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받쳐주는 베이시스트의 일성 “기본에 충실하라”

정혁준 2023. 5. 13. 09: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인터뷰][한겨레S] 인터뷰
이태윤·최희철
조용필·송골매와 함께한 이태윤
박효신 콘서트 연주자 최희철
“물구나무서기로 오래갈 수 없어
뚜벅뚜벅 걷는 기본기 우선”
송골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전설의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그 제자 최희철과 함께 8일 오후 서울 청담동 바이브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지난해 11~12월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네차례 열린 콘서트 ‘2022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가왕’ 조용필이 4년 만에 여는 공연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은 오랜 ‘친구’와 ‘꿈’같은 ‘여행을 떠나듯’ 열기를 발산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추석 연휴 같은 곳에서 열린 송골매 콘서트 ‘열망’은 송골매의 두 축인 배철수와 구창모가 38년 만에 함께한 무대였다. ‘38년 만에 마주친’ 송골매 모습에 관객은 ‘마음을 빼앗겨버린’ 듯 보였다.

화제를 모았던 이들 콘서트 자리에 선 사람이 있다. 베이스기타를 친 이태윤이다. 그는 13일 서울, 27일 대구에서 열리는 ‘2023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콘서트에서도 베이스를 든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전설의 베이시스트 이태윤과 그의 제자 최희철을 만났다.

“조용필은 ‘가왕’ 아닌 ‘연습왕’”

이태윤은 13일 콘서트 연습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매일 다섯시간 연습해요. 저는 허리가 아파 가끔 앉아 있기도 하는데, 용필이 형은 줄곧 서서 연습해요. 용필이 형이 40대일 때 처음 봤어요. 근데 50대, 60대, 70대로 나이가 들수록 연습량이 더 많아졌어요. 용필이 형은 ‘가왕’에 앞서 ‘연습왕’이에요.” 그는 또 “2시간30분의 콘서트를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연습밖에 없다”는 게 가왕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선 어떤 걸 보여줄지 궁금했다. “지난달 26일 발표한 신곡 ‘필링 오브 유’와 ‘라’를 선보이죠. ‘필링 오브 유’는 귀를 사로잡는 가사와 멜로디가 특징이에요. ‘라’는 중독적이고 감각적인 노래죠. 특히 이번엔 지난해 공연에서 못 들려드린 용필이 형의 주옥같은 노래를 선사할 예정입니다. 대표적인 노래가 ‘돌아와요 부산항에’죠.”

‘전설의 베이시스트’로 불리는 이태윤은 기타리스트 김태원과 함께 1985년 밴드 디엔드(부활의 전신)를 결성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이어 3년 뒤 송골매에 합류했다가 그룹이 해체되자 1993년부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이태윤과 최희철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최희철의 기억이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갖고 있던 베이스에 문제가 생겨 낙원상가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국에서 베이스 좀 치려면 이태윤에게 개인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악기점 사장님의 말을 듣고 사장님 소개로 연을 맺게 됐죠.”

베이스는 클래식에서 주로 쓰이는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를 작게 만든 악기다. 콘트라베이스처럼 저음의 음색을 갖고 있다. 대중음악에서 자주 쓰이는 기타처럼 도드라지지 않아 ‘아싸’(아웃사이더)로 불리기도 한다. 비틀스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폴 매카트니는 “베이시스트를 하고 싶다는 사람은 우리 중에선 없었죠. 우리가 생각하는 베이시스트란 무대 제일 뒤에서 연주하는 뚱뚱한 녀석이었죠”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떨까? “매카트니가 정확하게 말한 거죠. 저는 중학교 때 밴드부에 가입했는데 그땐 드럼을 쳤죠. 당시 베이스를 맡은 친구가 ‘도저히 못 하겠다’며 자기와 바꾸자는 거예요. 밴드를 깨지 않으려고 바꿔준 뒤 지금까지 베이스를 치고 있네요.”(이태윤) “저도 같아요. 저 역시 밴드를 시작할 때 기타를 쳤는데, 저보다 기타를 잘 치던 친구가 기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베이스를 잡을 수밖에 없었죠.”(최희철)

