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은행 비이자비중 5%대로 급감…'투자일임업'으로 활로?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국내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이 지난해 5%대로 급감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은행권 비이자수익 끌어올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이 투자일임업을 전면 또는 추가 허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현실화 가능성에 이목이 쏠린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지난 11일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제8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 자산관리서비스 확대·활성화를 통한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방안'을 내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은행의 총이익(이자이익+비이자이익) 대비 비이자이익 비중은 평균 12%로, 이자이익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30.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이다.
국내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2018년 12.1%에서 2019년 14%, 2020년 15.1%, 2021년 13.2%로 10% 초·중반대를 유지했으나, 지난해에는 5.7%로 크게 떨어졌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한미 은행간의 수익구조 및 수익성 비교 검토' 보고서에서도 국내 5대 은행의 총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이자이익 비중은 본격적인 금리상승기였던 지난해 4%(농협은행 제외시 5.4%)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주요 5대 은행은 지난해 비이자이익 비중이 34.2%로 국내은행과 큰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비이자수익 비중이 크게 감소한 것은 저금리와 코로나 등으로 인해 대출 규모가 늘어난 상황에서 시장금리 상승과 맞물려 이자수익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 통화 긴축정책의 가속화 등으로 시장이 흔들리면서 유가증권 평가익이 감소하고, 비이자부문의 가장 큰 축인 수수료이익 부진이 지속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반면 미국은행의 경우 같은 기간 27~34% 수준을 유지했는데, 이는 유의미한 비이자이익 기반을 확보해 균형 잡힌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과 영국, 일본 은행들은 계좌유지수수료, 조기인출 수수료 등 다양한 예금관련수수료를 통해 비교적 안정적인 비이자수익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은행들은 각종 서비스를 무료 또는 원가 이하로 제공하는 기존 방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통한 수익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은행권은 은행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 인상·신설이나 판매수수료 중심 사업모델 강화보다는 자산관리서비스 확대·활성화 등 업무영역 확장을 통해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자산관리서비스 확대를 위해 투자일임업을 전면 허용해줄 것을 금융당국에 건의한 상태다. 투자일임업은 고객으로부터 위임받아 투자자 개별 계좌별로 대신 자산을 운용해주는 것을 말한다.
현재 증권사의 경우 투자일임업이 전면 허용되고 있어, 일임형 종합자산관리계좌를 통해 원스톱 종합자산관리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반면 은행은 투자일임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허용되고 있다.
은행권은 투자일임업이 은행권에 전면 허용되면 기관·고액자산가 또는 상품판매 중심의 투자일임 서비스에서 벗어나 소액투자자·은퇴자·고령자 등을 포함한 모든 고객들이 본인의 니즈에 따른 맞춤형 투자일임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은행 프라이빗뱅커(PB)센터가 제공하는 세무·상속·부동산·주식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와 결합할 수 있고, 은행의 광범위한 영업망을 통해 자산관리서비스를 편리하게 제공받을 수 있단 주장이다. 아울러 은행 입장에서는 판매수수료 중심에서 관리·운용 보수 중심의 사업모델로 전환돼 고객과 은행 모두에게 윈-윈이 가능해지고 경기변동에 따른 손익 변동성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은 전면 허용이 어렵다면, 공모펀드와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투자일임업에 한해 추가 허용해 달라는 입장이다.
다만 증권업계에서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어 은행권에 전면 허용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업계의 핵심업무를 은행권의 안정적 수익 확보만을 이유로 허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시 중소 증권사의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증권업계의 다양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전업주의 하에서 금융지주내 겸영만 허용하고 있는 현재 금융시스템의 큰 틀 차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은행과 증권업계의 고객 성향 차이를 고려할 때, 신뢰와 안정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은행의 고객에 대해 투자일임을 허용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전문가와 연구기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선 은행의 비이자 수익원이 제한돼 있고 자산관리서비스가 은행과 고객 모두 윈-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판매수수료가 아닌 자문·일임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은행의 투자일임업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산업의 큰 틀에서 금융상품 판매까지만 겸영을 허용하는 한국판 유니버셜 뱅크를 지향하고 있던 기존의 정책방향, 투자일임업 허용시 소비자 보호가 취약해질 위험성 등을 고려하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맞서고 있다.
금융당국도 리스크와 편익, 차별점 등을 우선 검토한 뒤 허용 여부를 논의하겠단 유보적인 입장이다.
김소영 부위원장은 "은행연합회에서 건의한 투자일임업에 대해 과거 방카슈랑스 등 겸영업무 허용 과정에서 겪었던 것처럼 첨예한 갈등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은행권에 대한 투자일임업 허용에 따른 리스크가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소할지 여부를 우선 검토하고, 국민들에게 어떤 금융편익이 있는 지를 기준으로 바탕으로 재차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금융권에선 당국이 전면 허용 보다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일임업을 추가 허용하는 쪽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권에선 전면 허용을 해 주거나 안 되면 공모펀드와 로보어드바이를 통한 투자일임업을 추가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며 "어느 정도로 허용할 지에 대해 아직 논의하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은행권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맞느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단계"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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