양인에 대한 배타적 문화가 많았는데, 이번에 갔더니 내게 코리안이냐고 묻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한국말로 인사하더라. 한국 가사로 BTS·블랙핑크 노래도 부르고. 지금 프랑스 젊은이 사이에선 한국 화장품도 엄청 인기가 많은데, 아마도 드라마·영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 때문인 듯하다. 4년 만의 변화에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소프트 파워 강대국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그 선두에서 한국 대중문화, 한류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추세다. 유럽 또한 최근 한류 앓이 중이다. 특히 유럽 한류의 메카 프랑스에서는 한식, K팝, K무비와 드라마, K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가 프랑스에 더욱 확실히 자리매김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시선 역시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프랑스 넷플릭스 4월 톱10 랭킹엔 한국 영화 《길복순》이, 드라마 부문에는 《더글로리 시즌2》가 올라왔다. 2020년 팬데믹 이후 프랑스의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급증했고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한류 콘텐츠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1억 시청을 한 달 만에 넘긴 이후 한국 드라마는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고 《지옥》 《수리남》 《지금 우리의 학교는》 같은 작품 또한 톱10에 들며 한류가 더 이상 마이너 문화가 아님을 증명했다. 21세의 K팝 팬 쥘리는 "처음엔 자신이 K팝을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봐 드러내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더욱 공개적으로 이 문화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한국영화제 관객 90%가 프랑스인
한국 영화 또한 프랑스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이미 봉준호 감독 작품들은 프랑스에서는 믿고 보는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개봉한 《설국열차》가 670만 관객을 기록한 데 이어 2020년 오스카상 4개 부문을 수상한 《기생충》은 150만 관객을 달성했다. 《아가씨》와 《헤어질 결심》을 제작한 박찬욱 감독 또한 프랑스에서 인지도가 상당하다. 프랑스 유명 라디오 방송 RTL은 "한국 영화들이 할리우드 영화만큼 인지도가 높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올해 17회를 맞은 '파리한국영화제'에서는 개·폐막작 티켓이 매진되고 프랑스 관객이 참석 인원의 90%를 차지하는 등 매년 K무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프랑스 K팝 팬이 30만 명에서 50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K팝이 프랑스 젊은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K팝을 접하고 난 후 심리학 학사를 중퇴하고 한국으로 갈 경비를 벌기 시작한 한 여대생의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다. 2018년 BTS의 파리 공연 당시 16만2000장의 티켓이 2시간 만에 매진된 일은 프랑스에서 K팝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제는 파리 카페들에서 K팝이 흔하게 흘러나온다. 또한 파리 공공장소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K팝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여름에는 파리13구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도서관 외부의 거대 거울 앞이 K팝 연습 장소로 변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K팝 열풍이 프랑스 정치권까지 강타한 장면이 있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배우자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자선단체의 2023년 신년 기금모금 콘서트에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를 초대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마크롱 대통령이 블랙핑크 멤버들과 사진을 찍고 개인적 친분을 쌓는 사진들이 공개돼 마크롱 대통령 또한 K팝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로, 팬이 연예인을 직접 만나는 등의 상황에서 사용되는 신조어)설이 일기도 했다. 파리1대학 국제관계학 석사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이아무개씨는 해당 행사 이후 K팝에 관심이 없던 많은 학생이 블랙핑크와 한국 여자 아이돌 그룹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며 "이제는 K팝이 문화적으로 보수적이었던 프랑스 사람들까지도 사로잡는 듯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보고 듣는 것뿐만이 아니다. '맛'에서도 한류가 심상치 않다. 프랑스 배달전문 애플리케이션(앱) '델리베후'에 따르면 2019년부터 한식 주문이 대략 6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 파리에서 영업하는 한식당이 200개를 넘는다. 한식 인기를 두고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은 "치즈 같은 발효음식에 친숙한 프랑스인들이 한국 발효음식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 커져가는 관심만큼 한식 관련 축제도 매해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19 이후 지난해 처음 루브르박물관 지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회 K푸드 페어가 프랑스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가 하면,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불교문화 특집으로 주최하는 연등회와 사찰음식을 시식할 수 있는 '테이스트 코리아!' 행사 누적 참가자가 3개월 만에 5만 명을 돌파하는 등 프랑스 사람들의 한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K뷰티도 프랑스를 흔들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가 유럽연합(EU) 국가 중 한국 화장품 수입 1위국으로, EU의 한국 화장품 수입 점유율 35%를 차지하고 있다. 양질의 자국 화장품에 비해 한국 화장품의 다기능성 콘셉트(올인원)를 프랑스인들이 선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대표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은 한국 제품들의 영향을 받아 비비(BB)크림 등 제품을 출시하는가 하면, '크리스찬 디올'은 아모레퍼시픽과 기술력 교류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해 앞으로 증가할 다기능성 화장품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도 엿보이고 있다.
프랑스 학교 한국어반도 크게 증가
이렇듯 K컬처가 유행하면서 자연스레 한국어의 위상도 높아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프랑스 초·중·고교는 2018년 17곳에서 지난해 60곳으로 3.5배 증가했고, 학생 수도 631명에서 1800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도 292명에서 780명으로 확대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에서 한국어 관련 전공도 인기를 끌고 있다. 경쟁률이 30대 1까지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향해 한국어로 인사하는 프랑스인들을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프랑스에서의 한류 열풍이 정점이 아니라 진행 중이란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 한류의 메카로 자리매김했고, 한류는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책 《한국인》의 저자 프레데릭 오자르디아스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 한국 대중문화가 프랑스인들 외에도 세계인들에게 호응을 얻는 이유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리에서 한국 카페를 운영하는 사반나 트루옹은 한국 대중문화의 특징이자 강점을 "모든 곳이 연결된 완전히 개방된 회로이자 순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한국 브랜드 제품들, 한국 화장품이 보이고, K팝도 나온다"고 부연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한국 제품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문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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