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이진복 혹은 윤석열을 죽이는 휴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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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는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진복이 국민의힘 최고위원 태영호에게 총선 공천을 볼모로 대일 외교 옹호 압박을 가한 정황이 담긴 태영호의 발언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태영호는 "과장이 섞인 내용"이라며 이진복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이진복도 공천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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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5월1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는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진복이 국민의힘 최고위원 태영호에게 총선 공천을 볼모로 대일 외교 옹호 압박을 가한 정황이 담긴 태영호의 발언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태영호는 "과장이 섞인 내용"이라며 이진복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이진복도 공천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이 공천을 미끼로 당무에 개입했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폭거이자 불법행위"라며 강한 공세를 폈다.
이후 이 사건이 일파만파 번져 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새삼 '평소 실력'의 중요성을 음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일반 대중이 그간 대통령실이 보여온 모습에 비추어볼 때 태영호와 이진복의 말을 그럴듯하다고 믿겠느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3개월 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당시 당대표 후보 안철수가 당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이른바 '윤안(윤석열·안철수) 연대'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등 표현을 쓰자, 대통령실이 안철수에 대한 '엄중 경고' 요구를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월8일 국회에서 이진복을 만난 기자들이 "안철수 후보가 더 이상 문제 되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고 말하자, 이진복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하나 던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만한 자해(自害) 발언이었다.
닷새 전인 2월3일 민주당이 친윤(親尹)계의 안철수 비판에 대해 "집단 린치 만행"이라며 "이럴 거면 차라리 윤석열 대통령이 당대표까지 겸임하고 총선에서 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으시기 바란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윤석열이 신년 인터뷰에서 공언했던 "윤심은 없다"는 말이 점차 거짓임이 명백해져 가고 있을 때도 윤석열의 '이준석 트라우마'가 매우 심하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다가 2월6일 윤석열이 안철수의 '윤안 연대' 표현에 대해 "도를 넘은 무례의 극치"라고 했다는 말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땐 '역사적 퇴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안 연대'와 같은 과장법 정도는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수준의 것이며, 윤석열도 누구 못지않게 그런 과장법에 능하지 않은가. "나는 그래도 되지만 너는 안 돼"라는 '권위주의 내로남불'은 "우리 편은 되지만 너희들은 안 돼"라는 민주당의 '진영주의 내로남불' 못지않게 고약한 게 아닌가.
민주당이 진영주의 내로남불로 정권을 잃었듯이, 윤석열은 이제 권위주의 내로남불로 실패의 수렁으로 빠져드는가? 이런 의구심을 확인시켜준 게 바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건 이진복의 말이라기보다는 윤석열의 오만을 상징하는 윤석열의 말로 이해되었다.
오만엔 여러 유형이 있지만, 윤석열의 오만은 휴브리스(hubris)다. 휴브리스의 모태인 그리스어 hybris는 남에게 굴욕을 주면서 느끼는 만족감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을 윤석열에 대한 맹목적 증오·혐오에서 찾으려는 '윤석열 악마화' 때문에 정권을 잃었다. 나는 그걸 기록한 《퇴마정치》라는 책까지 쓴 사람이지만, 이 책의 속편을 쓴다면 불필요한 증오·혐오까지 유발하고 증폭시키는 윤석열의 휴브리스에 대해 쓰고 싶다. 또 민주당의 자멸(自滅)에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면, 오만이야말로 '윤석열 죽이기'의 주범임을 왜 모르는 걸까?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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