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시끌 '인어공주'...'블랙 워싱' 논란, 작품으로 잠재울까 [N초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캐스팅 발표 순간부터 계속해 일부 관객들의 불만 섞인 반응을 얻어야 했던 '인어공주'(감독 롭 마샬)가 작품의 매력으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까.
국내에서 오는 24일 개봉 예정인 '인어공주'는 늘 바다 너머의 세상을 꿈꾸던 모험심 가득한 인어공주 에리얼이 조난당한 에릭 왕자를 구해준 후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 금지된 인간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며 겪는 모험을 그렸다. 1989년 나온 동명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다.
실사판 '인어공주'는 2019년 주인공 에리얼 역할로 흑인 가수인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 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약 4년간 꾸준히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돼왔다. 문제가 된 것은 싱크로율이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 된 애니메이션 버전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의 외모는 붉은 머리를 가진 백인으로 묘사됐는데, 까만 피부색을 가진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한 것을 마치 추억에 대한 훼손처럼 받아들이는 일부 반응들이 있었다.
최근 할리우드 업계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는 이른바 '화이트 워싱'이라 부르는 풍토로 인해 많은 지탄을 받아왔다. 화이트 워싱은 원작이나 애초의 설정과 달리 유색인종 캐릭터를 백인 캐릭터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2016)에서 티베트인인 에이션트원 역을 백인인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것이 가장 최근까지도 이뤄졌던 화이트 워싱의 대표적인 예다.
할리우드 업계 내에서 인종차별은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이것에 대한 비판도 계속돼 왔지만 쉽사리 바뀌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9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흑인이나 아시아인 남녀주연상 수상자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인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런 중에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미국의 거물급 미디어 회사들이 자신들의 콘텐츠에서 인종적인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넷플릭스에서는 19세기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 '브리저튼'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을 소설 원작과 달리 흑인으로 설정해 화제가 됐다. 지난달 28일 디즈니+에서 공개된 '피터팬&웬디'에서는 피터팬의 요정 친구 팅커벨의 캐릭터를 흑인 배우인 햐라 샤히디가 맡아 눈길을 끌었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지난 10일(현지시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가 '블랙워싱'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배역을 흑인 혼혈 배우인 아델 제임스가 맡았는데, 이를 두고 이집트 관광유물부에서 성명을 내고 "(클레오파트라는) 밝은 피부의 그리스인적인 용모를 갖고 있었다"며 반발한 것. 더불어 저명한 이집트학 학자 자히 하와스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해)많은 것들이 있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 중 하나는 그는 흑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라면서 '흑인 클레오파트라'를 겨냥하기도 했다.
'화이트 워싱'과 '블랙 워싱' 관련 논란은 인종 차별과 다양성의 문제가 여전히 할리우드 영화계의 '핫 이슈'임을 방증하는 화두들이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미국에서 프리미어 시사회로 먼저 공개된 실사판 '인어공주'는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할리 베일리에 대한 호평이 많은 편이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들은 프리미어 시사회 직후 "할리 베일리는 에리얼 그 자체" "할리 베일리는 새로운 버전을 봐야하는 이유" "할리 베일리는 마법 같다" "할리 베일리는 엄청난 감정을 에리얼에 부여했고 그것을 보는 동안 나는 오싹함을 느꼈다" 등의 평가를 내렸다. 인종 문제를 떠나 배역을 소화한 연기자로서 할리 베일리는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인어공주'는 국내에서는 오는 18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먼저 공개된 후, 24일에 개봉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인 만큼, 실사 영화에 대한 반감을 가진 예비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과연 이 영화가 '블랙워싱'이라는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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