기타리스트에 견줘 주목받지 못하는 베이시스트의 마음은 어떨까? “기타리스트는 가수와 닮았죠. 일단은 나대는 편이죠.(웃음)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죠. 베이시스트는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역할이죠. 베이스를 선택했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하면 안 돼요.”(이태윤) “베이시스트는 엄마 같은 존재라고 봐요. 엄마는 가족에게 대접받으려고 밥을 차려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베이시스트 역할을 하는 거죠.”(최희철)

송골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전설의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8일 오후 서울 청담동 바이브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보여주기식 개인기 안돼요”

이태윤이 베이시스트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송골매 멤버로 합류하면서부터다. “부활에서 활동하다 음악적으로 맞지 않아 탈퇴한 뒤 혼자 음악을 하고 있을 때였죠. 그때 송골매가 베이스와 드럼을 보강해 새롭게 정비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아는 형이 오디션 한번 보라고 했어요. 배철수 형님 앞에서 연주했어요. 연주를 듣고 형님이 ‘태윤아, 앞으로 형들하고 멋있게 해보자’고 하면서 멤버로 활동하게 됐죠.”

현재 이태윤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30여년 밴드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깨지기 쉬운 밴드에서 이렇게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1년 후배인 가수 이승철이 운영하던 밴드의 주축 멤버들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옮기게 됐어요. 당시가 1993년이었는데 저 역시 그때 합류했죠. 함께한 멤버들은 용필이 형님과 10년 정도 나이 차가 있어요. 중·고등학교 때 조용필을 보고 자란 멤버들, 이른바 ‘조용필 키드’죠. 아무래도 그런 팬심이 끈끈한 결속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게다가 용필이 형은 나이가 들수록 세련되고 트렌디한 노래를 부르니 함께할 수밖에 없죠.”

최희철은 1999년 10월 한국 4대 발라드 보컬리스트 ‘김나박이’(김범수·나얼·박효신·이수) 중 한 사람인 박효신의 데뷔 앨범 <해줄 수 없는 일>에서 베이스 반주자로 이름을 알렸고 박효신 콘서트에서 라이브 연주자로도 참여했다. “어렸을 때 베이스를 친다고 하면 가족은 ‘굶어 죽을 거’라며 걱정했어요. 저 역시 음악을 계속할지 자신이 없었죠. 하지만 박효신과 라이브를 하면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를 알게 됐죠. ‘이게 내 길이다’ 하고 결심했어요.”

그 뒤 최희철은 <맘마미아> 등 뮤지컬 공연에서도 많은 연주를 했다. 뮤지컬 연주와 콘서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클래식과 대중음악 차이 같아요. 클래식은 악보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죠. 악보를 연주자 맘대로 해석하면 관객은 혼란스럽잖아요. 하지만 대중음악은 연주자 개성이 묻어나는 변주를 자주 하죠. 뮤지컬은 많은 배우와 함께하는 공연이어서 연주자 개성보다는 클래식의 악보 공식에 더 충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꿈나무 뮤지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보여주기식 개인기에 현혹되지 마세요. 다양한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되 기본에 충실하세요.”(이태윤) “물구나무서기로 걷는 게 신기하고 멋있지만 오래갈 수는 없죠. 화려한 개인기보다 뚜벅뚜벅 기본기에 충실한 사람이 되세요.”(최희철)

두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이름도 ‘베이직 베이스 티브이(TV)’다. “2012년에 개인 채널로 개설했어요. 그러다 2019년부터 이태윤 선생님과 함께 베이스 연주를 영상으로 강의하는 채널로 운영하고 있어요. 현재는 구독자들이 베이스 강의보다 이태윤 선생님의 재미있는 입담이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하하.”(최희철)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