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홍보 공무원'...칠곡할매글꼴 발굴했다
에티오피아에 마스크 지원 캠페인, 적극 행정 최우수 공무원' 선정
당사자만 모른다. 자기 별명이 '스토커'라는 사실을 말이다. 경북 칠곡군청 기획감사실에서 근무하는 박종석(49) 주무관 이야기다. 박 주무관은 기자들을 쉬게 놔두질 않는다. 가끔 주말에도 전화를 걸어와 "좋은 기사 거리가 있다"고 유혹한다. 좋은 기사란 말이 거짓말이라면 기자들 사이에서 회피 1순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환영받는 스토커다. 대구·경북 지자체에서 만능 홍보맨으로 꼽히는 그는 칠곡이 타 지자체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데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
그의 손길 거치면 평범한 뉴스도 대형 이슈로 변신
그의 이슈 생산력은 남다르다. 방송국 피디처럼 기획하고 기자처럼 기사를 발굴한다. 그냥 스쳐지나갈 뉴스들이 그의 손을 거쳐 이슈로 탈바꿈한다. 그는 여느 공보실 직원답지 않게 행사 기획과 진행에도 직접 뛰어든다.
그의 첫 작품은 '엘리엇 중위'다. 엘리엇 중위를 알게 된 것은 2015년이었다. 엘리엇 중위의 자녀들이 어머니의 유해를 낙동강에 뿌렸다는 짤막한 기사를 접하고 이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녀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칠곡군 행사에 초청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자녀들이 흔쾌히 응해 칠곡군 호국보훈 행사에 걸음을 했고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
2021년에는 호국의다리 인근에 엘리엇 추모 공원이 생겼고, 곧 엘리엇 거리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박 주무관은 "자녀분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셔서 목표한 것 이상의 성과를 냈다"면서 "결과적으로 칠곡과 대한민국의 호국보훈 정신을 알리고 한미 동맹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마스크 지원 캠페인'으로 적극 행정 최우수 공무원 선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일 때는 에티오피아로 마스크를 보내는 캠페인을 벌였다. 지자체마다 코로나19 외에는 홍보거리가 거의 없을 즈음이었다. '아무리 코로나19 뉴스가 급선무라지만 알릴 건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와 그들의 후손을 떠올렸다. 코로나19와 호국보훈의 도시 칠곡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 캠페인은 코로나19로 지친 군민의 마음에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박 주무관은 2020년 칠곡군에서 '적극 행정 최우수 공무원' 상을 수상했다. 1회 수상자였다.
그가 스타로 만든 인물도 있다. 칠곡이 호국보훈의 도시를 천명하기는 했지만, 참전용사들도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고령화해서 행사가 대부분 '역사 이야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현재형으로 만들어야 보다 생동감 있게 호국보훈의 메시지를 전달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2018년 '천안함 챌린지 46+1' 를 구상했다. 박 주무관은 "천안함 생존자 연락처를 찾아내 전화를 드렸는데 그 첫 통화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약간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캠페인의 의미를 설명하고 용기를 내주십사 부탁을 드렸죠. 결국 마음을 열었습니다."
챌린지의 반향은 엄청났다.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해 같은 당 의원 대부분이 이 챌린지에 동참해 가슴에 천안함 배지를 달았고, 전국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 뒤로 천안함 생존자인 전준영 회장은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행사에도 빠짐없이 초청을 받고 있다.
구미에 거주하는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제2연평해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에서 한 손이 날아간 상태로 포탄 사격을 하는 병사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구미시에서 열리는 호국보훈 행사에는 초대받지 못했지만 칠곡에서 열리는 호국행사에는 참석했다.
2020년에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제2연평해전 권기형, 천안함 폭침 전준영, 목함지뢰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 등 한국을 대표하는 호국 영웅 8명을 칠곡에 초청했다. 6·25한국전쟁 관련 행사를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기획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단순한 기록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도 있었다. 칠곡에 있는 호국평화기념관의 ‘끝나지 않는 전쟁’ 코너가 그것이다. 원래는 사진을 걸어두었지만 보다 생생한 느낌을 전하기 위해 2022년에 유명 화가들을 섭외해 그림으로 표현했다. 목함지뢰와 석해균 선장이 누워 있는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 주무관의 섭외 리스트엔 기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예인 및 유명인도 적극 활용했다. 할매글꼴이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재환 성균관대 교수를 홍보대사로 섭외한 것도 박 주무관의 아이디어였다. 백혈병 소녀가 손흥민 선수의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골 세러머니로 '럭키칠곡' 포즈를 요청하면서 이 포즈가 소아암 어린이 응원에 사용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섭외한 유명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가수 소향을 꼽았다. “에티오피아에 마스크를 보내는 캠페인을 도와주셨습니다. 너무 흔쾌히 동참해주시고 또 열심히 해주셔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획발굴 현장답사 보도자료작성 사진촬영에 동영상 제작까지
그의 적극성은 기획과 홍보에 그치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뛰어들 때도 있다. 백문이불여일견. 백 편의 기사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는 생각에서 카메라를 잡았다. 발로 뛰며 자료 사진을 촬영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수제 마스크를 만드는 여성 이장과 쪽잠 자는 보건소 공무원, 음복 도시락을 찍었고, 두 발로 일어선 참전용사, 경주 황리단길에 내걸린 칠곡할매글꼴 역시 그의 작품이다.
특히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와 자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조선일보' 1면에 실리는 동시에 포털 검색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영상 제작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등장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기원 동영상은 유튜브 조회수가 10만을 넘겼고, 6,037명의 6.25참전용사를 기리고 유가족을 돕는데 쓸 마스크를 기부하자는 운동으로 '6037 캠페인을 아시나요?'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다양한 장르의 행사와 홍보를 기획했으나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부분은 보훈이다. 이유는 박 주무관이 전직 해병 정훈장교 출신인 까닭이다. 그는 "군복은 벗었지만 호국에 대한 신념과 자세만큼은 현역 군인 못잖다"면서 "가장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욕심이 많다 보니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다. 지난달에는 초과근무가 100시간이 넘어섰다. 그는 "제대로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군청에 앉아서는 '홍보 거리'를 발굴할 수 없어요. 진짜 기사는 군민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해요. 발로 뛰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특종'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박 주무관은 "아직도 '칠곡' 하면 '대구 칠곡'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면서 "경북 칠곡을 널리 알리고 좋은 소식을 퍼 나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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