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당신을 만족시키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ESC]

김규남 2023. 5. 1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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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결혼할 사람과 버려도 그만이고 다시 살 수 있는 컵을 비교한담?' 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본질적인 고민의 깊이로 따져 본다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보통은, 나에게 유리하고 나에게 좋아 보이는 점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지요.

바뀐 것은 그 사람인가요, 아니면 내 마음일까요? 그 사람은 당신을 만족시키려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당신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여주며 기분을 맞춰주려고 당신 앞에 나타난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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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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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 만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고 착한 남자친구와 연애 중입니다. 저한테 다 맞춰주는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근데 우유부단한 면도 있어요.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받아줘요. 상대방이 화를 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하고 넘어가는 편이에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이 ‘왕따’되는 게 안타깝다며 잘 지냅니다. 제가 신경 쓰인다고 했던 이성 지인의 연락도 저한테 미안해하면서 받아줍니다. 결혼은 현실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몹시 고민이 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남친과 결혼 여부를 고민하는 20대.

A. ‘유리컵을 하나 사서 아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 정말 좋은 컵이죠. 컵에 뚜껑이 달려있고 입구가 좁아서 보온이 확실히 되거든요. 이런 컵을 또 구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평생 쓰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좀 불만입니다. 컵에 뚜껑이 달려있고 입구가 좁다 보니 설거지할 때 꽤나 불편하거든요. 보온은 잘 되지만, 설거지할 때는 불편하네요. 이 컵 계속 쓸까요, 말까요?’

어떠세요? 앞에 쓴 이 글은 당신의 고민을 컵 버전으로 바꿔본 글입니다. ‘어떻게 결혼할 사람과 버려도 그만이고 다시 살 수 있는 컵을 비교한담?’ 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본질적인 고민의 깊이로 따져 본다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모든 부분에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선택하려는 열망이 있습니다. 점심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주말에 놀러 갈 곳을 정할 때도, 내가 다닐 회사를 선택할 때도 나에게 유리한 것을 고르고 싶어하지요. 인생의 동반자를 선택할 때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그래서 보통은, 나에게 유리하고 나에게 좋아 보이는 점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지요. ‘이런 사람이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요. 하지만 세상엔 애초에 완벽한 사람도 없고,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다 맞춰줄 사람도 없지요. 그러니 어느 정도 만나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런 면은 좋은데, 이런 면은 별로네’라고 계산하게 됩니다. 아주 당연한 수순입니다. 매번 내가 만나는 사람의 얼굴도 바뀌고, 상황도 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 큰 틀에서 보면 그저 동어반복 그 자체이죠.

하지만 정말 생각해보셔야 하지 않나요? ‘결혼은 현실’이니까요. 뚜껑이 달려있고 입구가 좁다는 특징 때문에 컵을 샀으면서, 이제는 그 점이 싫다고 하네요. 바뀐 것은 그 사람인가요, 아니면 내 마음일까요? 그 사람은 당신을 만족시키려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당신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여주며 기분을 맞춰주려고 당신 앞에 나타난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날, 모든 상황에서 오직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관계 안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기대가 아닐까요?

사연자가 돌아보셔야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내 통찰의 깊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한평생 함께할 사람을 선택하는 대목에서, 나에게 잘해주는 건 좋지만 남에게 잘해주는 건 신경 쓰이고 짜증 난다는 정도의 통찰로는 결코 좋은 선택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판단을 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계가 됩니다. 상대방의 모든 선택에 대해,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가지고 판단하려 하니 불만이 많아지고 확신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이치이고요.

맘에 드는 점과 맘에 들지 않는 점을 분류하고 점수 매기기 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부터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미래의 현실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세요. 이건 좋은데 저건 싫다는 건,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대표적인 고민입니다. 나에게 언제나 잘해주는 사람,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는 착한 사람과 사는 것 정도가 결혼의 이상이라면 그 이상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잊지 마세요. “어느 항구로 가야 할지 모르는 판국에, 무슨 바람이 도움이 되랴?“ 세네카라는 사람이 남긴 명언입니다.

곽정은 작가, 메디테이션 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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