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회장이 ‘혼외자 생모’로부터 288억 뜯겼다고 주장하는 사연 들어보니…
A 씨 "10년간 고통, 일상생활 어려워"
최근 '혼외자 논란'에 휩싸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측 변호사는 5월 10일 기자와 만나 두 딸의 생모 A 씨를 고소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 회장과 사이에서 딸 2명을 낳았다는 여성 A 씨는 5월 2일 공개된 방송 인터뷰에서 "10년간 겪은 고통으로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 정도다" "아이들이 겪은 상처와 고통에 대해 생각만 해도 숨을 쉴 수 없다"고 토로했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A 씨가 내놓은 주장은 크게 두 갈래다. 자신이 서 회장을 2001년 7월무렵 처음 만난 후 두 아이를 낳는 등 '사실혼' 관계였고, 서 회장이 딸들을 제대로 만나지 않는 등 아버지로서 역할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 회장 측 변호사는 기자에게 "사실혼 운운하는 A 씨의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A 씨는 두 딸을 볼모로 수년에 걸친 공갈, 협박으로 서 회장 측으로부터 수백억 원을 뜯어냈다"고 말했다. 다음은 A 씨 주장에 대한 서 회장 측 변호사의 반론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서 회장이 A 씨 가족에게 사위 노릇을 하고, 해외 결혼식을 거론하는 등 사실혼 관계였다는 게 사실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였다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2001년 처음 알게 된 이후 서 회장과 A 씨의 만남은 한 달 수차례 수준이었고 점차 그 빈도도 줄어든 것으로 안다. 2012년쯤 이후부터는 직접 대면하는 일도 사실상 없었다. 서 회장이 A 씨를 만나더라도 거처에서 묵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사위 노릇' 운운하는 대목의 경우 A 씨 요구로 가족 행사에 몇 차례 참석한 것에 불과하다. 그 장면을 사진 촬영한 후 협박에 이용했다. 서 회장이 해외 결혼식을 제안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사실무근으로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
"서 회장, A 씨에게 돈 보내려 대출까지"
"두 딸을 외면했다는 것은 완전히 허위로, 서 회장이 특히 억울해하는 대목이다. 우선 서 회장이 딸들을 만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A 씨가 수년에 걸쳐 온오프라인을 통한 협박, 공갈로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고 받아가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A 씨는 딸들을 아버지와 만나게 하려는 시도조차 안 했다."
2021년 A 씨가 친생자 인지 청구소송을 하자 그제야 서 회장이 두 딸의 존재를 인정한 것 아닌가.
"A 씨가 친생자 인지 청구소송을 하기 전부터 서 회장이 먼저 딸들을 자기 호적에 올리겠다고 여러 차례 제안했다. 그렇기에 소송도 조정을 통해 단시간에 끝난 것이다. A 씨 측의 협박이 점점 심해졌고, 딸들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서 회장 측은 2019년 7월 A 씨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함께 내용증명을 보내 '두 딸을 입적시키고 직접 양육하겠으니 필요한 서류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당시 A 씨는 중언부언할 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았다. A 씨 측은 지난해 10월 면접교섭 소장을 접수한 후에도 서 회장 측에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런데 이때도 딸들을 만나달라는 말은 한 차례도 없이, 하나같이 돈을 더 내놓으라는 취지의 강요뿐이었다. 자식들을 앞세워 서 회장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서 회장 측은 혼외자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간 충분히 양육비를 받은 A 씨의 지속적 협박으로 수백억 원을 갈취당했다며 5월 3일 A 씨를 공갈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다만 직접 고소·고발인으로 이름을 올린 이는 서 회장 측근이다. 이 측근은 5월 10일 기자와 만나 "과거 A 씨가 서 회장과 함께 나에게도 공공연히 협박을 가해 피해를 입는 등 A 씨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고소·고발인으로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 회장이 내연관계를 맺은 것은 잘못이지만, 두 딸이 상처받을까 우려해 유전자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서 회장이 A 씨에게 거액의 돈을 보내려고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 회장 측은 A 씨가 "서 회장과의 관계와 혼외자 존재를 알리겠다"고 협박해 2018~2023년 약 143억 원을 갈취했다고 주장한다. 서 회장 측 변호사는 "143억 원은 현재까지 갈취당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확보해 계산한 액수"라면서 "2012~2018년 지급한 약 75억 원, 2000년대 초반과 2010년대 들어 매입해준 아파트 2채를 팔아 A 씨가 얻은 70억 원 등을 합치면 서 회장이 A 씨에게 준 재산은 약 288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올해 1~3월 A 씨가 수십억 원을 받고도 딸 교육비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추가로 요구하거나, 과거 자신이 매각한 부동산을 다시 매입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게 서 회장 측 주장이다.
