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準핵무기’ 국산 괴물 미사일 현무-Ⅴ가 온다
최근 지방 한 국도에서 촬영된 사진 한 장이 군사 분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4월 25일 일반인이 지역 한 국도에서 촬영한 사진에 군용 위장 무늬로 도색된 트레일러가 담겼다. 미사일은 탑재되지 않았지만 기립 발사대 부분이 위장망으로 가려진 모습이었다. 분명 미사일 이동식 발사차량(TEL)이었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TEL 사진은 삭제된 상태다. 이 사진에 이목이 쏠린 것은 TEL의 바퀴 개수 때문이다.
사진 속 트레일러의 바퀴는 총 12개였다.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트럭까지 포함하면 TEL의 바퀴 수는 16~18개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식별된 그 어떤 미사일 발사차량보다 차체가 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무-Ⅴ 탑재용 추정되는 바퀴 수 16~18개 TEL
현재 한국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탄도미사일인 현무-ⅡC 발사차량은 바퀴 10개로 구성됐다. 이번에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TEL은 이보다 1.5배 이상 큰 거대한 미사일을 탑재할 신형 발사차량이라는 말이 된다. 이 차량에 탑재될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는 일명 '현무-Ⅴ'로 알려진 고체연료 방식의 대형 탄도미사일이다. 현무-Ⅴ는 사거리 300㎞급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 현무-Ⅱ가 등장한 이후 20여 년 만에 개발된 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이다.현무는 예부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북쪽을 지키는 상상 속 영수(靈獸)로 여겨졌다. 미국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미사일을 바탕으로 1986년 개발된 '한국형 탄도미사일'에 처음으로 현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한 위협에 대응하고자 개발된 미사일에 북방을 관장하는 현무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지금은 전량 퇴역한 현무-Ⅰ은 미국의 강력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개발됐기에 사거리와 위력 면에서 많은 제약이 있었다. 순수 독자 기술로 개발된 현무-Ⅱ부터 개량을 거듭하며 위력이 점차 배가됐다.
현재 실전 배치된 현무-Ⅱ 시리즈는 미국 에이태큼스(ATACMS)나 러시아 이스칸데르 등 동급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세계 최정상급 전술탄도미사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무-ⅡA는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한 미사일 중에선 최초로 전방에 전진 배치하지 않아도 평양을 타격할 수 있는 300㎞급 사거리를 지녔다. 탄두 중량 역시 1t으로 증가했다. 현무-ⅡB는 탄두 중량은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주요 전략 시설이 있는 평안북도와 자강도, 함경남도까지 타격할 수 있도록 사거리를 500㎞로 늘렸다. 2017년부터 실전 배치된 현무-ⅡC는 사거리를 800㎞까지 늘려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사거리·중량 족쇄 풀린 한국의 미사일 개발 행진
한국 군 당국은 현무 시리즈 개발 과정에서 기술 난도가 높은 고체연료 추진 방식을 고수했다. 고체연료 로켓은 액체연료 방식에 비해 추력 조절이 어렵다. 로켓 모터 개발도 액체연료 방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그럼에도 고체연료 로켓에는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군사적 이점이 있다. 바로 기습 발사 능력이다. 액체연료 로켓은 개발이 용이한 데다 추력도 우수해 고위력 장거리미사일에 적용하기 쉽다. 다만 산화제가 강산성이라서 발사 직전에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산화제를 일찌감치 주입하면 로켓 내부를 부식시켜 폭발 위험성이 커진다. 북한이 오랫동안 운용한 스커드 계열은 야외 발사장에서 미사일을 똑바로 세운 뒤 연료, 산화제를 주입하는 데 40분이나 걸린다. 걸프전 당시 많은 이라크군 스커드 미사일이 바로 이 과정에서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파괴됐다. 반면 고체연료 로켓은 발사 전 연료, 산화제를 따로 주입할 필요 없이 바로 쏠 수 있다. 