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미국으로…한국의 최대 수출국 20년 만에 바뀐다 [머니인사이트]
장사꾼에게 ‘다다익선’이란 더없이 좋은 상황을 뜻하지만 국제 무역의 세계에서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국가 간의 경쟁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득이 있으면 실이 존재한다. 평온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는 한국 기업과 시장에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다. 금융 위기 이후 10년간의 기업 실적, 투자의 정체기로 코스피의 장기 박스권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한국의 최대 고객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4년 중국에서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 이제 다시 미국으로 바뀔 조짐이다. 3월 수출액 기준으로 미국은 전체의 17.8%를 차지했고 중국은 18.9%로 1%포인트 수준의 격차다. 작년 3월만 해도 미국은 15.1%, 중국은 24.5%에 달했다. 변화는 시장에 긴장감과 구조의 변화를 만든다. 새로운 수요처가 만들어지면서 기업도 새롭게 적응해 가기 때문이다.
공급망 혼란 가속화
2004년 전후 한국의 최대 수출처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때는 중국 시장 자체의 고성장이 핵심이었다. 말 그대로 예전에 없던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 셈이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미국발 수출의 절대 금액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중국발 수출액의 감소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요 감소에 더해 중국발 수출의 33.4%가 ‘반도체’이니 3분의 1 이상은 반도체 업황 악화의 영향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해 보이는 것은 이런 추세(중국 내 수요 감소+미국의 반도체 견제 구도)라면 중국발 수출 비율 하락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주요국 수출액 변화를 보면 ‘중국 기여도 감소 속 미국과 아세안 그리고 유럽발 수출의 레벨 업’으로 요약된다. 지난 20년간 한국 기업의 공급망에 변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도주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요인은 ‘투자(capex)’였다. 그 투자의 동인은 공급망과 수요처 변화에서 비롯된다. 구조적인 수요 변화라는 판단이 서게 되면 기업은 투자에 나서기 때문이다. 공급망(수요처) 변화→기업 투자 본격화→수출 및 기업 실적 레벨 업으로 연결되는 것이 코스피의 선순환 공식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작년부터 이어져 온 2차전지 관련 산업에 대한 관심은 당연했던 결과다. 과열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강화되기 시작한 2004년부터 코스피의 투자는 이전 연간 40조원의 투자 수준에서 50조~60조원 규모의 투자로 레벨 업 됐고 코스피 기업 이익도 이와 동행했다. 반대로 2012년 이후 2016년까지는 투자 정체기이자 기업 실적 부진기였다. 수요가 정체되니 투자할 유인이 없고 기업 실적 성장이 없으니 주가는 박스권에 갇혔다.
공급망의 변화를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체됐던 투자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멘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특정국에 편향된 투자를 위험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의 바람과 달리 공급망 변화의 역사는 항상 파괴적이고 투자 쏠림이 반복됐다. 과거 중국의 고성장기(중국발 수출 급증)에는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가 주를 이뤘고 지금은 미국발 수출에 관련된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기업의 투자란 자의일 수도, 타의일 수도 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이윤 보전 및 극대화를 위해 ‘선택’해 왔다는 점이다.
공급망 혼란은 유독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큰 그림에서 보면 글로벌 무역의 판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소위 블록화·분절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철저히 중국에 대한 수입 비율을 한국·대만·아세안 지역 중심으로 대체해 나가고 있고 중국은 유럽보다 남미와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을 빠르게 늘려 나가고 있다. 러시아 역시 유럽 대신 중국으로 무게 추가 넘어가는 듯하다. 무역에서 미국이 탈중국이라면 중국·러시아·남미는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엮여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별 공급망 기상도
이런 맥락에서 과연 한국은 ‘중간자’적인 무역의 스탠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미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어떤 국가든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그 속에서 최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해야 한다.
5월 19~21일 예정된 G7 정상 회담은 또 다른 마찰의 변곡점이 될까.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인 수출 제재 여부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과거 냉전 시대에 소련에 취한 방식이 재연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본다. 당시 소련에 대한 미국의 고립 조치로 국내총생산(GDP) 성장에는 제한이 걸렸지만 장기간 대치 국면이 유지됐고 오히려 소련 붕괴에 트리거 역할을 한 것은 ‘유가 급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책 이슈를 예단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냉전 시대의 고립된 소련과는 다른 무역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 중국과 남미와 같은 경제 블록화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공급망 충격 이벤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블록화 장기화의 과정 중 하나일 듯하다.
장기적인 투자 전략에서 미국 공급망 비율 확대(long)·중국 공급망 비율 축소(short)를 제시한다.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완성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의 미국 매출 의존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 반도체는 중간재의 특성 때문에 중국 비율이 높지만 아세안 쪽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해당되는 무선 통신 기기는 오히려 중국 의존도가 높아 지고 있어 관련 매출은 중국 내수 경기의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에 기반한 투자 전략의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현재는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을 1순위로, 2순위는 반도체 및 정보기술(IT)을 주력 포트폴리오로 생각한다. 2차전지 관련 기업은 과열 해소 후 선별적인 접근을 권한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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