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탈북민들의 남한 농촌 정착기
◀ 김필국 앵커 ▶
농촌에 가서 농사 지으며 인생 2막을 시작하겠다는 귀농의 꿈, 꾸시는 분들 많죠?
남한에 내려와서 이런 꿈을 펼치고 있는 탈북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이런 탈북민들이 도움을 주고받던 남한 농민들과 함께 그동안 직접 키우고 만들어낸 농산품을 가지고 소비자들을 만났다는데요.
그 현장을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충북 음성에 있는 한 밭에서 마늘종을 뽑고 최근에 심은 대파 모종을 살뜰히 살피고 있는 중년의 여성들.
"야~ 잘 나왔다“ "진짜 예쁘게 잘 나왔다~" "다 살았어 다 살았어, 흙이 좋은가?"
탈북후 도시에서 생활하다 이곳에 정착하며 농사를 시작한 탈북 여성들입니다.
"사투리 다 나와~ "일 없습니다"" "여기(남한)에선 일이 없을 때나 "일 없습니다" 하는데" ""괜찮아요" 이렇게 말하다 조금 있으면 "일 없습니다""
[이경주/탈북 농민] "북한에서는 오늘 점심 먹었다면 저녁 끼를 계속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일단 내가 움직이면 내 발자국을 뗀다면 일단 돈을 벌게 되고 그리고 여기 시골에 와보니까 주민들이 인심이 너무 좋아요."
이렇게 10여명이 한 동네에 모여 살며 품앗이처럼 서로 일손을 돕고 농사정보도 공유하고 있는데요.
전국의 이런 탈북 농민들은 통일에 관심이 많은 남한 농민들과 함께 4년 전, 서로의 상생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단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유옥이/하나여성회 대표(탈북민)] "사실 탈북민들은 농업에 가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어요. 배고파서 왔잖아요. 농촌에서 배불리 먹고 살고 싶은 생각은 있으나 농촌에 가기가 굉장히 두려운거에요. 학연 지연 아무도 없잖아요. 우리가 따지고 보면 이방인인 거에요. 또 정작 생산을 해 놓았어도 판로를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막연하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래선 안되겠다. 농촌에 우리 탈북민들이 귀농 귀촌을 해서 좀 더 커가는 롤 모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누가 키우냐? 우리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스스로 커 가자."
최근엔 대형마트에서 직접 소비자를 만나는 시도도 처음으로 해봤는데요.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남북한 출신 농민들이 함께 처음으로 이곳에서 특별한 장터를 연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직접 심고 재배한 작물들도 판매한다는데요. 그 특별한 매장을 한번 찾아가보겠습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아코디언 노래가락에 맟춘 춤사위로 시선을 사로잡던 마트 내의 행사장.
[지나정/아코디언 연주자(탈북민)] "북에서 온 친구들, 그리고 여기 남한의 분들도 함께 너무 중요한 행사를 한다고 하니까 다 우리가 제대로 대한민국에 정착해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또 그들을 대표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왔어요."
충북 음성 밭에서 막 뽑아온 마늘종이 우선 보였고요.
울산 앞바다에서 잡아온 가자미.
[이영애/울산광역시(탈북민)] "배에서 신랑이 잡아오면 그걸 제가 직접 손질해 가지고 반건조까지 해 가지고 진공포장해서 다 이렇게 나가는 거에요."
전남 여수에서 직접 기른 모싯잎을 넣어 빗어낸 송편.
[박은숙/전남 여수(탈북민)] "(북한에서) 송편을 해 먹는다면 좀 잘 사는 집에서 해 먹는다 그런 정도. 그 그리움으로 해 가지고 여기에 쉽게 도전했던 것 같아요."
광주에서 쌀과 밀로 만든 추억의 과자.
[김인옥/광주광역시(탈북민)] "이거는 명절이나 김일성 김정일 생일때 선물봉투에 담아놓은 걸 많이 먹었지 평소에는 좀 먹기 어려웠거든요. 남한은 식자재가 흔하고 풍부하다보니까 평상시에도 내가 먹을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더라고요."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탈북 농민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통일농업을 꿈꾸는 남한 출신 농민들도 가세했습니다.
전북 익산에서 탈북민들을 고용해 멜론농장을 운영한다는 20대 청년.
[박규태/전북 익산(멜론농장 운영)] "남한 사람들도 빨리빨리인데 북한 분들이 더 빨리빨리 하시는 거에요. 빨리빨리 해서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학습을 해버리니까 엄청 빨리 배우시더라고요 스폰지처럼. 그리고 엄청 우호적이고 밝은 에너지다보니까 농사란 게 힘들지 않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30년 넘게 양계농장을 운영중인 베테랑 농민.
[박귀녀/강원도 원주(양계농장 운영)] "이 분들이 생각보다 무척 생활력이 강하세요. 진짜 배울 점이 많아요. 만들어 갖고 오신거 보면 너무 잘 만들어 갖고 오셨어요."
특히 농산물 가공업은 귀농 탈북민들에겐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고광자/하나여성회 정책위원장] "북에서 오신 분들은 가공을 모르세요. 1차 농산물만 해요. 그래서 감도 가공해서 먹는다는 걸 상상을 못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젠 가공에 대해서 눈을 뜨신거죠."
[김민정/강원도 횡성(인삼 가공업)] "지금 이렇게 보면 가공제품도 하나같이 뛰어나잖아요. 그래서 서로가 멘토 멘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본 탈북 농업인들.
[박진석/농협 성남유통센터 사장]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굉장히 생활력도 강하시고 농사에 관련해 의욕적인 것도 많더라고요. 단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잘 몰라서..이번에 해보니까 그런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되고 식품안전은 어떻게 해야 되고 상품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이번에 많이 배웠죠."
이들 곁에선 각지에서 올라온 남한의 농민들이 함께 했고, 남북의 농민들은 농업으로 남북을 잇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오늘도 한반도의 논밭을 힘차게 일구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483195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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