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도 안보도 선악으로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하라
윤석열 정부 ‘안티테제 1년’
‘문재인 반대’ 머문 윤석열 정부
정치·외교·국방, 극단적 피아 구분
적·친구 구분할 수 없는 현실 무시
단순 설명 ‘세력 규합’ 무력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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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지만 정부는 국정과제 성과집, 카드뉴스, 홍보영상 등을 대대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이 공허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성과로 내세우는 것의 면면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윤석열 정부의 홍보물에서는 ‘복원’, ‘정상화’, ‘회복’ 등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 정책이나 기조를 되돌렸다는 것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국정철학과 정책적 효과에 대한 평가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외교국방, 경제, 부동산, 여성, 환경에 이르기까지 전 정부와 ‘반대’로 한 것이 ‘성과’라니 기이한 일이다. 더욱이 집권 이후 가시적 결과를 따져 묻는 이들에게는 “비정상의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하며, 전세 사기부터 마약 범죄까지 모든 것이 다 전 정부 탓이라고 한다. 국정을 책임지는 이의 입에서 전 정부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것은 묘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윤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이 ‘반문재인’밖에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안보, 친구만 믿으면 된다고?
누군가의 반대항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뜻한다. 테제와 안티테제는 서로 같은 구조를 공유하는 거울상이며 테제가 지닌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안티테제의 존재 이유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상당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했다. 즉, 윤석열 후보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 그 자체는 문재인 정부의 안티테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권 1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여전히 안티테제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이번 정부의 한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낸다. 무언가를 ‘반대’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새로운 무엇이 되지는 못하는 정부. 안타깝게도 그것이 집권 1년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 사회의 다층적인 요구와 열망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시민들은 복잡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안착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민들의 요구를 해결할 역량이 없는 까닭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내 편’과 ‘반대편’ 사이의 굵은 구분선을 긋고 상대방을 철저히 부정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독립 이후에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으로 인한 갈등과 분열, 정치적 양극화는 한국 사회를 지겹도록 괴롭혀온 문제였다. 하지만 민주화 이래로 이토록 극단적인 피아의 구분이 통치의 방식이 된 적은 없었다. 정부와 의견이 다른 정치 세력은 “국회 이 ××들”이고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국민들은 가짜 뉴스에 선동된 무지몽매한 이들로 취급된다.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는 언론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적’이며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는 회계 부정을 일삼는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정치가 아닌 형사처벌이 능숙한 검찰 출신 대통령에게 의견이 다른 이들과의 소통과 타협은 ‘부정의’한 것이다. 선과 악, 자아와 타자, 친구와 적이라는 두 개의 세계만을 인식하는 대통령에게는 ‘악’, ‘타자’, ‘적’으로 명명되는 이들은 제압돼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어렵더라도 국민의 과반수 혹은 그 이상을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순한 집단으로 취급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외교와 국방 영역에서의 이분법적 사고는 더욱 문제적이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미국과 일본‘만’이 ‘친구’이며 중국과 북한은 ‘적’이라는 단순한 세계관이었다. 윤 대통령은 “가서 보니 정말 대단하더라”라는 미국에 대한 감탄을 쏟아내기도 하고, 한국에 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는 “(과거사 발언은) 너무 부담 갖지 말라”며 한없이 너그러운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믿을 수 없는 북한의 “선의에 기댄 가짜 평화”이며, 중국에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며 마치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조를 부정하는 듯한 평가도 서슴지 않았다. 경제주권이나 안보주권의 문제는 ‘친구’만 믿으면 된다고 하고, 중국이나 북한과 대화하거나 협력하는 것은 순진하게 ‘적’에게 ‘선의’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셈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인식에 존재하는 두 개의 다른 세계는 사실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삶과 일상에서의 두 세계는 구분선 없이 서로 혼재되어 있거나 각자의 위치와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감각되고 있다. 친구와 적이 결코 구분될 수 없다는 사실, 자아와 타자가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무엇보다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우리네 복잡한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
‘적’이라고 소리치는 이를 경계하자
그렇다고 야당을 비롯한 정치 세력에서 희망을 찾기도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정권교체를 한 것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금 권력을 되찾아오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야당은 당장은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제한적 반사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 정부의 반대항이라는 쉬운 선택을 고수한다면 그 끝이 어떠할지는 예측 가능하다. 서로를 적대하면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닮아버린 정치 세력들 틈바구니에서 한국 사회는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치적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세대와 젠더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며 외교와 안보 측면에서도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를 구축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복잡하고 주변의 국제 정세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첫걸음은 관성을 깨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부터 해체해야 한다. 그 시작은 누군가를 가리키며 ‘적’이라고 소리치는 이들을 경계하는 것부터다. 자신이 ‘선’이고 ‘정의’라고 외치는 모든 이들을 의심해야 한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며 세력을 규합하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냉전적이며 이분법적인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개입하고 타협하는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무엇보다 피아를 구분하여 서열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확인했다. 이분법적 사고의 허상을 폭로하고 그 너머를 상상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만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정권이나 골칫거리인 정치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무기력에 빠져 있거나 무관심으로 회피하기에는 현 상황이 너무나 위중하고 위급하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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