서 회장 측은 A 씨가 협박으로 수백억 원을 받아낸 증거자료를 모두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 회장 측 변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여러 개 보여줬다. 한데 모아 쌓아올리니 30㎝ 가까이 되는 두께였다. 그는 "A 씨가 서 회장 측에 약 7년에 걸쳐 보낸 협박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출력한 것인데, 대부분 서 회장에 대한 욕설, 비방과 함께 금전을 요구하는 내용"이라면서 "그동안 A 씨는 '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겠다' '내 변호사와 상의해 기자들을 대동해 회사로 찾아가겠다'는 식으로 서 회장을 협박한 후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한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이를 반복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현수막 걸 예정이었으나…"
서 회장 측은 A 씨가 B 씨라는 남성과 수년에 걸쳐 내연관계였다고도 의심한다. 두 사람이 서 회장으로부터 아이들 생활비 명목으로 100억 원대 돈을 받아내고, 서 회장 사후 상속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이다. A 씨는 2013년 서 회장을 만나 향후 자신에게 1000억 원을 지급한다는 요지의 각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면서 동행한 B 씨를 "자신을 도와주는 고마운 교수님"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후 서 회장 측은 A 씨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B 씨에게 양육비 명목으로 수억 원을 전달했다. 그러던 B 씨가 2016년 서 회장을 찾아와 "자신이 A 씨와 사실상 부부 같은 사이로 지냈다"고 실토했다는 게 서 회장 측 주장이다. A 씨 측은 B 씨를 지난해 강간 등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5월 4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A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 관계자와 법률대리인을 통해 취재를 요청했다. 회사 측 관계자로부터 현재(5월 11일)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으며, 법률대리인 측도 "의뢰인과 협의한 결과 당장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웃들 "동 대표 A 씨, 인근에 집 5채"
기자는 5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 있는 A 씨 소유의 회사 사무실을 찾았다. 주택가 4층 높이 '빌라텔' 건물에 입주한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사무실은 법인 등기부상 다른 두 업체의 소재지로 나와 있다. 각각 A 씨가 현재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ㄱ업체와 2019년 대표로 이름을 올렸으나 2021년 사임한 ㄴ업체다. 인근 주민들에게 A 씨를 아느냐고 묻자 잘 모른다고 했다. ㄱ사 감사이자 A 씨에 이어 ㄴ사 대표를 맡은 한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대표 A 씨가 서정진 회장의 애들 엄마라서 셀트리온그룹 자회사가 됐다"며 "A 대표도 (셀트리온그룹으로의) 자회사 편입을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A 씨 근황과 서 회장 측과의 갈등에 대해 묻자 답변을 피했다.
ㄱ사 법인 등기부에 공개된 A 씨의 자택 주소는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같은 날 오후 기자는 해당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A 씨가 2014년 매입해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는 집이었다. 아파트 건물 외부로 노출된 현관문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멀리서 창문을 통해 본 집 안 내부는 정리가 안 된 채 어지러웠고, 현관문 근처에 놓인 반찬통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A 씨에 대해 묻자 지나가던 같은 동 주민은 "얼마 전 경기 양평 쪽으로 집을 사서 이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웃들의 평에 따르면 A 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동 대표를 맡고 평소 민원을 많이 제기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또 다른 주민은 A 씨에 대해 "모두 자기 명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지 아파트 4채와 근처에 단독주택 1채도 갖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가 A 씨에게 집이 왜 이리 많으냐고 묻자 "투자 목적은 아니다"라면서 멋쩍은 듯이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A 씨에 대해 "말도 잘하고, 야무진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동네에선 A 씨가 강남에도 집이 있어서 용인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한다는 풍문도 있었다. 이웃들이 A 씨가 기거한다고 지목한 인근 단독주택도 찾아가보니 마찬가지로 인기척은 없었고 상당 기간 방치된 분위기였다. 인근 주민은 A 씨와 그의 딸, 모친으로 보이는 이를 종종 봤으나 최근 수개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웃들이 A 씨의 것으로 지목한 부동산의 등기부를 확인한 결과 실제 소유자는 그의 가족이나 가족이 대표인 것으로 추정되는 법인이었다. 일부 부동산은 지방자치단체에 압류됐거나, 압류를 해제한 이력이 눈에 띄었다.
두 딸, 향후 6000억 원 지분 받을 가능성도
일각에선 혼외자 논란으로 불거진 오너 리스크가 향후 셀트리온 지배구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두 딸이 호적에 오르면서 재산 상속을 주장할 권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그룹 지주사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97.19%를 보유하고 있다. 상속법상 배우자 및 자녀 상속 비율(1.5 대 1)을 대입하면, 서 회장 부인(26.51%)과 아들인 서진석 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 이사회 의장, 서준석 셀트리온헬스케어 이사회 의장과 함께 최근 입적한 두 딸이 각각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17.67%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두 딸이 향후 그룹 지분 35.34%를 확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서 회장이 지분 상속을 거부해도 두 딸은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통해 법정 상속분 절반을 받을 수 있다. 서 회장이 가진 주식의 가치가 약 7조6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두 딸이 각각 약 6000억 원 지분을 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가사 및 상속 사건을 다수 수임한 한 변호사는 "한 세대 전과 달리 최근에는 혼외자 인지에 따른 재산 분쟁이 재계는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드문 일"이라면서 "혼외자 이슈가 있더라도 대부분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기 때문에 이번 서 회장과 A 씨 사안처럼 갈등이 공공연히 표출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설령 두 딸이 그룹 지분 상당 부분을 취득하더라도, 서 회장 부인과 아들들 지분을 합친 몫이 더 커서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듯하다"고 덧붙였다.서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혼외자 이슈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나섰다. 그는 5월 3일 셀트리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주주 여러분에게 큰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면서 "최근 언론에 알려진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닐지라도 과거의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으로 여러분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실망을 드렸다"고 밝혔다. 오너 리스크에도 셀트리온 주가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서 회장의 혼외자 논란이 알려진 다음 날인 5월 3일 셀트리온 주가는 15만9000원으로 전날보다 0.8% 내렸다. 그러나 이튿날인 5월 4일 주가는 16만3000원으로 전날 대비 2.5% 상승했다. 견조한 실적 발표에 주가는 다시 올랐다. 5월 8일 셀트리온은 1분기 연결기준 매출 5975억 원, 영업이익 1823억 원을 기록했다고 잠정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4%, 41.1% 증가한 실적이다. 이튿날 주가는 17만1800원으로 전날보다 5.7% 올랐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용인=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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