기습 효과가 뛰어난 것이다.참여정부 때 현무-Ⅱ가 처음 등장했으나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라는 족쇄 탓에 오랫동안 비약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담판으로 사거리 제한을 800㎞로 연장하고,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이른바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방식을 인정받았다. 이 합의 덕분에 한국은 사거리 800㎞·탄두 중량 500㎏ 미사일 또는 사거리 300㎞·탄두 중량 2t 미사일 같은 고중량 고체연료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2017년, 2020년 두 차례 추가 개정으로 사거리 800㎞ 안에선 탄두 중량 제한이 없어졌고, 2021년에는 사거리·탄두 중량 제한 자체가 폐지됐다. 한국이 고체연료 방식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사일 족쇄'가 풀린 한국은 이른바 현무-Ⅳ 시리즈와 현무-Ⅴ로 알려진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현무-Ⅳ-1 모델은 800㎞급 사거리에 2.5t 탄두를 탑재해 북한 전역의 지하시설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수상함에서 발사할 수 있는 사거리 500㎞·탄두 중량 1t인 현무-Ⅳ-2 함대지탄도미사일, 현무-Ⅳ-4 잠대지탄도미사일이 잇달아 개발됐다. 현무-Ⅳ-1은 마하(음속) 10 이상 초고속으로 목표물을 직격한 뒤 24m 이상 두께의 강화콘크리트를 관통해 지하에서 폭발하도록 설계됐다. 한국군이 기존에 보유한 벙커버스터인 F-15K 탑재용 GBU-28(관통 능력 6m)의 4배에 달하는 엄청난 위력이다. 현무-Ⅳ-1에는 추력편향노즐이 적용돼 종말단계에서 자세 제어도 가능하다. 게다가 외피에 스텔스 도료를 발라 북한의 대공방어시스템으로 요격은커녕 탐지조차 어렵다.
현무-Ⅳ-4로 남포만 인근에서 평양 기습 가능
현무-Ⅳ-1에 비해 위력 및 사거리는 다소 줄었지만, 바다에서 발사할 수 있는 현무-Ⅳ-2와 현무-Ⅳ-4는 강력한 '게임 체인저'다. 현무-Ⅳ-1은 이미 위치가 노출된 육상 기지에서 발사되기 때문에 북한이 여러 수단으로 탐지할 수 있다. 반면 군함과 잠수함에서 쏘는 미사일은 언제, 어디서 발사돼 어디로 떨어질지 북한으로선 알아낼 방법이 없다. 특히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에 탑재되는 현무-Ⅳ-4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남포만 인근까지 접근해 평양을 기습 공격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치만 실시간 파악된다면 한국은 유사시 북한 최고지도부를 단 몇 분 만에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최신 탄도미사일 현무-Ⅴ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현무-Ⅳ처럼 다양한 플랫폼에서 발사할 수는 없지만, 공격 받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핵무기와 다름없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녔다. 이번에 발견된 TEL이 실제로 현무-Ⅴ를 탑재하는 플랫폼이라면 이 미사일은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간 조금씩 공개된 정보를 종합해보면 현무-Ⅴ는 그야말로 괴물과도 같은 성능을 지닌 미사일로 추정된다.
현무-Ⅴ의 사거리는 600㎞, 탄두 중량은 8~9t 정도로 알려졌다. 60m 두께 콘크리트를 뚫는다는 세계 최강 벙커버스터 폭탄 GBU-57보다는 가벼운 것으로 보인다. GBU-57은 최대 20㎞ 고도에서 자유 낙하 방식으로 목표물에 명중하는 반면, 현무-Ⅴ는 1000㎞ 고도까지 치솟은 뒤 마하 10 이상 속도로 표적에 내리꽂힌다. 탄두 자체의 파괴력도 크지만, 초고속 낙하를 통해 탄두에 가해지는 운동에너지로 인공지진을 일으켜 지하시설을 초토화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핵을 사용하지 않고도 핵무기 같은 위력을 내는 재래식 무기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재래식 미사일로 북핵 억제력 구현
한국군은 올해 현무-Ⅴ의 추가 시험발사를 통해 성능과 신뢰성을 최종 검증한 뒤, 내년 대량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24년 한국은 재래식 미사일 전력으로 북한 핵무기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바다에는 평양을 기습 타격할 수 있는 은밀성을 가진 현무-Ⅳ-4가, 육지에는 유사시 지하에 숨어든 북한 수뇌부를 가루로 만들 현무-Ⅴ가 전력화될 날이 머지않았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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