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6·25 참전 용사들의 영상 자서전
[앵커]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영상으로 자서전을 만든다면 정지원 아나운서는 혹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아마도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강렬하고 결정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겠죠.
아무래도 많은 분들께서 가장 특별했던 일을 떠올리실 텐데요.
우리에겐 아득히 먼 역사 속 얘기 같은 6.25 전쟁 참전 기록을 영상 자서전으로 남기신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올해가 6.25 전쟁 73주년이고 참전 용사들은 이제 백 세를 바라보는데요.
약관의 나이에 겪었던 참혹한 전쟁의 기억들.
그리고 참전 용사 유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최효은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5월의 어느 화창한 날.
저마다의 소설 같은 인생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는다는 곳을 찾았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표정마다 긴장감이 묻어있습니다.
[김봉수/제천시보훈단체협의회장 : "촬영하신다니까 많이 떨리죠. 그동안에 하시고 싶었던 말씀들 편안하게 하세요."]
대부분 꽃다운 청춘의 시기에 6.25 전쟁이나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노병들인데요.
[이상길/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 "(여기 뭐하러 오셨어요?) 월남 참전 영상(자서전) 그거 사진 찍으러 왔어요."]
충북도청이 지원하는 영상자서전 제작에 나선 겁니다.
[김남인/충북인재평생진흥원 : "인생 기록들을 인생 기록 문화유산으로 세대 간에 전승시키려고 하는 사업이고요. 전체 충북 도민들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처음 시작을 보훈단체로 시작을 했어요."]
[앵커]
오늘날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전쟁 그날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이들이 영상 자서전을 통해서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날 영상자서전을 녹화할 한 참전용사, 노병을 만나러 갔습니다.
[최효은/리포터 : "안녕하세요."]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6.25 전쟁 영웅 이율 할아버집니다.
[이율/6.25전쟁 참전용사 : "1951년 1월 24일 해병대 6기생으로 입대했어요. 21살에 나온 놈이 이제 나이 94살이 됐잖아."]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당시 북한에서 활동하던 조만식 선생을 탄압하는 김일성 일파에 맞서 항의 시위를 벌이다 지명수배가 내려져 1950년에 월남했다고 합니다.
[이율/6.25전쟁 참전용사 : "북한 땅을 탈출해서 바다 위에서 6.25를 만난 거지. 우리처럼 학생운동 하다가 살기 위해서 쫓겨나오는 놈 20명이 나왔는데 이남 땅에서 접수를 안 해. 우리를."]
휴전 뒤엔 3년간 해병대 교관 임무를 맡아 ‘귀신 잡는 해병’을 키워냈다 합니다.
지금도 아침마다 표창장과 사진을 앞에 놓고 경례를 하면서 해병대 정신을 되새긴다는 참전용사 이율 어르신인데요.
[이율/6.25전쟁 참전용사 : "해병대 정신이야.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란 말 있잖아. 나보고 경례를 한다 생각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경례를 받아."]
집을 나서는 길.
6.25전쟁과 관련한 증언을 한다는 생각에 생사를 같이했고 특히, 전장에서 산화한 전우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이율/6.25전쟁 참전용사 : "돌아가신 사람들한테 매우 미안해."]
촬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해병대 후배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혼자 남았다는 미안함은 잠시 내려놓습니다.
잠시 뒤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잡고, 이제는 역사가 된 그날의 작전을 담담히 전해줍니다.
[이율/6.25전쟁 참전용사 : "인천상륙(작전)을 했는데 울진 거기서 상륙작전을 전개했어요. '거짓말 상륙작전'으로 그쪽에 인민군들이 신경 쓰게 하고 인천으로 상륙 한 거예요."]
촬영 현장에서는 만난 또 다른 노병은 1947년 21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했단 6.25 전쟁에 참전한 96세의 김용선 옹입니다.
강릉에서 인민군을 처음 대면했던 장면, 끝없이 이어진 1.4후퇴 등 생사의 고비를 넘었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김용선/6.25전쟁 참전용사 : "사창이란 데서 거기서 처음 인민군을 만났어. 계속해서 후퇴만 하고서 있었죠."]
그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리면 살아남은 게 기적 같습니다.
[김용선/6.25전쟁 참전용사 : "우린 아무래도 총이 (별로) 없었고 (인민군은) 포를 쏘고 이러니까 그 당시에 옆에 있는 전우가 전사를 하고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위험했죠."]
쏟아지는 포탄의 파편 속에 조국 수호라는 영광의 상처도 얻었는데요.
[김용선/6.25전쟁 참전용사 : "파편에 다리를 맞아서 다리가 골절 됐었죠."]
전역 후 30년간 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세상의 풍파도 묵묵히 견뎌온 김 할아버지에겐 지금까지 품에 늘 간직하고 있는 빛바랜 사진이 있습니다.
한시도 잊은 적 없는 전우들입니다.
[김용선/6.25전쟁 참전용사 : "지금도 그 전우들 보고 싶은데 어디 사는지 모르고 보고 싶은데 어떻게 사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각이 나는 거죠."]
[앵커]
추억 공유 영상자서전 프로젝트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도 함께하고 있는데요.
4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한 유가족은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영상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6.25 당시 22살 나이로 전사한 아버지.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권태하 씨는 아버지가 유해로 돌아온 순간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권태하/제천시 전몰군경유족회장 : "제가 다섯 살 때 아버지 유해가 돌아왔어요. 군인 3명 중에 한 사람이 유골함을 매고, 둘이 붙어서 비는 참 많이 아주 쏟아지는 그런 날이었는데..."]
21살에 홀로 된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평생을 수절하며 자신을 기르고, 가난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는 늘 컸습니다.
[권태하/제천시 전몰군경유족회장 : "저희 학교 때 그때 좀 나쁜 애들한테 당했을 때 아버지가 있었으면 좀 내가 힘이 날 텐데..."]
지나간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버지의 전사 통지서와 훈장.
권 씨도 이제 노인이 되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짙은 그리움은 여전합니다.
[권태하/제천시 전몰군경유족회장 : "저는 평생에 아버지 소리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당사자만 알지 그 외 사람은 모르는 거예요."]
6.25 전쟁 참전용사들의 증언은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는데요.
노병들은 무엇보다 미래세대를 격려하며 당부합니다.
[이율/6.25전쟁 참전용사 : "너희들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아라. 이렇게 나는 말하고 싶어요."]
[박성규/6.25전쟁 참전용사 : "민족의 대 비극이라고 생각하며 모두가 기억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노흥/6.25전쟁 참전용사 : "저는 그거 한 가지 부탁하고 싶어요. 진짜 젊은 세대들이 바로 마음을 제대로 잡아가지고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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